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점례 할머니가 집 앞 나무에 걸터 앉아 마을 어귀를 바라보고 있다. 곡성/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딩동!' 휴대전화 문자 소리에 박점례 할머니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다. 엊그제 막내딸네로 부친 떡국떡과 쑥떡이 잘 도착했다는 알림이다. 이번 설에 내려온다는 셋째딸과 같이 사는 아들을 빼고 나머지 네 딸에게 할머니는 명절이 시작되기 전부터 분주히 움직여 정성이 듬뿍 담긴 택배를 보냈다. 딸 다섯에 아들 하나, 작년에 시집간 큰손녀, 군대 간 손주, 열심히 야구하는 손주들, 새침한 사춘기 열네살 손녀까지. 스물일곱 대가족이 함께했던 마지막 명절이 언제였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박 할머니가 사는 전남 곡성군 입면 탑동마을 집 담벼락 곳곳엔 여러 알록달록한 글과 그림이 그려져 있다. 8명의 할머니가 2009년 마을의 `길작은 도서관' 김선자 관장과 함께 글을 배우기 시작해 시를 썼다. 2016년엔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 2017년엔 그림책 <눈이 사뿐 사뿐 오네>를 선보였다. 2019년에는 할머니들의 삶을 담은 영화 <시인 할매>가 만들어져 상영되기도 했다. 오랜 세월 마음 깊은 곳에 고이 숨겨뒀던 기쁨, 슬픔, 그리움을 끄집어내 쓴 할머니들의 시는 많은 이에게 공감과 위로를 선물했다. 이 동네 담벼락은 할머니들의 시집이자 캔버스다.
박점례 할머니가 직접 캔 토란잎, 토란대를 삶고 있다. 육남매 중 나물을 좋아하는 셋째딸을 위한 것이다. 백소아 기자
박 할머니가 딸 넷에게 보낸 택배 중 막내딸 택배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며 문자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백소아 기자
“시가 뭔지도 모르고 썼제”라고 말하는 박 할머니 집 담벼락에는 손수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만나면 미안한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흘러넘친다. 다가오는 설날 밤, 가족들 만나지 못해 텅 비어 야윈 달님에게 기도해볼까. 추석에는 꼭 좀 다들 만나게 해달라고.
새끼들을 기다렸다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새끼들
이 놈도 온께 반갑고
저 놈도 온께 반가웠다.
새끼들이 왔다 간께 서운하다
집안에 그득하니 있다가
허전하니
달도 텅 비어브렀다.
박점례 할머니가 취재를 마친 기자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곡성/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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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8일자<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