너무도 아름다운 제주이지만, 개인적으로 끔찍한 불안과 지옥을 느꼈던 순간을 신랑이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박조건형·김비 산문집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씨>(2020)에도 실렸다. 그림 박조건형
엘리베이터에 탄다. 삼면 벽에, 매일 보던 똑같은 거울이 보인다. 나는 매일 그랬듯 거울 앞으로 다가서 옷매무새를 다듬으려다가 흠칫 놀란다. 숨은 듯 입구 쪽 구석에 선 한 사람. 내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구석 쪽으로 몸을 튼 사람.
모자를 깊숙이 눌러썼고, 마스크 바깥으로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 자국이 번져 있다.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은 빈손을 감췄다고 하기엔 너무 불룩하다. 맨 아래층 버튼을 누르고서 나는 본능적으로 그에게서 제일 먼 구석으로 물러난다. “문이 닫힙니다.” 아무리 흉내를 내도 사람의 것일 리 없는 기계의 음성이 내 불안을 자극한다. 천천히 닫혀가는 문과 함께, 작은 공간 안에 쌓였던 불안의 공기는 하나로 소용돌이친다.
“안녕하세요.” 문이 끝까지 닫히기 전에, 나는 입을 벌려 작지만 또렷이 말한다. “네.” 내 쪽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는 그 몸짓은 여전히 주민의 것도 아니었고 택배 기사님의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렇게 내 생각의 몸을 타고 오르는 불안을 끊어낸다. 마침내 맨 아래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고 그는 주머니에 넣었던 ‘맥스’ 크기 휴대폰을 꺼내 들여다보면서, 발걸음을 재촉해 사라진다.
그가 나에게 몹쓸 짓을 할 사람일 확률은 얼마였을까? 나는 그동안 내가 만나왔던, 나를 환대해주었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에게 내가 먼저 건넨 인사를 후회하지 않는다. 타인을 의심하고 조심해서 지켜지는 나보다, 꼼짝없이 잠식당해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시달리고 말 나의 불안을 지움으로써 지켜지는 나를 택한다.
‘트랜스젠더’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야 하는 나이기에, 이따금 눈이 빠른 이들은 의혹의 눈길로 나를 빤히 바라보기도 한다. 무례하고 폭력적인 시선이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는 스스로 저지르는 그러한 폭력을 제대로 되짚어보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다. 시끄럽지 않은 사회란 누군가의 희생이나 침묵을 밑절미 삼은 것일 뿐, 정상성의 한가운데 존재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만 평화로운 사회였다는 걸 우린 이제 조금씩 배우고 있다.
그래서 나는 불편한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 어색하고 불편한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 대부분이 마주 웃는 얼굴을 보여준다. ‘아유 키가 굉장히 크시네요?’ 되묻는다. 그가 나를 키 큰 여성으로 인식해 그런 질문을 했는지, 아니면 트랜스젠더 여성인 나를 알면서도 실례가 되지 않도록 배려한 질문인지는 상관없다. 스쳐 가든 잠시 같은 공간에 머물러야 하든, 우리는 서로를 위한 최대치의 안심을 나누어 가진 셈이다. 서로 다른 뿌리를 지닌 실체 없는 불안은 그렇게 납작해진다.
나는 내 곁에 함께 사는 누구든 나로 인해 불편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 사회에 불편함의 기준만큼은 이제 바뀌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동안 한 방향으로만 흘러 수적으로 우월한 사람들만을 고려했던 그 불편함에 대한 고민을, 이제 다른 이들에게 나눠 줄 때도 되었다고 본다. 늦으면 늦었지 결코 이른 시기는 아니며, 이 지구에 다종의 다양한 삶을 알게 되었음에도 포용하지 못하고 단순한 낯섦을 불편함으로 인식해 타자의 삶을 훼손하는 일은 이기심이며,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폭력에 불과하다.
