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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원조처럼 상표 복붙하는 ‘좀비 판매자’ 활개…쿠팡, 약관 시정한다지만

등록 2021-07-22 14:55수정 2021-07-22 15:13

상품설명 페이지 화면 그대로 캡처·복사해 올려놔
“원 판매자 상품 주문한 뒤 웃돈 얹어 되파는 수법도”
‘해외 직구’ 상품 주의… 수입 공산품 등 손쉬운 먹잇감
21일 쿠팡에 올라온 한 제품의 상품설명. 업체 이름과 상표 등이 들어가 있지만 원 판매자의 상품 페이지를 그대로 베낀 것이다.
21일 쿠팡에 올라온 한 제품의 상품설명. 업체 이름과 상표 등이 들어가 있지만 원 판매자의 상품 페이지를 그대로 베낀 것이다.

“브로슈어를 그대로 ‘복붙(복사+붙여넣기)’해 놓아서 하마터면 저희도 속을 뻔 했어요.”

무설탕 디저트를 만드는 스타트업인 ‘설탕 없는 과자공장’의 직원들은 최근 쿠팡 누리집에서 자사 제품을 검색하다가 깜짝 놀랐다. 처음 보는 판매자 서너 곳이 상품설명과 이미지 등을 도용해 마치 자기 상품인 것처럼 이 회사의 잼·쿠키 등을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매자가 한 명만 나와도 자신들이 큰 이득을 보게끔 원래 상품의 두 배에서 다섯 배까지 가격을 부풀려 놓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항의를 해 판매 페이지를 내리려 했지만 연락조차 닿지 않는 유령 업체들도 있었다. 이들이 모조품이나 유통기한 지난 제품 등을 소비자에게 보내 회사 신뢰를 떨어트릴까 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인기 상품의 상표·이미지 등을 그대로 베껴 ‘원조’인 것처럼 속여 파는 소위 ‘기생충 판매자’들이 쿠팡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21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쿠팡이 판매자 약관을 고쳐 저작권 침해 등을 막겠다는 방침을 내놓았지만, 불법 업체에 대한 퇴출 조치 등 더욱 강도 높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회원수 60여만명의 한 온라인 소상공인 카페를 보면, 쿠팡에 상품을 올렸다가 사진과 제품설명 등을 도용당했다는 상담글 300여건이 올라와 있다. 입점업체들 사이에서 ‘기생충 판매자’, ‘좀비 업체’ 등으로 불리는 가짜 판매자들은 특정 제품의 상품설명 페이지 화면을 그대로 캡처(갈무리)하거나 복사해 자신의 판매 페이지를 만든다. 이들 페이지는 검색창에서 원래 상품과 나란히 노출되며 매출을 뺏어가고, 심지어는 원제품의 판매량을 앞질러 쿠팡의 ‘아이템 위너’(제품 소개 페이지에 가장 저렴하고 평이 좋은 판매자의 제품을 대표로 노출시키는 제도)에 선정돼 검색창의 맨 상단을 차지하기도 한다.

식품업체인 ㄱ사 관계자는 “기생 업체에서 우리 상품을 주문해보니 우리 회사가 판매하는 상품이 포장까지 그대로 배송됐다. 주문이 들어오면 원조 판매자 상품을 주문해 ‘로켓 배송’으로 받은 뒤 웃돈을 얹어 소비자에게 되파는 수법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 등에서 공산품을 들여와 정식 통관 절차를 거쳐 파는 수입상들이 현지 기생 업체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 수입사들이 한글로 올린 상품설명과 상표를 베껴 쿠팡에 판매 페이지를 만든 뒤, ‘해외 직구’ 상품이라며 현지에서 한국 주문자에게 국제택배를 보낸다. 현지가로 물건을 조달하는 데다, 상표 등록이나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의 검역·검수 비용 등도 들이지 않아 국내 수입상들에 비해 가격 경쟁력까지 갖는다.

주방용품을 수입하는 ㄴ사 대표는 “중국 업체가 끼자 하루 20개 정도이던 주문량이 한 달 하나 정도로 추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아파트 환경에 맞게 리폼한 우리 제품은 현지 것과 엄연히 다르지만 중국 업체는 같은 상품인 것처럼 상표와 사진을 도용했다. 해당 업체에 전화를 걸어 항의해도 욕설만 돌아온다”고 토로했다. ㄷ사 대표 역시 “기생 업자들은 매주 월∼목요일 동안 제품군별 인기 상품을 살핀 뒤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무단복제 페이지를 만들어 저가 공세를 벌인다. 주말 동안 국내 업체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점을 노린 것이란 추측이 많다”고 전했다.

이는 입점업체끼리 제품 관련 콘텐츠를 자유롭게 가져가 쓰도록 한 쿠팡의 약관을 일부 업체가 악용해 벌어지는 일이다. 현행 약관은 “판매자가 제공한 상품 콘텐츠를 동종 상품의 대표 콘텐츠로서 회사가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판매자는) 다른 판매자가 동종 상품의 대표 콘텐츠로서 제공한 상품 콘텐츠 역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품 브로슈어·이미지 등에 대해 입점사가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러나 기생충 판매자들에 대한 입점사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이와 관련해 공정위 조사까지 시작되자 쿠팡은 판매자 약관을 고쳐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21일 내놓았다. 21일 공정위 발표해서 쿠팡은 9월부터는 해당 조항을 삭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판매자들 사이에서는 ‘약관 고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우려가 크다. 저작권이 아닌 상표권의 경우 기존 약관으로도 보장됐지만, 상표권 침해 행태를 쿠팡이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ㄴ사 대표는 “상표권 도용으로 쿠팡에 정식으로 민원을 넣었지만 ‘내부 정책상 조치가 안 된다’는 답변이 왔다. 소상공인으로서 사법기관에 신고할 여유는 없어 쿠팡 판매를 사실상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저작권·상표권을 침해하는 업체들에 대한 쿠팡의 모니터링과 피해 업체에 대한 구제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법무법인 테헤란의 임주미 변호사는 “판매자가 (저작권 등을 도용한 업체와) 묶여 노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쿠팡에 신고를 해도 두 상품이 서로 다른 제품이라는 것을 판매자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분리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간사 역시 “저작권 도용이 이뤄지는 주된 배경으로 지목돼 온 아이템 위너 제도는 이번 시정으로는 폐지되지 않는다. 아이템 위너로 선정된 판매자가 기존 판매자의 상품에 달린 사용후기·별점 등을 그대로 넘겨받는 시스템도 유지된다”며 이번 조처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쿠팡은 아이템 위너 제도가 가진 장점을 강조한다. 쿠팡은 “아이템 위너 제도는 가격·고객평가·배송 등 다양한 기준을 반영해 소비자가 최적의 상품을 쉽게 선택할 수 있게 하고, 판매자에도 광고비 중심의 출혈경쟁에서 벗어나 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며 “앞으로도 아이템 위너를 통해 판매자와 고객 모두 더 큰 만족을 주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바로가기: 쿠팡, 결국 ‘아이템위너’ 제도 손본다…“콘텐츠 권리 보장”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044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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