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형사 면책규정(형사책임의 임의 감면) 도입이 필요한 근거로 꼽은 대표 사례 13개가 사실상 법 개정과 관련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경찰은 면책규정 법제화를 위해 국회를 설득해왔는데, 기존에 불기소되거나 형사사건화되지 않은 사건까지 근거로 삼은 것은 무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경찰 형사책임감면 조항 신설 문제점과 대안’ 긴급좌담회에서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실행위원(변호사)은 경찰이 꼽은 ‘직무수행 과정에서의 경찰관(국가) 등 피소 사례’ 13개를 분석해 반박했다. 경찰은 범죄 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다가 일반 시민 등 타인에게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형사책임을 감경·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경찰관직무집행법’(경직법) 개정안 통과를 추진 중이다. 법안은 지난달 3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하고 현재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계류된 상태다.
양홍석 변호사가 경찰관의 직무수행 과정 중 피소 사례 내역을 분석한 결과, △이미 고의 또는 중과실이 인정돼 법이 개정되더라도 형사책임에 대한 임의적 감면이 불가능한 사례이거나 △현행법에 따라 이미 형사책임을 지지 않은(불기소 처분 등) 사례였다.
경찰의 사례 중에는 조현병이 있던 시민이 정신병원 입원을 거부하며 삽과 낫을 들고 난동을 피우자 경찰이 테이저건으로 제압하다가 심장마비로 숨진 사건이 있다. 해당 경찰관은 업무상과실치사와 경직법 위반으로 고소를 당했지만, 이 경우 정당행위로 인정돼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법 개정이 되지 않아도 이미 경찰 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해 보호 받은 사례인 것이다.
술집에서 난동을 부려 체포하려던 피의자를 순경이 밀었다가 바닥에 머리를 찧어 뇌진탕 진단을 받은 사건의 처분도 양홍석 변호사는 법개정 여부와 상관없는 사례라고 짚었다. 난동을 피우던 피의자는 직권남용·독직폭행으로 순경을 형사고소했다. 해당 순경은 형사합의를 했고 선고유예(징역 6월) 처분을 받았다. 민사 소송 1심에서도 국가와 공동으로 4억8354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양 변호사는 “경찰관이 국가와 공동으로 민사책임을 진다는 것은 고의 또는 중과실이 인정된 사례로, 법이 개정되더라도 임의적 감면이 불가능한 사례”라며 “일반인의 경우엔 선고유예는 불가능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피의자를 체포할 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경우까지 경직법 개정안 도입 필요 사례로 꼽았는데, 해당 사건은 형사사건화되지 않은 경우라 ‘형사 면책규정’ 근거를 부여하는 법 개정 내용과 관련이 없다. 양 변호사는 “실제 경찰관이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형사처벌된 사례는 극히 드물고 형사처벌을 하게 되는 경우라도 정상을 참작해 상당히 가볍게 처벌하고 있다”며 법 개정의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경찰청은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 등과 법 조문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앞서 지난 8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법안이 계류되면서 박광온 법사위원장은 “경찰청장은 법안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사례와 통계 등 관련 자료를 상세히 준비해주셨으면 좋겠다. 또 관계부처와 협의 진전된 내용도 다음에 설명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하며 회의를 마쳤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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