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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셀럽 ♥아무개’ 그 흉측한 하트를 떼낼 때도 됐다

등록 2021-07-17 17:00수정 2021-07-17 23:04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웃음거리가 된 헤드라인 ‘♥’

포털에서 실시간 상위 기사 올리려
‘단독’ 등으로 알고리즘 공략하다
‘10살 연하♥’, ‘♥아무개’ 제목 달아
하트 없인 이름 검색도 안될 정도
연예인이나 셀레브리티 기사에 ‘누구와 ♥ 아무개’라는 제목은 포털 검색 순위를 끌어올리려는 연예뉴스의 꼼수다. 이들을 ‘누군가의 무엇’으로 종식시켜 클릭 유도용 떡밥으로 쓰는 연예기사가 존중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연예인이나 셀레브리티 기사에 ‘누구와 ♥ 아무개’라는 제목은 포털 검색 순위를 끌어올리려는 연예뉴스의 꼼수다. 이들을 ‘누군가의 무엇’으로 종식시켜 클릭 유도용 떡밥으로 쓰는 연예기사가 존중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연예뉴스를 보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실시간 많이 본 뉴스’로 추천되는 기사마다 제목에 하트를 달지 못해 안달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나 온라인상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셀레브리티들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제목에 ‘♥ 아무개’ 같은 식으로 해당 인물의 배우자나,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끼워 넣는 언론이 자꾸 늘어나는 추세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나 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기사라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해보겠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런 것도 아니다. “모씨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셀카를 올렸다” 같은 기사를 쓰면서, 제목에 “모씨 ‘♥ 아무개’, 나이 잊은 동안… 이래서 아무개가 반했나” 같은 식의 헤드라인을 걸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해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최근엔 최수종이 전치 10주의 오른팔 골절 부상을 입은 소식을 전하면서도, 연예매체들은 기어코 “‘♥ 하희라’ 최수종”이라고 적어넣는 고집을 부렸다. 사람이 팔이 부러졌다는데 그 소식을 전하면서도 하트를 붙이는 건 대체 무슨 심보인가.

검색어 경쟁 ‘단독’에서 ‘하트’로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네이버 등의 온라인 포털사이트들이 뉴스 섹션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알고리즘으로 사람들이 많이 보는 뉴스를 분석해 큐레이션하는 방식을 택한 이후부터 언론은 어떻게든 헤드라인을 부풀리는 데 집중했다. 사실상 뉴스를 편집해 제공하는 중간상인 역할을 해온 포털사이트들은, 실시간 주요 뉴스를 선정해 메인 화면에 노출시킬 때 ‘어떤 뉴스를 고를 것인가’ 하는 자의적인 가치판단이 작용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피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인공지능을 도입했다. 그리고 포털사이트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언론사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유로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을 속이는 방법들을 개발해냈다. 별것 아닌 내용들을 ‘단독’이나 ‘공식’ 같은 수식어로 포장해 인공지능이 가중치를 인식하기를 노리고, 한 기사 안에 담아도 되는 내용을 조각 내어 기사 발행 개수를 늘리고, 자극적인 키워드를 앞세워 클릭을 유도해 ‘많이 본 뉴스’로 선정되는 꼼수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 아무개’ 기사 또한 그 맥락에서 등장한 연예뉴스의 생존방식이다. 유명인의 연애와 사생활을 향한 대중의 관심은 언제나 뜨거웠으니, 그 호기심을 이용해 기사의 클릭수를 높이겠다는 셈법인 것이다. 게다가 제목에 유명인 한명의 이름만 올라가 있는 것보다는, 유명인 두명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편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도 더 좋고 키워드 검색에 노출될 확률도 더 올라가니까. 막상 클릭해봐도 해당 유명인의 연애나 결혼생활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모씨가 아무개와 사귀고 있는 것은 팩트이고, 단순 수식어로 붙인 것이니 가짜뉴스는 아니다”라고 주장하면 그만이다. 이제 포털사이트 대중문화/연예 섹션의 ‘실시간 많이 본 뉴스’난은 온통 하트로 가득하다.

