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공모전을 통해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뽑았다. 아름다움은 제 눈에 안경이라 뽑힌 책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출간된 모든 책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공모에 참가한 책들 중에서도 ‘객관적으로’,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사용된 글자체, 페이지마다 치밀한 계산으로 짜 넣은 구조, 사용된 종이, 종이를 묶은 방식, 그리고 표지, 그 위의 글과 그림, 전체적인 조화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점수를 매겼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심사하는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다른 것들을 어떻게 좁혀 갈 것인가? 우리가 택한 방법은 오랫동안 토론하는 것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오랫동안 훈련받은 전문가들이니 대상이 된 책들을 요리조리 뜯어보면 장단점이 다시 드러나고 책들 사이의 우열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책이 탄생한 배경을 소상히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는 책들도 있었다. 긴 토론을 거쳐도 우리에게 주어진 사실들은 조각들이고 오히려 책들에 대한 정보의 격차는 더 커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토론 없이 점수를 먼저 주고 평균을 내는 것이 오히려 공정할까? 평균은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을까?
판단이 어려울 때면, 전지적 작가가 되고 싶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작가는 억울한 구석 없이 문제를 풀 수 있겠지. 작가의 손끝만 보면서 가슴을 죄고 있는 독자들의 궁금함에 동참해 쫄깃함을 맛보는 것도 좋지만 결국은 못 참고 스포일러를 뒤져보는 마음이랄까? 물론, 작가도 자기가 앞에서 던진 떡밥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스포일러를 알고 있는 독자가 다시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살면서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이다.
총 연재 횟수 3149회, 평균 조회 수 1.9회, 평균 댓글 수 1.08개인 인기 없는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28살 김독자는 이 소설을 10년 넘게 읽은 유일한 독자다. 갑자기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되면서 김독자는 그 세계의 결말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과는 다르게 1억뷰를 넘긴 베스트셀러 웹소설이고 그 웹소설이 만화가 되었다. <오징어 게임>처럼 게임의 규칙이 주어지고 실패하면 잔인하게 죽는 세계가 펼쳐진다. 규모는 훨씬 커서, 우주의 어느 곳에서 지구 위에서 벌어지는 게임을 보면서 내기를 거는 사람들이 있고, 지구 위의 상황을 중계하는 도깨비들이 있고, 살아남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만화의 원작이 이렇게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이야기를 알고 있는 김독자가 단순히 그 점을 이용해서 살아남고 활약을 한다는 점이 아니다. 웹소설의 작가가 댓글을 보고 작품의 방향을 수정하듯, 정해진 시나리오가 참여자들의 의지에 의해서 바뀌고, 그 작은 변화가 결말을 모호하게 만들어 김독자를, 그리고 독자들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의 큰 흐름만 알고 있어도 히어로가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세상을 구할 깜냥은 없지만, 살면서 해야 하는 작은 판단들이라도 사정을 잘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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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우 _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