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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판사 익명게시판’ 은밀한 통제 실패하자 가혹한 뒤끝

등록 2022-01-30 15:51수정 2022-01-30 16:11

[한겨레S] 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
판사 익명카페에 드리운 그림자

인터넷카페 비판글 눈엣가시 되자
행정처가 일반회원인 척 글 올려
법원장이 나서 운영자 직접 압박
요구 거절되자 부정적 인사평가

2015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판사 익명게시판까지 통제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사진은 대법원 직원들이 대법원 내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 앞을 지나가는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5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판사 익명게시판까지 통제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사진은 대법원 직원들이 대법원 내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 앞을 지나가는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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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위축효과’(Chilling Effect)가 큰 기본권으로서, 익명게시판 자체가 문제될 여지가 있다는 문제제기만으로도 스스로 그 표현을 억제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2015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문건(‘인터넷상 법관 익명게시판 관련 추가 검토’)에 등장하는 문구다. 그해 2월 현직 부장판사가 정치 편향적인 댓글 9천여개를 작성한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법원행정처는 전국 판사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시 주의사항을 배포하는 등 황급히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사건과 관계없는 판사들의 인터넷카페 ‘이판사판야단법석’(이사야)에 손을 뻗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이른바 ‘위축효과’를 활용해서다.

이 카페는 익명으로 운영되는 판사들의 비공개 카페다. 2014년 10월 개설돼 2015년 초 회원이 400여명 안팎으로 늘었다. 당시 전국 판사의 10%가 넘는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이 카페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자발적 폐쇄를 유도하려 했다고 의심받는다. 판사의 자유로운 의견 표명 행위뿐 아니라, 법원행정처 역점사업인 상고법원,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 제청에 관한 부정적 의견까지 공유하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의 존재는 숨긴 채 ①카페 회원인 척 글을 올리거나 ②소속 법원의 법원장을 동원해 카페 운영진을 설득하려 했다. 2021년 12월1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재판에는 두번째 방안에 연루된 김동오 의정부지법 원로법관(전 인천지법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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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가 대신 쓴 ‘공지글 초안’

2015년 8월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 ‘법관 익명카페 개설자와 소속 법원장 면담 후속조치’
2015년 8월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 ‘법관 익명카페 개설자와 소속 법원장 면담 후속조치’

“(이사야 카페에) 술 마시며 뒷담화할 때나 나올 듯한 글이 많습니다. 보도되면 큰 파문이 일 테니 카페 글이 유출되지 않도록 카페 운영진을 설득해주세요.”

2015년 여름, 김동오 인천지법원장은 강형주 법원행정처 차장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앞선 3월 강형주 차장은 전남 여수에서 열린 법원장 워크숍에서 그에게 이사야 카페의 존재와 문제점을 언급한 적 있는데, 몇달 뒤 카페 운영진 홍아무개 판사가 소속돼 있는 법원의 법원장으로서 해야 할 나름의 ‘미션’을 전달한 것이다. 법원행정처 문건도 건넸다. 복사 방지 설정, ‘펑 하기’(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진삭제) 등 유출 방지 방안이 적혀 있었다.

8월12일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카페 운영진 홍 판사와 차 한잔을 나눴다. 그날로부터 “거의 6년이 지나” 구체적인 시간 등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홍 판사에게 카페 게시글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조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카페에 올라온 글이 밖으로 유출되면 법원의 신뢰가 손상될 수 있어요. 복사 방지 기능처럼 필요한 조처를 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홍 판사는 “회원들의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며칠 뒤 두번째 면담. 그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가상의 공지글’을 홍 판사에게 건넨 것으로 보인다. “이사야를 아껴주시는 판사님들 안녕하세요, 운영자입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한 페이지짜리 프린트물은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카페 개설자인 홍 판사에 ‘빙의’해 작성한 것이다. ‘선배 법관 조언대로 자유롭게 논의하되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글을 비공개로 전환하자’는 내용이었다. 강형주 차장의 후임인 임종헌 차장 지시로 “적정 수위의 초안”까지 제공한 것이다. 재판에서 공개된 홍 판사의 검찰 진술이다. 법원장의 선 넘는 요구에서 법원행정처의 그림자를 감지한 당황스러움이 묻어난다.

“처음에는 선배 법관으로 선의를 가지고 제안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누군가로부터 받은 문건을 마치 당신의 것처럼 보여주는 걸 보고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래서 퇴근 무렵 다시 원장님을 찾아가서 ‘원장님이나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직접 카페에 가입해 글을 올리고 토론하는 게 맞지 않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원장님이 ‘이거 올리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하셨고 저는 ‘못하겠다’고 답했습니다.”

2015년 3월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 ‘인터넷 익명게시판 추가 대응방안 검토’
2015년 3월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 ‘인터넷 익명게시판 추가 대응방안 검토’

2015년 4월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 ‘이사야 익명카페 동향 보고’
2015년 4월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 ‘이사야 익명카페 동향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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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 주장해놓고 인사평가 반영

김 원장의 기억은 다르다. 자신은 홍 판사에게 공지글을 건넨 기억이 없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법원행정처에서 공지글을 전달받은 건 맞지만 홍 판사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뜻 공지글을 건넬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1·2차 면담은 사법행정권자인 법원장이 아니라 “선배 법관으로서 최소한의 조치를 권고한 것으로 법원의 앞길을 위해 필요한 것인데 (홍 판사가) 최소한의 요구에도 응하지 않아 섭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배 법관으로서의 조언이 거절당한 것치고 대가는 컸다. 2016년 1월 홍 판사가 권고를 거절했다는 내용을 ‘2015년 인사관리 상황보고―인천지방법원’ 문건에 적어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것이다. 인사관리 상황보고는 평정권을 가진 법원장이 판사 평정표에 기재하기 어렵거나 애매한 내용을 따로 법원행정처에 서면보고하는 것이다. 법원 수석부장판사와 상의해 작성하는 게 보통인데 홍 판사는 수석부장판사와 상의 없이 문건에 포함시켰다고 했다. ‘선배 법관’과 ‘사법행정권자’의 역할 불일치가 나타나는 지점이다. 그는 “법원에 대한 자신의 행동이 상당한 피해를 끼칠 수 있음에도 받아들이지 않은 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관련 질문을 던졌다.

“‘인사관리 상황보고’가 홍 판사에 대한 부정적 인사 자료로 사용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나요?”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습니다. 최소한의 사법행정상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은 건 법원에 대한 조직 적응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 기재한 것입니다.”

피고인들은 ‘글이 외부에 유출되면 법원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적정하게 사법행정권을 행사했다는 입장이다. 현직 판사의 의견은 관심의 대상으로 그 적정선의 경계가 논의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논의의 목적이 정당한지 따져볼 일이며 설사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수단이 적정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2018년 5월25일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조사보고서) 과거 법원 자체 조사 결론마저 외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형사재판의 풍경인 걸까.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 이후 여전히 진행 중인 ‘사법농단 재판’을 법정 르포 형식으로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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