가능하다면 그 불편을 우리 같이 뛰어넘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 그들을 향해 준비했던 웃는 얼굴을 거둬 올 생각은 없다. 될 수 있는 한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대하려는 노력은, 그것이 공존하는 우리들의 기본값이라는 걸 말하려는 보이지 않는 푯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당신과 내가 어떤 궁지 앞에 벽을 보고 섰든, 그것이 우리가 나누어야 할 단 하나의 얼굴이라는 요청이다. 나도 당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일 수 있으니, 당신 역시 나에게 그런 사람이기를 요청하는 신호. 당신이 불편한 것 이상으로 나 역시 당신으로 인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 서로를 위해 애써주십사 하는 부탁.
‘웃는 얼굴’은 여기 이 비성소수자만을 위한 사회를 살아오면서, 성소수자인 내가 터득한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었고 불안에 붙들리지 않는 방식이었다.
제주 월정리에서 혼자 바다를 보고 선 김비 소설가의 모습. 그림 박조건형
나는 겁이 많은 아이였다. 태생적으로 겁이 많은 아이였는지, 외부적인 억압들로 인해 겁이 많은 아이가 된 건지 기억나진 않는다. 그럼에도 나의 존재는 단 한번의 손가락질로 단박에 드러난다. 과도한 관심을 받으며 위안이나 자신감을 얻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더 숨어들고 싶은 아이가 되었고, 불안과 자책은 한 쌍으로 내 안에 축적되었다.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말하지 않는 내가 되었고, 말하지 않으면서 구체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모든 것이 ‘최초의 손가락질’만 없었다면 문제 될 일이 아니었는데, 나를 둘러싼 세계는 그 모든 책임을 나에게 떠넘겼다.
나는 다시 또 자책하며 불안을 떠올리는 아이가 되었고, 모자란 아이로 낙인찍혔다. 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존재를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채 짓눌린 삶을 산다. 차별 때문이고, 무지 때문이고,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누군가의 ‘순진한 폭력’ 때문이다. 그릇된 정상성을 학습시키고, 나와 다른 존재를 구경거리 삼는 게 당연했던, 차별하고 차별받는 게 ‘정상’이었던 비정상 사회 덕분이다.
불안을 이겨내고서 처음 내 목소리를 냈던 건 역설적이게도 착취 덕분이었다. 모친이 부재하던 어린 시절, 나의 불안은 사방으로부터 들이닥쳤다. 불안을 품고 살아야 하는 몸일 때 어디든 의지할 구석이라도 있었다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내 어린 시절은 그렇지 못했다. 그 와중에 우리 집안을 대놓고 착취하며 협박을 해대던 웃는 얼굴의 가면을 쓴 이웃과의 싸움에서, 나는 처음 불안을 이겨낸 목소리를 알게 되었다. 내 안에 그런 목소리가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나를 회유하는 웃는 얼굴의 ‘가스 라이팅’에, 나는 필요 없다고 선언하며 일어섰다.
내 삶은 내가 알아서 하고 당신들의 도움 따위 필요 없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 어쩌고 나를 공격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나는 내가 한 인간으로 성장을 시작한 때가 바로 그 순간이라고 기억한다. 착취든 폭력이든 어디에든 짓눌리지 않고서, 오직 나만을 위한 삶의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나를 위한 삶이 있구나, 내가 붙들고 있으면 결코 빼앗기지 않는 그런 삶이 있구나,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주눅 들어 말을 잘하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는 아이로 살았지만, 그때 이미 나는 불안을 이겨낸 나를 아는 사람이었다. 너무 큰 비약인지 모르지만, 지금 내 삶을 찾아 나만의 방식으로 꾸려갈 수 있는 내가 된 첫걸음이 그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게 바로 자존감이란 것이었을까, 불안을 이겨낸 경험의 열매는 그토록 달콤했다.
