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개회식 중 선수단 입장은 스포츠로 우애를 다지기 위해 날아온 선수들을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참여하는 국가가 200여국에 달하는 탓에, 잘 모르는 국가의 선수단이 입장할 때면 보는 이들의 주의력이 분산되기도 쉽다. 그런 탓에 개회식을 중계하는 방송사들은 시청자들에게 짧은 시간 안에 각 국가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중계진의 멘트를 통해 각 국가의 위치나 역사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고, 화면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나 자막을 띄우기도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문화방송>(MBC)은 돌이키기 어려운 사고를 저질렀다.
지난 23일, 문화방송은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중계하며 각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마다 해당 국가를 설명하는 이미지와 자막을 화면에 띄웠다. 문제는 문화방송이 사용한 이미지와 자막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무례했다는 점이었다. 문화방송은 우크라이나 선수단이 입장할 때 체르노빌 원전 사고 사진을 띄우는가 하면, 아이티를 소개하면서 폭동으로 인한 화재 현장 사진과 함께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을 송출했다. 미얀마를 소개하며 ‘군부 쿠데타로 정국 불안’을 이야기하고, 시리아와 리비아, 소말리아를 이야기할 때는 내전을 언급했으며, 시에라리온은 다이아몬드 내전을 다룬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배경이었다고 서술했다. 이 각양각색의 결례 퍼레이드는, 각 국가를 소개할 때 국민소득과 백신 접종률을 함께 표시하며 국력의 위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문화방송이 시청자들에게 짧은 시간 안에 소개하고 싶었던 각국의 특징은, 참담하게도 그런 것들이었다. 오죽했으면 일본인 네티즌이 “우리 소개할 때 후쿠시마 사진 대신 스시 사진을 사용해줘서 고맙다”고 비아냥댔을까.
‘대통령 암살 정국’ 자막에 경악
중계를 지켜보던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악했다. “한국을 소개하겠다며 세월호 참사 사진을 사용한 격”, “타국의 가장 아픈 역사를 특징이라고 소개하다니 무례하다”는 비판들이 각종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실시간으로 올라왔고, 이를 본 해외 언론과 해외 네티즌들 또한 이 소식을 빠른 속도로 자국 언어로 번역해 전파했다. 문화방송은 중계방송이 끝나갈 무렵 방송을 통해 부적절한 사진과 자막의 사용에 대해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저지른 무례의 규모와 파장에 비하면 턱없는 사과였다. 결국 문화방송은 다음 날인 24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국가 국민과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며 엄정한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25일에도 문화방송은 남자축구 예선전 루마니아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한 마린 선수의 이름을 거론하며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자막을 띄워 일을 키웠고, 끝내 26일에는 박성제 문화방송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 숙여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비교적 거론이 덜 되고 있지만, <에스비에스>(SBS)와 <한국방송>(KBS)이라고 문제적인 발언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에스비에스는 이라크를 소개하며 “고대에는 인류 문명을 선도하는 곳이었지만 현대에는 오랜 군부독재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첨언하고, 아이티 선수단이 입장할 때는 어김없이 “얼마 전에 아이티 대통령이 총격으로 피살되면서 세계적인 충격을 던졌는데, 정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출전을 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투발루 선수단이 입장할 때에는 “지구 온난화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국가, 현재 아홉개 섬 가운데 두개가 이미 수몰이 됐고 마실 물도 점점 줄고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차분하게 입장하는 앙골라 선수들을 보며 “특히 아프리카 국가의 선수들이 좀 흥이 많은 편인데, 그걸 또 많이 표출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쉽다”며 은은한 인종적 편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부탄을 소개하며 “가스가 정말 부탄에서 나와서 부탄가스인 건가 항상 궁금했다”, 불가리아를 소개하며 “유산균의 힘인가” 같은 말장난을 일삼은 건 덤이다.
상대적으로 점잖은 축에 끼었던 한국방송 또한 아프가니스탄을 소개하며 “내전과 전쟁으로 고통을 많이 받은 나라. 2004년 선거를 통한 정부 출범 이래 반군과의 전쟁으로 치안이 불안한 나라”라고 설명하는가 하면, 예멘을 “내전의 아픔을 겪었고 지금도 휴전협정은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서술했다. 우크라이나를 소개할 때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비극적인 사고가 있기도 했었던 우크라이나”라는 설명을 덧붙인 건 매한가지다. 개중 그 정도가 가장 심했던 문화방송이 가장 크게 비난을 받고 있을 뿐, 각 국가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데 부적절한 언사를 일삼은 건 지상파 3사 중 그 어느 곳도 자유롭지 않다. 문화방송 중계에서 나온 말들은 이미지와 자막이었기에 캡쳐 화면 형태로 유통이 되어 상대적으로 전파가 쉬웠던 것에 비해, 에스비에스와 한국방송의 중계에서 나온 말들은 동영상을 직접 보지 않으면 확인하기 어려운 중계진의 멘트였다는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일상의 편견과 혐오, 다시 점검해야
‘문화방송만 잘못한 게 아닌데 문화방송에 너무 가혹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중계 참사를 목격하고도 문화방송‘만’ 비판하고 끝낸다면, 이와 같은 일은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다. 전세계인이 스포츠를 매개로 우애를 다지는 국제적인 이벤트를 중계하며, 지상파 3사 모두 상대적으로 저개발된 국가를 무시하는 듯한 멘트를 걸러내지 못했다. 타국을 내전이나 전쟁, 자연재해, 사고 등 그 국가의 가장 고통스러운 역사로 정의하는 듯한 사고방식도 숨기지 않았다. 만일 그 어떠한 이유로도 타국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한국 사회 전반의 상식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더라면, 그 어느 방송사도 감히 그런 멘트를 구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식민지배와 전쟁의 참화, 극단적인 가난과 군부독재를 모두 극복하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나라’라는 한국 사회 전반의 자긍심의 이면에는, 은연중에 그런 성취를 이루지 못한 국가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우월감이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닐까? 툭하면 “이러다가 베네수엘라 꼴 난다”는 말들이 정치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온라인에는 연일 중국계 한국인과 한국계 중국인을 싸잡아 비난하는 혐오 선동이 판친다. 누군가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과 흑인혐오를 지적하면 ‘흑인들도 아시아계 차별하지 않냐’는 피장파장의 오류와 ‘한국이 그렇게 싫으면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비난으로 맞선다. 이런 세상에서, 제 안의 편견과 혐오를 돌아보고 점검할 필요가 있는 건 문화방송 하나만이 아닐 것이다. 문화방송의 중계 참사 소식을 접한 피해 국가들은 “한국은 이웃 나라들을 혐오하느냐”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질문의 수신자가 ‘문화방송’이 아니라 ‘한국’인 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이승한 작가.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명 한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