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대노동조합 엘지헬로비전 비정규직지부 관계자가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LG헬로비전 본사 인근에서 코로나19 백신휴가 차별 규탄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터넷 설치·수리 등을 하는 대기업 협력업체 소속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이틀의 백신휴가 보장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휴가를 받지 못하거나 받아도 하루만 보장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20~40대 백신 접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에 정부가 민간 기업에 대해서도 이틀 휴가를 강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엘지헬로비전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백신 휴가를 하루만 쓸 수 있다. 반면 원청인 엘지헬로비전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틀의 휴가를 보장받는다. ‘백신 휴가 하루’도 노조가 협력업체에 공문을 보내고 여러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문제제기를 한 뒤 얻어낸 것이다.
지난달 1일 엘지그룹 계열사들은 ‘접종 횟수마다 공가 2일+이상 반응 시 1일+이후 연차’의 백신 휴가를 시행하겠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이때 협력업체 노동자의 백신 휴가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었다.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 비정규직지부는 원청인 엘지헬로비전에 “협력업체 노동자들도 백신 휴가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협력업체와 이야기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협력업체는 ‘원청의 지원이 없고 협력업체도 여력이 없으니 개인 연차를 쓰고 맞으라’는 취지의 답을 했다고 희망연대노조는 밝혔다. 노조가 지난달 17일 기자회견을 여는 등 문제제기를 계속하자 같은 달 28일 ‘접종 횟수와 관계없이 하루. 접종 다음날 사용’이라는 협력업체의 지침이 내려왔다. 사실상 접종 당일은 개인 연차를 사용하고 다음날만 백신휴가로 쉬라는 지침에 노동자들이 반발했다. 협력업체는 지난 12일에야 ‘접종 횟수당 하루’로 추가 공지를 했다. 이승환 엘지헬로비전 비정규직노조 지부장은 “숱한 항의와 투쟁 끝에 얻은 게 이 정도”라며 “이마저도 원청에서 지원한 것이고 협력업체 대표들은 회사 여력이 안 되니 휴가가 더 필요하면 노조에서 더 싸워서 원청에서부터 받아내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엘지헬로비전 관계자는 “백신 휴가는 협력업체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할 사안이지만 (협력업체 노동자들과의) 상생 차원에서 백신 회차당 휴가 1회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엘지헬로비전과 비슷한 업무를 하는 현대에이치씨엔(HCN) 협력업체 노동자들도 이틀 백신휴가 보장을 한 달 넘게 요구하고 있지만 원청과 협력업체 모두 응답이 없는 상태다.
노동자들은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는 일이 많은 업무 특성상 백신 접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백신휴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장준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은 “케이블방송과 인터넷을 설치하고 애프터서비스(AS)를 하는 노동자들이라 고객과 접점이 많아 백신 접종이 필수적이다”며 “협력업체들은 ‘원청이 지원하지 않는 휴가’를 보장할 의지가 없다”고 원청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정부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정부는 민간 기업에 대해서는 백신 휴가 부여를 ‘권고’만 하고 있다. 인터넷 설치·수리 노동자인 박아무개(38)씨는 “현재 상황이라면 백신을 안 맞고 일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엘지헬로비전 협력업체 노동자 김아무개(40)씨도 “원청 정규직은 2일 아프고 협력업체 노동자는 1일만 아프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며 “전국민재난지원금처럼 백신휴가는 노동자 전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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