이따금 사람들이 성확정 수술을 결정하며 무섭지 않았느냐고 묻곤 하는데, 그즈음 나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두려움이 없었다기보단 수술이란 두려움보다 더 큰 공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멀쩡한 몸’으로 해석되는 온전함은 손쉽게 안심으로 치환되지만, 나는 그 ‘멀쩡함’의 억압을 알아버렸다. 날마다 내 몸의 일부를 붙들고서 자해의 욕망에 시달려야 했던 생의 고단함. 이렇게는 살 수 없겠구나 하는 확신이 날마다 들이닥쳐 쌓이는 피로함.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무람없이 물을 수 있는 당신의 그 생이, 나는 너무도 부러웠다. 동질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무리 한가운데 있고 싶었다. 그래서 그토록 치열하게 남자 몸을 키우고 아닌 척을 하고 가면을 뒤집어쓰고 살았지만, 그렇게 살아야 하는 생은 말 그대로 공포였다. 더욱더 크고 건강해진 불안의 실체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날마다 몸에 착 달라붙어 아무리 해도 떨어지지 않는 불안을 둘러쓰고 살아남아야 하는 끔찍한 일상이었다.
수술은 나에게 두려움은커녕, 단 하나의 생존을 위한 돌파구였다. 모든 트랜스젠더가 육체적 괴리감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내 삶의 회복을 위해 가장 필요했고 적절했던 치료가 수술이었다. 그때 그 불안을 벗어버린 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꽤나 가벼워졌다.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불안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보통’의 삶이 되었다.
2018년 ‘문학의 곳간’ 회원들과 부산의 한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던 때. 나는 먼저 ‘웃는 얼굴’을 준비한다. 아무 일도 없을 나의 일상을, 여기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믿는 쪽을 택한다. 김비 제공
‘사람들을 믿는다’고 나는 자주 말하는 편이다. 익명성의 위협은 더욱 날카롭고, 특히 약자를 향한 폭력이 무슨 대단한 정당성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비인간적 풍경을 목격하게 되는 요즈음이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을 믿는다’는 말을 거두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자주 ‘사람들을 믿는다’고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말하려고 애쓴다. 며칠 전 퀴어 청소년을 위한 상담소 ‘가가가가’에서 썼던 세번째 편지에도, 나는 그렇게 썼다.
너무 성급하게 결론짓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 삶을 지켜가라고. 어디에든 너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있고, 너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오십하나가 된 나는 별 쓸모 있는 생의 해답을 줄 수는 없지만, 그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고. 너를 지켜줄 사람은 어디에든 있으니, 네 곁의 ‘사람들을 믿으라’고. 그게 곧 네 삶을 지키는 일이라고.
그러나 당신에게도 똑같은 말을 전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당신들을 믿고 있으니 당신도 나를 믿으라는 억지는 공허하다. 당신이 내 불안을 몰랐던 것처럼,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나 역시 당신의 불안을 모른다. 모를 수밖에 없다. 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그렇게 말하는 일 또한 또 다른 방향의 내가 저지르는 폭력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 이렇게 불안해하고 있을 일일까? 실체가 아닌 불안 앞에, 이토록 쉽게 무너져도 되는 일일까? 무수히도 많은 불안과 싸웠고 지금도 여전히 이겨내려 애쓰며 사는 한 사람이지만, 오십하나인 나 역시 모두의 불안을 해소할 방법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그 얼굴이 어떤지는 알 것 같다. 비로소 불안을 해소해, ‘아유, 그런 줄 몰랐어요. 미안합니다’ 말하며 서로의 눈을, 살아 있는 두 눈을 마주할 수 있는 그 얼굴이 어떤 모습인지는 알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좁고 어두운 세계 속에서, 창도 없고 온통 나를 닮은 불안한 얼굴들로 가득한 그 공간 한가운데서, 내가 먼저 ‘웃는 얼굴’을 준비한다. 아무 일도 없을 나의 일상을, 여기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을, 믿는 쪽을 택한다.
▶ 김비. 소설가. 에세이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등이 있으며, 배구선수 ‘김연경’처럼 모두에게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0년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