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인 은용씨를 만난 건 지난해 딱 한번이었다. 나 역시 처음 쓰는 희곡을 준비 중이었고, 우리 연극 연출가인 정은영 작가의 제안으로 은용씨의 작품을 보게 되었다. 비가 내렸다 갰다, 나는 끝내 우산을 펼쳤고, 대로변에 자리한 오래된 극장은 유적 같았다.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라는 제목의 포스터는 비에 젖어 흘러내렸는데, 비가 흘러 흐르는지 글자가 구겨져 흐르는지 알 수 없었다. 괄호 안에 묶은 ‘아니’라는 두 글자는 오히려 아닌 게 아니라는 의미처럼 읽혔다. ‘아닌 것’이 ‘아닌 게 아닌 것’이 되어 팩트보다 더 강렬한 진실을 전달하는 그 문장은, ‘농담’이라는 주어 아래 다시 휘어진다. 그래서 농담이란 건가 아니란 건가 어리둥절해지는 사이, 아마도 바로 그 순간 작가의 의도는 스쳐 갔을 것이다. 모두에게 각자 다른 방식 다른 순간에 스쳐 갔을 그 찰나. 트랜스젠더 당사자인 그가 무대 위에 올리고 싶은 것들이란 결국 그 찰나에 관한 것과, 그 찰나 앞에 선 인간 군상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연극에 무지했고 멍청했던 나는 관광지 나들이 온 사람처럼 연극 무대에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다가 제지당했다. 나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서 얼굴이 벌게져 극이 시작될 때까지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리고 은용씨가 무대 위에 올리고 싶었던 것들을 봤다. 들려주고 싶은 말들을 들었다. 시끄럽게 흐르던 ‘길고 긴 찰나(刹那)’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나는 기억한다.
연극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부끄럽게도 나에게 마이크가 주어졌다. 나이가 들면서 될 수 있는 한 말을 줄이며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 요즘인데, 그날 역시 내가 한 말들은 하나 마나 한 것들이었다. 작품이 무대 위에 부려 놓은 수많은 것들을 제대로 짚어내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나잇값만큼의 희망조차 말해주지 못했다. 젊고 환한 얼굴의 트랜스젠더 청년의 모습에 그저 안심했을 뿐, 나는 내가 했던 말들에 깔려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관객과의 대화 자리까지 끝나고 관객들이 모두 나간 뒤, 은용씨와 객석에 서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내가 쓴 책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을 부끄럽게 내밀었고, 은용씨는 좋아하며 받아주었다. 무슨 말을 했더라, 연극 잘 봤다고 했겠지, 힘내자고 했겠지. 앞으로 멋진 작품들 더 써달라는 말을 했던가. 나는 날씨 때문인지 공연장의 어둠 때문인지 아니면 내 부끄러움 때문인지, 우리가 나눈 말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복잡한 어둠 속에도 너무 환해 잊을 수 없던 것이 있었으니, 내 앞에 선 청년의 눈빛이었다. 관객과의 대화 때는 어깨에 힘을 주느라 조금 경직되어 보이던 그는, 내 책을 들고서 환하게 웃어주었다. 편안하게 휘어지던 두 눈, 아이 같은 미소로 밀려 올라가던 두 볼, 소년 같던 매력적인 목소리, 나는 순식간에 그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제 막 작품을 시작했으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근사한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을까, 나로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트랜스젠더의 예술 세계가 이 청년 예술가의 손에서는 분명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꼰대짓인 줄도 모르고, 나는 단박에 오지 않은 시간까지 달려 나갔다. 우리 꼭 다시 만나자고 했다. 책을 내고 싶다고 그는 말했는데, 당연히 기회가 있을 거라고 꼭 다시 보자고 했다. 정말, 곧 볼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공연장이든 책을 내는 편집회의든, 아니면 밥집이나 술집에서라도 곧 보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 순간, 그 복잡한 어둠 속, 그 짧은 인사가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변희수 하사는 직접 만나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여기 이 지면을 통해 변 하사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적었지만, 나에게는 그를 볼 용기조차 없었다. 아직도 나는 그들에게 뭘 보여줘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입을 벌리면 후회할 말들을 할 테고, 제 안에 침잠한 인간이라 또 멍청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는데,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낫지. 내 안에 남은 거라곤 케케묵은 회의감뿐이다.
재회 기대했던 트랜스젠더 청년 그 어둠 속 인사가 마지막이었다
왜 이리 많은 이들이 죽어야 하나 그곳에서 비로소 꿈인 채 살기를
그러니 나에게 변희수 하사는 티브이 화면 속 얼굴이 전부였다. 떨리는 손을 눈썹 옆에 붙이고서, 자신의 복무 정당성을, ‘군인’으로 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을 말하던 그 얼굴뿐이다. 나는 그의 기자회견을 집에서 보았는데, 울먹이는 그 얼굴에 붙들려 꼼짝할 수 없었다. 그 주에 언론사에서 그와 관련된 글을 적어달라고 요청했지만, 나는 쓸 수 없었다. 너무도 출렁거리는 그 마음을 어디에서 어떻게 적어내려갈지 감당하기 힘들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몇달이 지나서야 그에게 보내는 마음을, 간신히 편지 한 장으로 적었을 뿐이었다.
물론 편지를 적으면서도 변 하사를 직접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아닌가, 보고 싶은 마음의 그림자인가? 이다음 언젠가 만나면 손이라도 꼭 잡아주어야겠다는 다짐의 부스러기인가? 언젠가부터 성소수자를 만나면 농담처럼 ‘죽지 말자’고 말하곤 하는데, 변 하사에게도 그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랬다면 농담 같던 그 말이 그를 여기에 붙들어 놓을 수 있었을까, 우린 같이 늙어갈 수 있었을까?
최근에 법원이 육군의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성확정수술을 받은 변희수 하사는 자신이 살고자 하는 성별로 직무능력을 다시 평가받아야 하며, 기존에 표기된 ‘남성’을 기준으로 내린 평가는 잘못된 것이고, 앞으로 성정체성 혼란으로 수술을 받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사유로 위법한 처분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뭐 그런….
애써주신 모든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되겠지만, 나는 차마 기쁨의 말조차 입에 담지 못했다. 기쁨이라니, 나에게는 도저히 상상조차 불가능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법이 있고, 제도가 있고, 정치가 있는 걸 텐데, 우리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죽였나? 찰나의 순간, 허망한 웃음이 부스러지듯 쏟아진다. 희망을 말해야 하는 내 숙명을 잠깐 놓친다.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고 어른들은 이따금 하찮은 인간의 몫을 준엄하게 꾸짖곤 하는데, 지금까지 죽어간 성소수자들은 어떤 얼굴로 여기를 내려보고 있을까? 늦게 온 봄처럼 모든 꽃 다 떨어지고 모든 싹 다 짓밟혀졌지만, 그래도 오셨으니 봄이라고 좋아해줄까? 지상에서 이루지 못했던 당신들의 뜻은 아름답지 않은 것 없었으니, 그곳에선 비로소 꿈인 채 살길 바란다. 언제나 하찮은 농담보다 못한 것으로 여겨지던 그 삶이, 하늘의 법으로 그곳에선 제일 아름다운 채 지켜지기를. 꼭 그러기를.
김비 소설가.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