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청각장애 히어로물 ‘호크아이’…“비장애가 우월 아냐”

등록 2021-12-10 18:43수정 2021-12-11 09:41

[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호크아이’
드라마 <호크아이>는 전장을 누비다 소리를 잃은 주인공 클린트 바튼(오른쪽)을 통해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어떤 위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디즈니플러스 화면 갈무리
드라마 <호크아이>는 전장을 누비다 소리를 잃은 주인공 클린트 바튼(오른쪽)을 통해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어떤 위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디즈니플러스 화면 갈무리

※이 글은 드라마 <호크아이>(2021)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호크아이>는 평범한 인간의 육체로 초인들이 누비는 전장을 함께해야 했던 ‘호크아이’ 클린트 바튼(제러미 레너)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흔적들을 살핀다. 그는 소중했던 동료를 먼저 보내야 했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히어로로 살기 위해 가족 곁을 비워야 했던 죄책감에 짓눌린다. 그리고, 이제 클린트는 청각장애인이다. 수십년간 총성과 폭발음이 울려 퍼지는 전장을 누볐던 탓에 클린트는 보청기 없이는 듣는 일이 쉽지 않다. 뒤늦게 배우기 시작한 수어는 아직 손에 익지 않았고, 청인(비청각장애인)이던 시절에 익숙해져 있던 감각 탓에 보청기 없는 삶은 많이 낯설다.

전투 중 보청기가 부서져 수리를 맡겨야 하는 상황, 클린트는 집에서 걸려온 막내아들 네이트(케이드 우드워드)의 전화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아빠가 보청기가 박살 날 만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사실을 아들에겐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곁에 있던 수제자 케이트 비숍(헤일리 스타인펠드)이 네이트의 말을 메모장에 적어 보여준 덕에 태연한 척 대꾸를 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아빠가 보고 싶다고 전화를 건 아들과 한마디도 못 나눌 뻔했다. 이 장면에서 <호크아이>가 클린트의 청각장애를 연출하는 방식은 다소 흥미롭다. <호크아이>는 네이트가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청인 시청자들에게도 제대로 들려주지 않는다. 마치 방 몇개 너머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소리처럼, 주변 소음이나 네이트의 목소리는 아주 멀리서 웅웅거리는 감각으로만 들린다. 청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클린트가 경험하는 감각을 청인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전장 누비다 소리 잃은 주인공
소리 의존하지 않는 상대 통해

청인·농인 다룬 독특한 연출 눈길

보청기가 고장 난 상태에서 펼쳐진 자동차 추격전 시퀀스처럼 청각장애인인 것이 큰 변수가 아닌 상황에서는 구태여 이런 방식의 연출을 선보이지 않지만, 스토리텔링상 클린트가 경험하고 있는 감각이 어떤 것인지 청인 시청자가 체감하는 게 중요한 상황에선 사운드 연출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의 접근은 흥미롭다. 잠시 ‘체험’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청인 중심의 연출이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이 장면의 연출은 최소한 청인들끼리 음성언어로 대화를 나눌 때 그 정보를 딜레이를 거쳐 전달받아야 하는 감각은 어떤 것일까 곱씹어보게 만든다.