덕분에 진짜로 정보 습득을 위해 뉴스를 찾아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꾸만 오염된 정보를 걷어내야 하는 불편이 늘어난다. 연예인 A가 출연한 신작 영화나 드라마, 최근 발표한 새 싱글앨범과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보려 하면, 검색 결과 창에서 무수히 많은 하트 뒤에 달린 그의 애인이나 배우자의 이름을 헤치고 지나가야 한다. 드라마가 끝난 소감을 이야기하는 배우 이름 앞에도 ‘♥ 아무개’가, 새로 발표한 신곡에서 어떤 음악적 고민을 했는지 이야기하는 가수의 이름 앞에도 ‘♥ 아무개’가 붙는다. 그나마 이름으로 호명해주면 양반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일반인이나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사람과 연애하는 유명인들 이름 앞에는 ‘♥ 재벌 3세’, ‘10살 연하♥’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클릭해보면 역시나 그들의 연애사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의 무의미한 정보들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연예매체들은 말할 것이다. 포털사이트 내 클릭수가 매체의 수익과 직결되어 있는 환경에서, 다른 매체들은 다 이런 식으로 경쟁에 임하는데 우리만 고상한 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낚시성 제목이 정보를 오염시키는 것은 맞지만, 그와 같은 제목의 기사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연예뉴스를 소비하는 독자 대중인데 그 책임을 왜 언론만이 져야 하느냐고. 연예뉴스는 태생적으로 가십의 성격을 일정 부분 내포하고 있으며 기사 자체 또한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그렇다면 제목을 더 매력적으로 뽑아내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을 높이는 게 그렇게 크게 비난받아야 할 일이냐고.

그러나 수요의 양이 품질이나 정당성을 보장해주는 게 아니고, 경쟁의 치열함이 꼼수를 용인하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수요가 많다고 해서 옳은 것이라고 한다면 향정신성 의약품은 왜 규제를 하겠으며, 경쟁이 치열하니 꼼수를 용인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대학교 입시는 왜 매번 공정을 요구받겠는가. 기자들에게 심도 있는 기획을 고민해낼 시간과 취재 기간을 보장하고, 질 좋은 기사로 독자 대중을 매료시키고 설득할 만한 방법을 찾아내는 대신, 연예매체들은 당장 쉽고 빠른 클릭을 유도하는 제목의 기사를 남발하는 방식으로 수요와 경쟁에 대응하며 산업 전체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실제 연애사와 무관한 정보이거나
누구의 연인, 종속된 인물로 표현
연예매체가 SNS보다 나을 게 뭔가
엔터 비판 앞서 흉측한 하트 떼야

‘하트 프레임’이 삭제하는 이야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연예인이나 셀레브리티를 ‘♥ 아무개’로 수식하는 방식의 제목들이 그들을 ‘누군가의 배우자/연인’ 프레임 안에 가둠으로써, 그들이 응당 받아야 할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존중을 앗아간다는 데에 있다. 어떤 셀레브리티가 꾸준한 자기 관리와 운동으로 멋있는 모습을 유지하는 걸 칭찬하는 기사를 쓰고 싶다면, 그냥 그렇게 쓰면 된다. 그런데 그 기사가 “모씨 ‘♥ 아무개’, 나이 잊은 동안… 이래서 아무개가 반했나” 같은 헤드라인을 달고 출고되는 순간, 해당 인물의 자기 관리가 오로지 파트너를 매혹하고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인 듯한 프레임이 생긴다. 어떤 역할이 오더라도 맡을 준비를 갖추기 위해 체형을 유지하는 배우도 있고, 새로 발매한 음반의 콘셉트에 맞추기 위해 이미지 변신을 꾀하는 가수도 있다. 혹은, 그저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 아무개’ 프레임은 그 모든 개인적, 직업적 노력들을 이성애 로맨스 관계 안으로 폭력적으로 압축해버린다.

혹자는 연예인들부터 소셜미디어에서 세칭 ‘럽스타그램’(러브+인스타그램. 자신의 연애 내용을 담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하며 자랑하는 것을 의미)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연애사와 사생활을 일종의 상품처럼 전시하는데, 언론이 그들을 독립된 개인으로만 존중해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물을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가 자신의 사생활을 상품화해서 판매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까지 자동으로 그의 사생활을 상품 취급하고 특정 프레임 안에 가둘 권리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연예인과 셀레브리티들이 아무리 자신의 사생활을 상품화해서 판매한다 해도, 언론은 그로부터 건강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독립된 개인으로 존중해야 할 책임이 있다. 연예인들이 소셜미디어에 무슨 사진을 올릴 때마다 ‘♥ 아무개’ 프레임을 달아서 올리는 일만 반복한다면, 언론이 소셜미디어 새 게시물 알림 기능보다 나을 게 뭔가.

연예부 기자들은 종종 언론계 안팎에서 연예부가 받는 시선에 대해 토로하며 언론인으로 존중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단 연예매체부터 연예인을 독립된 개인으로 존중하지 않고 ‘누군가의 열애설 상대’로 취급하며 클릭 유도용 떡밥으로 오염된 정보를 흘리는데, 타인이 이 업계를 존중해줄 것이라 기대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누군가 연예매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 클릭수’, ‘♥ 돈벌이’라는 수식어로 조롱을 시작하기 전에, 헤드라인에 덕지덕지 눌러앉은 그 흉측한 하트를 떼어낼 때가 됐다.

▶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 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명 한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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