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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법정에서 팔 자른 타이 청년…한국의 신남방정책에는 ‘사람’이 없다

등록 2022-01-08 13:57수정 2022-01-08 14:15

[한겨레S] 홍명교의 이상동몽
신남방정책의 형용모순
지난해 12월20일 서욱 장관은 쁘라윳 짠오차 타이 총리와 회담을 개최해 양국 간 국방·방산 협력 발전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국방부 페이스북
지난해 12월20일 서욱 장관은 쁘라윳 짠오차 타이 총리와 회담을 개최해 양국 간 국방·방산 협력 발전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국방부 페이스북

지난달 20일, 서욱 국방부 장관은 타이를 방문해 쁘라윳 짠오차 총리를 만났다. 국방부 장관도 겸직하고 있는 쁘라윳 총리와 지역 안보정세, 양국 간 국방·방산 협력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서욱 장관이 타이 정부에 한국산 무기 도입을 제안했다. 쉽게 말해 ‘무기 세일즈’를 하고 왔다는 얘기다. 2차 호위함과 한국형 위성항법장치(GPS) 유도폭탄 등이 우리 국방부가 내놓은 상품들이다. 3년 전인 2018년 12월에도 우리 정부는 타이 해군에 3650톤급 호위함을 팔았던 바 있다. 이 호위함은 우리 돈 5200억원으로, 타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방산 계약이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약 6조원에 달하는 국산 무기를 외국에 판매했다. 훈련기 FA-50을 타이와 인도네시아에, T-50을 필리핀·인도네시아 등에 팔았다. 동남아 국가들이 우리 방위산업의 최대 고객이 되면서 지난 12월 말 군 당국은 올해 처음으로 무기 수출액이 수입액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이를 ‘신남방 정책’의 성과로 선전하고 있다.

타이 시민 향한 한국산 최루탄

신남방 정책은 2017년 11월 인도를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제기한 외교 정책이다. 아세안 10개국과 인도를 대상으로 한다. 2018년 8월 청와대는 대통령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3개월 후 ‘신남방 정책 추진전략’을 수립했다. 그러면서 3피(P), 즉 사람(people), 상생번영(prosperity), 평화(peace) 구축을 핵심 목표로 설정했다. ‘사람’이라는 핵심 키워드는 아세안이 헌장에서 ‘사람’을 강조하고 있는 점, 문재인 정부 역시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실이다. ‘사람 중심’의 원칙을 추진하려면 필경 해당 사회의 인권이나 민주주의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 가령 필리핀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시민운동가들을 무차별적으로, 제대로 된 법적 절차 없이 마구 살해할 때 우리 정부는 우려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2016년 10월 이후 미얀마에서 군부가 로힝야족 학살을 자행한 것에 대해서도 정부는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쿠데타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많은 시민을 학살한 미얀마 군부와 밀접한 관계 아래 천연가스 채굴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포스코인터내셔널에 대해서도 아무런 실질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몇번의 외교적 수사를 발표했지만, 말에 그쳤을 뿐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여전히 미얀마 앞바다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하고 있다. 심지어 또 다른 가스전 채굴을 궁리 중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거두어지는 수익의 상당액은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미얀마석유가스공사(MOGE)로 흘러가고 있다. 미얀마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1~2022년(회계연도) 미얀마석유가스공사는 1조7800억원의 수익을 예상하고 있다. 그중 얼마나 많은 돈이 군경의 민간인 학살을 위한 무기 구입에 쓰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최대 고객

동남아 국가에 적극 무기 세일즈
서욱 장관이 ‘무기 세일즈’에 열중했던 지난달 20일로 돌아가보자. 그날 사우스방콕 형사법원은 한 청년에게 법정모독죄를 선고했다. 두달 전 이 청년은 구속 상태에 있는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보석 신청을 법원이 연이어 거부한 것에 항의하며 법정에서 자신의 팔을 잘랐다. 상상만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오늘날 타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2020년, 군부 정권 퇴진과 왕실 개혁을 요구하며 방콕의 가을을 뜨겁게 불태웠던 시민 항쟁이 이듬해 다시 불타올랐다. 불공정하게 치러진 2019년 총선에서 군부가 승리한 뒤 타이 민중은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군부는 유력 야당을 해산시키고 활동가들을 가두었지만, 항쟁은 계속되고 있다. 넉달 전 항쟁이 재점화되자 쁘라윳 총리는 탄압 일변도로 대응했다. 최루탄과 곤봉을 휘두르는 타이 경찰에 열다섯 청소년 와릿 솜노이도 목숨을 잃었다. 설상가상 이 소년을 죽음으로 내몬 최루탄마저 한국 수출품이다.

지난해 11월14일 타이 수도 방콕에서 시위대가 왕실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방콕/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11월14일 타이 수도 방콕에서 시위대가 왕실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방콕/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11월10일, 타이 헌법재판소는 청년 활동가들이 주축이 된 왕실 개혁 요구가 ‘군주제 전복’을 꾀하는 것이라며, 이와 관련된 활동을 중단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어느 왕당파 변호사가 제기한 소송에서 헌법재판소는 2020년 8월 학생 시위 리더 세명이 발표한 “왕실 개혁” 등 선언 내용이 군주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헌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시민 불복종은 끝나지 않았다. 11월14일에도 방콕 시민들은 ‘왕실 개혁’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헌법재판소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빼앗고 있다”며, 세 손가락을 들고 시위를 이어갔다. 경찰이 시위대 해산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시민 1명이 경찰이 쏜 고무탄에 맞아 응급실로 실려갔다. 11월20일 방콕미술문화센터(BACC) 앞에서는 왕실모독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학생운동가 빠나사야 시티찌라와타나꾼 등의 석방을 촉구하는 플래시몹 시위가 벌어졌다. 새해에도 타이의 민주화 시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타이의 인권변호사단체(TLHR)에 따르면, 정치적 표현과 관련된 혐의로 최소 25명이 기소됐으며, 왕실모독죄로 기소된 것은 6명이다.
경제 대신 인본 외교 한다면서

민주주의 원하는 시민 삶 외면
인권 없는 인본 외교

신남방 정책의 ‘3피’에는 ‘사람’이 없다. 지난해 10월26일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아세안 국가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자찬했다. 12월8일엔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등이 함께 신남방 정책 4년의 성과를 돌아보고 향후 과제에 대해 논하는 국제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신남방 정책이 경제적 관점에 치중하였던 과거의 외교 정책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람 중심의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인본주의적 비전을 제시했다는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인본’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이유로 왕실모독죄로 체포된 대학생, 자신의 팔을 자른 청년, 학살당한 로힝야족 민간인들, 쿠데타에 맞서 싸우는 시민들이 사람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과연 신남방 정책은 성공했는가?

홍명교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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