<호크아이>가 클린트의 청각장애를 연출하는 방식이 ‘다소’ 흥미롭다면, 이번 드라마에서 클린트의 적으로 처음 등장한 캐릭터 ‘에코’ 마야 로페즈(알라콰 콕스)의 청각장애를 접근하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청인으로 살다가 청각장애인이 된 클린트가 경험하는 감각이 ‘낯섦’인 것과 달리, 날 때부터 청각을 상실해 일평생을 농인(음성언어 대신 시각언어인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그에 기반한 독자적인 농문화를 영위하며 사는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온 마야에게 그 상태는 ‘익숙함’이다. 농학교에 진학시켜주겠다던 아빠 윌리엄(잰 매클라넌)의 약속은 경제적 사정 때문에 좌절됐고, 마야는 어려서부터 일반 학교에 다니며 청인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했다. 덕분에 마야는 청인들의 입 모양을 읽는 연습부터, 청인들이 간과하고 지나가는 순간적인 표정의 변화, 근육의 움찔거림 같은 걸 읽어내는 능력을 키웠다. 농인인 마야가 비장애인들을 가볍게 압도하는 무술 실력을 갖추고 ‘트랙수트 마피아’라는 범죄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처음부터 청각정보의 빈자리를 시각정보로 보강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대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마야의 관점에서, 청각의 부재는 결손이나 단점이 아니라 그냥 ‘다른’ 것이다. 클린트와 처음 마주한 순간, 마야는 클린트의 보청기를 보고는 바로 수어로 말을 건다. 그리고 아직 수어가 서툰 클린트가 동문서답을 하자, 마야는 “당신은 기계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말한다. 수화통역가를 거쳐 마야의 말을 전해들은 클린트는 “글쎄, 내가 쓰는 무기라는 게 막대기 두개랑 줄 하나가 다인데…”라고 반문하지만, 마야는 말한다. “아니, 보청기 말이야. 없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잃어가는 청력을 기계로 보강하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지만, 아예 청각이 없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발언. 이는 소리를 듣는 청인의 상태가 ‘정상’이라는 청인 중심의 사고방식에서는 나올 수 없는,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어떤 위계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비장애도 ‘다른 것일 뿐’ 메시지
장애는 결손이나 부재 아닌 ‘다름’

호크아이의 적이 말하는 ‘다름’

한국 사회는 아직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 서비스나 고용촉진 정책, 유니버설 디자인(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게 설계된 제품, 건축, 환경, 서비스 등을 일컫는 말) 등을 “장애인들 편의를 봐주기 위해 베푸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풍조가 강하다. 농인들이 수어방송의 확대를 요구할 때면 청인들의 시청권을 침해한다는 말이 나오고, 비장애인의 미감에 맞춘답시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을 일반 보도와 구분이 안 가는 색깔로 칠해버리기도 한다. 지난 6일 서울교통공사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휠체어 승하차 시위를 막겠다며 혜화역 2번 출구 엘리베이터를 한시간 넘게 폐쇄했을 때, 그 치졸한 처사에 분노하고 항의한 시민들도 많았지만 동시에 온라인 한편에선 “바쁜 출근시간에 시민들의 발을 볼모로 무턱대고 생떼를 쓰는 사람들”이라고 투덜거리는 비장애인들의 혐오 발언도 공존했다.

비장애를 ‘우월한 정상’으로, 장애를 ‘비장애인들의 도움이 필요한 비정상’으로 바라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발언이다. 난 그런 이들에게 <호크아이> 시청을 권하고 싶다. 그들이 청력을 상실해가는 클린트가 경험하는 막막함이란 어떤 것인지 상상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막막함은 그저 세상이 청인 중심으로 설계되었기에 오는 것일 뿐, 비장애와 장애는 우열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것’이라는 마야의 말도 접해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유니버설 디자인은 우등한 비장애인이 열등한 장애인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그냥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해 있는 다양한 시민들을 차별 없이 아우르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으면 좋겠다.

주말뉴스 <S-레터>로 손쉽게 보세요.

구독하기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15

이승한 |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민주주의 망가질 것 같아서”…서울 도심 거리 메운 10만 촛불 1.

“민주주의 망가질 것 같아서”…서울 도심 거리 메운 10만 촛불

[영상] ‘윤 대통령 거부권’에 지친 시민들의 촛불…“광장 민심 외면 말라” 2.

[영상] ‘윤 대통령 거부권’에 지친 시민들의 촛불…“광장 민심 외면 말라”

‘TV 수신료 통합징수법’ 국회 소위 통과에…KBS 직능단체 “환영” 3.

‘TV 수신료 통합징수법’ 국회 소위 통과에…KBS 직능단체 “환영”

음주 측정 거부·이탈 뒤 2주만에 또…만취운전 검사 해임 4.

음주 측정 거부·이탈 뒤 2주만에 또…만취운전 검사 해임

오세훈, 동덕여대 시위에 “기물 파손, 법 위반”…서울시장이 왜? 5.

오세훈, 동덕여대 시위에 “기물 파손, 법 위반”…서울시장이 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