떤 국회의원이 임기를 다하는 시점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조직의 결정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면 이미 뒤처진다.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뛰어다니지 않으면 다시 공천을 받기도 어렵다.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조직의 결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이라면 하나도 부럽지 않은데. 더구나 국회는 바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기를 쓰고 싸워야 하는 곳이고, 때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바람을 뒤에 업고 일을 해야 하니 얼마나 많은 원념과 원한이 쌓였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 것들을 볼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오월중개소의 최두겸 소장을 국회로 부른다면 너무 시끄러워서 기절하지 않을까?
최두겸 소장이 주인공인 <어둠이 걷힌 자리엔>의 배경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1920년대 언저리의 경성이다. 일제 치하라서 우리는 큰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1920년대는 세계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세계 대전을 겪고 난 이후라 삶과 죽음에 대한 허무와 환멸을 느낀 이들이 많았고 눈앞의 생을 즐기려고 했다. 지금도 그 당시의 건축물이나 소품들을 들여다보면 우아한 자태와 섬세한 마감에 탄성이 절로 난다. 작가는 그 시기의 경성을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가 혼재하는 도시’라면서 배경으로 삼았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삼은 만화나 영화가 노리는 것은 조선 시대의 낡은 사고와 서구가 혼입해 들어온 시대의 충돌에 21세기의 가치관을 투영해서 재미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최두겸 소장은 귀신과 영물들을 보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서 생기는 오해를 풀어주는 중개소를 한다. 원귀는 보통 산 사람들의 잘못으로 생긴다. 거꾸로 선 뼈가 있는 아이가 반골의 상이라고 집안을 망칠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던 오씨 가문, 환쟁이를 사위로 들일 수 없었던 추 생원, 시종으로 살던 섭섭이가 자진할 수밖에 없도록 몰았던 이 부자, 부인을 때려 도망가게 만든 정이 남편. 이들이 원귀를 만든다. 따라서 원귀의 서러운 마음은 산 사람들이 풀어주어야 마땅하다. 풀어야 할 원과 한이 넘치니 오월중개소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오월중개소가 생기기 전에는 이런 원한을 풀어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이 땅의 원귀들은 하소연 들어주는 이 없이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바람에 원귀가 악귀가 되고, 바람직하기는 악귀들도 한을 풀어주고 저승으로 보내주어야 마땅하지만 그들이 산 사람을 해치니 일일이 절차를 밟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우물에 원래는 용이 될 수 있는 영물인 뱀을 봉인해서 원귀를 잡아먹도록 했다. 용이 될 뱀은 산 사람을 위해 원귀를 잡아먹다 요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친 이 뱀과 원통한 마음을 위로받지 못하고 뱀에게 잡아먹힌 혼령들을 잊고 죄를 감추기 위해 우물에 무고한 이들을 던진다.
이 뱀의 이름은 치조. 그가 무고하게 우물에 던져진 최두겸에게 자신의 능력을 나누어 주었고, 벼락을 맞고 원귀를 정화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월중개소에 합류한다. 앞으로는 엄청난 능력을 갖춘 치조까지 합류했으니 더 흥미진진한 일들이 벌어지겠지. 벼락을 맞고 세계로 흩어진 치조의 다른 조각은 어디로 갔을까? 만화 속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풀려갈지도 궁금하지만, 그 한 조각은 2021년 서울에 왔으면 좋겠다. 정치의 계절에 온갖 원념을 녹여내고 있는 여의도에서 오월중개소 시즌2를 함께 시작하고 싶다.
만화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