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험에서 출제 오류 논란을 빚은 생명과학Ⅱ 문항에 대해 법원이 1심 본안 판결 전까지 정답 결정의 효력을 정지하라고 판단했다. 성적이 통보되기 전 법원이 수능 정답의 효력을 정지한 첫 사례로, 생명과학Ⅱ 응시생들의 해당 과목 성적 통보는 미뤄지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올해 수능 생명과학Ⅱ에 응시한 수험생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20번 문항 정답 결정을 본안소송 판결 전까지 멈춰달라’며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 9일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20번 문제 정답을 ⑤번으로 결정한 (평가원) 처분의 효력이 유지될 경우 신청인들은 이에 따른 생명과학Ⅱ 과목의 등급이 결정된 성적표를 받게 되고, 이를 기준으로 2022학년도 대입 수시전형 및 정시전형에서의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이로 인한 손해는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하므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 ⑤번을 정답으로 결정한 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가처분 결정을 하며 무엇이 정답인지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 1심 본안 판단은 효력 정지 결정을 한 행정6부가 맡는다. 재판부는 “이번 결정으로 성적 통보가 지연될 수 있고, 이에 따라 2022학년도 대입 전형일정에 지장을 줄 수 있지만 효력 정지 기간을 본안 판결까지로 정해 신속히 심리하면 지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대입 전형일정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신청인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생명과학Ⅱ 20번은 집단 Ⅰ과 Ⅱ 중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이 유지되는 집단을 찾아 3개의 보기 중 옳은 것을 고르는 문제다. 소송인단은 특정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는 중대한 오류가 발생해 제시된 조건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집단이 존재할 수 없으므로 20번 문항 자체가 오류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평가원은 “이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며 지난달 29일 ‘이상 없음’ 결론을 내렸다.
교육부는 이날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입장문을 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에 응시한 모든 수험생에게 예정대로 10일 채점 결과를 통지한다. 다만 생명과학Ⅱ응시생 6515명의 생명과학Ⅱ성적은 추후에 제공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교육부와 평가원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들과 신속히 협의해 빠른 시간 안에 향후 대입일정 등을 안내하겠다”며 “본안 소송이 신속하게 진행돼 대입 일정에 차질이 없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법원의 판단을 앞두고 있었다면 미리 경우의 수를 따져 대비를 해뒀어야 한다”며 교육부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했다. 생명과학Ⅱ 응시생들은 대부분 서울대나 의대를 지망하는 이과 최상위권 학생들로, 여러 의대·약대에서 생명과학Ⅱ 응시자에게 가산점을 주고 있다.
한편 1994년 수능이 처음 도입된 이후 복수 정답이 인정된 경우는 5문항, 출제 오류가 인정된 문항은 1문항이다. 법원이 출제오류를 인정한 문제는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 문제였다. 당시 일부 수험생은 수능등급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냈지만 1심에서는 패소했고, 11개월이 지난 뒤에야 항소심에서 출제 오류라는 판결을 받았다. 당시 교육부는 해당 학생들에게 정원 외 입학, 또는 편입 등의 구제 방안을 내놓았다.
앞으로 재판부는 평가원 의견, 관련 학회 의견, 고등학교 교과서 내용 등을 종합해 생명과학Ⅱ 정답 여부 또는 출제오류 등을 최종 판단하게 된다. 2014년도 세계지리 문제를 심리한 재판부는 국제기구 홈페이지 등까지 조사했다.
신민정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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