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열린 소상공인·자영업자 생존권 결의대회에 참가한 자영업자들이 보상 없는 영업제한 철폐와 생존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 앞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동료 자영업자들에게 묵념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우리 법정에는 창이 없다. 환한 빛이 드는 법정은 영화와 드라마에만 존재한다. 외부와 차단된 이 공간에서 매일 수많은 이들의 한숨과 환호가 교차한다. 몇 줄 판결문에 평탄했던 삶이 크게 출렁이기도 하고, 스스로 어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은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재판은 우리 이웃을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는 가늠자다. 평범한 이들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작은 창을 내려는 이유다.
분홍색 마스크를 쓴 정미숙(가명·51)씨가 지난달 말 서울의 한 법정에 섰다.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홀로 법정에 나온 정씨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신의 재판을 기다리며 방청석에 앉아있을 때도, 피고인석에서 판사의 질문을 받을 때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는 간혹 눈물을 닦았고,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서울 관악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정씨는 지난 6월 집합금지명령을 위반하고 장사를 한 혐의(감염병예방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는데, 벌금이 부담된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수많은 노래방이 직격탄을 맞았다. 그가 변호사도 없이 법정에 선 이유일 것이다.
정씨는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도 동의한다고 했다. 검사는 약식명령과 같은 벌금 200만원을 구형했다. 재판이 끝나기 전 최후진술에서 정씨는 말했다. “법을 위반한 것이 사실입니다. 생활이 어려워서 위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재판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일주일 뒤 열린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정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그대로 선고했다.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하면서 법정에서는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자영업자 등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방역을 위해 장사할 자유 등이 상당 부분 제한되면서, 코로나19 이전에는 당연했던 일상 가운데 일부는 범죄가 되기도 한다.
서울 종로구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이상현(32·가명)씨도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5월, 방역수칙을 위반하고 손님 7명에게 술을 팔다 적발된 것이다. 이씨는 법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영업제한은 저처럼 영세한 술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고 불공평합니다. 법을 어긴 잘못은 잘 알지만, 답답하고 억울한 부분이 많아서 정식 재판을 청구했습니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인 이들도 법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조현우(가명·31)씨는 지난 8월 집합금지명령을 어기고, 밤 10시 이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제풀이 강의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학원 강사는 자영업자로 분류되기도 한다. 조씨는 재판에서 “사회 초년생으로 눈앞의 생계와 월급쟁이로서의 책임감에 잠시 눈이 멀었다”며 선처를 구했다. 검사는 벌금 50만원을 구형했다. 이씨와 조씨는 다음 달 예정된 선고공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등 6개 소상공인 단체로 구성된 ‘코로나 피해 자영업 총연대’ 회원들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동 먹자골목에서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반발하며 집단 소등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은 전체 자영업자 수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경찰의 사법처리 현황을 통해 그 규모를 대략적이나마 유추해볼 수 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1월부터 올 6월까지 코로나19 관련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경찰이 사법처리 했거나 수사 중인 이들은 모두 6821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정씨 등과 같이 집합금지명령을 위반한 경우는 모두 4697명으로 전체의 68.9%를 차지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자영업자로 추정된다. 이어 자가격리 위반이 25.0%(1702명), 역학조사 방해 4.1%(278명), 기타 위반 2.1%(144명) 순이었다. 종결 사건 중 84%(4124명)는 검찰로 넘겨졌다.
검찰은 감염병예방법 위반 사건을 통상의 형사사건보다 엄격히 다루고 있다. 기소율과 정식 재판 회부(구공판) 비율이 일반 형사사건보다 높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연구모임(코로나19와 인권 연구모임)이 펴낸 ‘코로나19 관련 사법처리 현황과 문제점’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1월부터 올 4월까지 감염병예방법 위반 피의자에 대한 검찰의 기소율은 39.8%(2744명)로 최근 5년(2016~2020년) 검찰의 전체 사건 기소율(29.6~34.7%)을 웃돌았다. 혐의가 비교적 가벼운 경우 검찰이 정식 공판 없이 벌금·과료 등을 내려달라고 청구하는 약식명령이 아닌, 정식 재판으로 넘긴 ‘구공판’ 비율도 43.7%로 최근 3년(2017~2019년) 전체 구공판 비율(24.1~29.5%)을 훌쩍 넘어섰다. 검찰의 처벌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보다 방역에 더 무게를 두는 기조는 법원도 마찬가지다. 민변이 지난해 2월부터 올 6월까지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처벌된 형사 확정판결 566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벌금형이 선고된 경우는 78%(439건)였고, 징역형 선고는 22%(126건)였다. 대부분 형사처벌을 받은 것이다. 무죄는 단 1건이었다. 민변은 “자가격리 이탈 시간이 극히 짧거나, 추가전파가 없는 등 경미한 위반, 생필품 부족 등 부득이한 사유로 인한 위반에도 법원은 예외 없이 벌금형을 부과했다”며 “많은 판례를 통해 방역에 따른 기본권 제한을 당연시하는 법원의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고 짚었다.
유엔(UN) 인권기구들은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방역조처 위반을 형사처벌 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한국 사회 전반에는 엄벌주의 기조가 자리 잡았고, 확진자 수와 함께 처벌받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달 들어 하루 신규 확진자가 7천명을 넘어서자 정부는 한달 반 만에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이행을 중단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해 자영업자들에 대한 규제의 강도를 다시 높였다. 영업은 제한되고 손실보상은 더디기만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지난 22일 광화문광장에 모인 전국의 자영업자 300여명은 “이제 살고 싶다”고 외쳤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