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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흑고니를 경계하라” 중국 공산당이 언론 통제 나선 까닭은

등록 2021-09-11 16:30수정 2021-09-27 17:00

[한겨레S] 홍명교의 이상동몽 _ 천안문 광장의 흑고니와 언론 통제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이후 중국에서는 인터넷 여론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지난 6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상장(한국군 대장에 해당)으로 승진한 5명을 포함한 군 고위 간부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이후 중국에서는 인터넷 여론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지난 6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상장(한국군 대장에 해당)으로 승진한 5명을 포함한 군 고위 간부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지난 9월5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톈안먼) 광장 한복판에 흑고니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이른 아침 오성홍기 게양식 직후의 느닷없는 상황에 시민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몇 시간 뒤 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들이 나타나 상황을 정리했지만, 흑고니의 출현은 잇따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흑고니 이론’(black swan theory)을 연상시켜서다.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폭발하기 전 레바논계 미국인 저술가 나심 탈레브는 “예상할 수 없었던 사건이 실제로 발생하면 큰 후폭풍이 생기며, 분석하는 과정에서 ‘사고는 필연이었다’는 과장이 일어난다”며 이를 흑고니에 빗대 설명한 바 있다. 자본가들에게 글로벌 금융위기는 ‘흑고니’였고,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 모순을 드러냈다.

“흑고니와 회색코뿔소 주의” 시진핑의 지시

시진핑 주석도 ‘흑고니’를 언급한 바 있다. 건국 70돌을 맞이한 2019년 1월 시 주석은 전국의 성급 고위관료들이 모두 모인 중앙당교 행사 연설에서 “국제정세는 변화무쌍하고 외부 환경은 복잡하다”며 “흑고니와 회색코뿔소 사건을 경계하고 위험천만한 상황을 기회로 바꾸는 전략적 이니셔티브를 펼치자”고 말한 바 있다. 올해 초 열린 당 중앙정치국 집체학습에서도 시 주석은 “복잡하게 얽힌 국제정세가 중국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인식하고 전략적 역량을 유지하면서도 각종 흑고니·코뿔소 사태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안전성을 강화하라”고 재차 주문했다. 여기서 ‘회색코뿔소’는 지속적인 경고를 통해 충분히 인지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요인을 지칭한다. 가령 2019년 홍콩 시위는 중국 공산당에 ‘회색코뿔소’로 인식됐다. 이 사건이 이해하기 어려운 과잉 진압과 시민사회에 대한 탄압으로 점철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렇다면 사회 내부에서 촉발되는 ‘흑고니 사태’는 어떻게 차단될까? 그 답은 시민사회와 언론에 대한 통제다. 후진타오 시기에는 사회문제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했고, 때때로 이는 시민사회를 형성시키는 원동력이었다. 한데 그것이 시진핑이 집권한 2013년부터 악화되었고, 제도 변화가 이를 뒷받침했다. 2014년 초 시진핑 주석이 직접 지휘하는 사이버안전·정보화 영도소조가 출범하는데, 이는 인터넷 여론의 장악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삼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한다. 2018년 중국 정부는 인터넷정보판공실을 당 중앙위 직속기구로 명시하고, 지방 각급 당위원회 산하에도 담당 기관을 설치한다. 이로써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어지는 인터넷 감시단이 조직된 셈이다.

각급 인터넷정보판공실의 주된 업무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정보를 심사하고 차단하는 것이다. 검열 대상이 방대하기 때문에 해마다 인력이 늘고 있다. 인터넷평론공작국, 사이버안전심사판공실, 위법·불량정보신고센터, 인터넷여론센터 등 직속 부서들이 있다. 이 밖에 공산주의청년단이 세운 청년인터넷문명봉사단은 대학생들을 모집해 인터넷에 긍정적인 콘텐츠를 홍보하고, 부정적인 콘텐츠를 신고하는 활동을 펼친다.

이런 활동은 코로나 시대를 맞아 더욱 심화됐다. 가령 항저우시 인터넷정보판공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최초로 발견한 리원량 의사의 죽음에 관한 소셜미디어 인기 검색어를 삭제하도록 했고, 정부에 부정적인 기사의 송출을 차단했다. 또 위챗 여론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누리꾼(네티즌) 1500명을 조직하고, 하루 6천건의 메시지를 리트위트하도록 지시했다. 최상급에서는 추상적으로 내려진 지시가 구체적인 현장에서는 극단적인 형태로 체현되는 것이다. 이처럼 규범성 문건이나 지시 같은 연성법들이 헌법과 법률을 압도하는 수준으로 자리잡아, 시민들의 실제 삶을 통제하는 시스템이 강화되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낯설지 않다.

지난 3월 말 인터넷정보판공실은 “역사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가짜뉴스를 온라인에 유포하고, 악의적으로 당의 역사를 왜곡·폄훼·부정”하는 행위를 신고하는 핫라인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갑자기 ‘역사 허무주의’라니 무슨 말일까? 중국의 철학자 허자오톈은 문화혁명의 좌절 이후 청년들이 삶의 의미라는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심신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윤리·생활의 감각을 형성하기 어렵게 되고, 자아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된 상황을 돌아본다. 이로 인해 도덕의 위기와 허무주의가 만연해졌고, 오늘날 중국 사회의 정신적 공황이 만들어졌다고 분석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허자오톈은 윤리적 문제를 자본주의나 현대성의 모순, 인문정신의 결핍 등으로 추상화하지 말고, 역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에서 제기된 곤경에 대해 개혁 대 반개혁, 봉건 대 계몽, 혁명세대 대 신세대와 같은 이원대립의 도식으로 단죄할 게 아니라 역사 발전의 복잡하고 다양한 가능성들을 사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허무주의’ 싹을 자르다

하지만, 역사 허무주의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은 그와 정반대다. 최근 중국은 역사 허무주의 척결, 알고리즘 남용, 사이버 수군, 미성년자 인터넷 환경 등 8개 사안에 대해 광범위한 척결 작업에 착수했다. 이른바 ‘칭랑(淸朗) 행보’가 그것이다. 200만이 넘는 팔로어를 둔 팬클럽 계정 2개가 폐쇄되는 등 연예인 팬덤 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 조처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팬덤문화가 아니다. 수백만의 청년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모여 통제되지 않는 행동을 벌인다는 점이 통치자들에 의해 문제적으로 여겨졌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강력한 이분법이 작동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청년들의 역사 허무주의가 통치 정당성을 위협한다고 본다. 지난 4월 인터넷상에서 “열심히 일할 필요 없다. 최선을 다해 눕는 게 현명하다”며 “탕핑(눕기)이야말로 정의”라는 구호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행하자, 곧바로 이 단어를 원천 차단하고 관련 게시물을 삭제한 것도 이런 생각과 맞닿아 있다.

폐쇄와 금지로 ‘역사 허무주의’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엉뚱한 진단이다. 오히려 청년들에게 더 많은 사유와 실천의 공간을 허용해야, 그 과정을 통해 당대를 복합적이고 역사적인 시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집회 결사와 표현의 자유 등 모든 걸 통제하겠다는 태세는 더 많은 냉소와 허무주의를 낳을 뿐이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하기 마련이고, 지배계급의 불안은 더 많은 아이러니를 낳을 수밖에 없다. 천안문 광장에 출현한 흑고니가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홍명교 _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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