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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티빙에서 ‘tvN 드라마’ 못 보면, 결국 어디로 갈까

등록 2021-09-11 09:53수정 2021-09-11 10:18

[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_ 자막 없는 OTT 티빙·웨이브

‘배리어프리’로 60만 시장 선점한 넷플릭스와 왓챠
한글자막 · 음성해설 앞서 장애인 아니더라도 유용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2>. 화면 갈무리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2>. 화면 갈무리

넷플릭스에 콘텐츠 시장의 안방을 다 내줄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일까. 최근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온 힘을 쏟는 눈치다. 씨제이이엔엠(CJ ENM)과 제이티비시(JTBC)가 함께 운영하는 티빙(tving)은 <여고추리반>을 필두로 <환승연애>, <마녀식당으로 오세요> 등의 오리지널 시리즈를 성공시켰고, 지상파 3사와 에스케이(SK)텔레콤이 함께 운영하는 웨이브(wavve) 또한 드라마 <유 레이즈 미 업>(이상 2021년)을 공격적으로 홍보하는가 하면 시트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드라마 <트레이서> 등의 제작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웨이브는 2025년까지 오리지널 콘텐츠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고, 티빙 또한 같은 기간 동안 5조원을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불과 수년 전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했을 때 “한국 콘텐츠가 거의 없는 플랫폼이라 한국에선 힘을 못 쓸 것”이라는 기이한 낙관론에 기대어 별다른 대처를 안 했던 것이나, 넷플릭스가 덩치를 키우기 시작하자 “거대 해외자본 대 국내 토종자본”이라는 구도를 꺼내어 호소했던 것에 비하면 생산적인 대처다.

 경쟁하겠다며 시청 장벽엔 무관심

그런데 콘텐츠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는 동안, 배리어프리(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서비스에서 이용 장벽을 없애 장애인 또한 동등한 환경에서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는 일)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글쎄, 아직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티브이엔(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2021)는 넷플릭스에선 한글 자막과 함께 볼 수 있지만, 티빙에선 여전히 자막 없이 봐야 한다. 지상파 프로그램도 사정은 비슷하다. 땅끝 해남에서 배드민턴을 하는 중학생들의 풋풋한 모습을 그려내어 화제가 된 에스비에스(SBS) <라켓소년단>(2021)은 웨이브에서는 그냥 봐야 하지만, 넷플릭스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자막뿐 아니라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음성과도 함께 시청할 수 있다.

지상파 방송사가 주주로 있는 웨이브에서 지상파 드라마를 못 보고, 씨제이이엔엠이 1대 주주인 티빙에서 티브이엔 드라마를 못 보는 사람들이 결국 어디로 갈까? 넷플릭스로 간다. 꼭 청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배리어프리는 유용하다. 세상 모든 배우들이 발음과 발성이 좋은 건 아니라서, 어떤 작품은 웅얼거리는 대사를 알아듣기 위해 몇번이고 다시 돌려봐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땐 그냥 넷플릭스에서 한글 자막을 켜고 드라마를 보는 쪽이 속이 편하다.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한답시고 화면을 온통 어두컴컴하게 연출한 드라마를 볼 때에는 화면해설음성이 쏠쏠하다.

에스비에스(SBS) &lt;라켓소년단&gt;. 화면 갈무리
에스비에스(SBS) <라켓소년단>. 화면 갈무리

에스비에스(SBS) &lt;라켓소년단&gt;. 화면갈무리
에스비에스(SBS) <라켓소년단>. 화면갈무리

스트리밍 서비스에 한글 자막이나 화면해설음성을 도입하는 게 기술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일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티빙이나 웨이브보다 훨씬 더 후발주자인 토종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Watcha) 또한 자막을 켰다 껐다 하는 서비스를 구현한 바 있다. 심지어 왓챠는 외국 드라마의 경우 한글 자막과 영어 자막을 동시에 띄우는 것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영어 공부를 하려는 사용자들을 노린 것이다.

자막을 켜고 끄는 게 기술적으로 크게 어려운 게 아니라면 대체 왜 안 하고 있을까?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 관계자들은 이렇게 해명한다. 넷플릭스의 경우 아예 판권을 사올 때 임의로 화면해설음성이나 자막을 제작할 권리도 같이 사오기 때문에 제작이 용이한 반면,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는 콘텐츠 제공자로부터 완제품의 콘텐츠만을 사오기 때문에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어렵다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씨제이이엔엠이 1대 주주로 있는 티빙이, 씨제이이엔엠의 티브이엔, 스튜디오 드래곤과 그 정도의 라이선싱 합의도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 아닌가. 웨이브도 그렇다. 주주인 지상파 3사가 자사의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그 정도의 합의도 안 해준다는 이야기 아닌가. 같은 지붕을 공유하는 식구끼리 그렇게 대화가 안 된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빠른 시일 내에 원만한 합의들을 보셨으면 좋겠다.

 한계 불가피? 극복 생각 없는 것

이와 같은 지적은 2021년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한국에 넷플릭스가 처음 진출했을 때부터, 사람들은 넷플릭스의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티빙이나 푹(웨이브의 전신)과 비교하며 ‘왜 한국 토종 스트리밍 서비스는 배리어프리에 이처럼 소극적이냐’고 꾸준히 물어왔다. 벌써 나도 이 주제로 글을 쓴 게 세번째다. 그리고 국산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그때마다 ‘기술적 한계’, ‘콘텐츠 수급 계약의 특성’을 핑계로 대며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은 2016년 1월, 지금으로부터 5년8개월 전이었다. 설령 기술적 한계나 콘텐츠 수급 계약의 한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걸 고쳐서 배리어프리 서비스의 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히 있었다.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게 아니라, 그냥 극복할 생각이 없었던 거다.

국내 스트리밍 시장 선점을 위한 티빙과 웨이브의 움직임은 공격적이다. 그런데 그 움직임은 비장애인들만을 향한다. 2021년 1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발간한 ‘한눈에 보는 2020 장애인 통계’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인구는 25만3천여명, 청각장애인 인구는 37만7천여명에 달한다. 국민 63만여명을 콘텐츠의 사각지대에 방치해두고서 월 순 이용자 수가 395만이니 265만이니를 따지며 자랑하고 있을 일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두 거인이 비장애인들만을 대상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는 와중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왓챠는 최근 한글 자막 지원 콘텐츠를 150여편까지 확대했으며 앞으로도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직 턱없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첫발은 뗀 것이다. 나는 티빙과 웨이브의 오리지널 콘텐츠 성공보다 왓챠의 한글 자막 확대가 더 반갑다. 이제 티빙과 웨이브 차례다.


이승한 _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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