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농단’ 사건은 현재 대법원 소부가 맡았다. 여기서 의견이 극명히 갈리거나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대법원 전원합의체(사진)에서 판단하기도 하는데, 회부 여부는 불투명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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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의) 이러한 행위들은 사법권의 독립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법원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이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항소심에서도 일부 유죄를 선고받았다. 2022년 1월27일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최수환)는 이규진 전 위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이민걸 전 실장에게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판단 일부가 무죄로 뒤집히면서 2021년 3월 각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1심보다 형량이 줄었다.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란 없기 때문에 남용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면서다. 방창현 부장판사와 심상철 부장판사(원로법관)는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가 선고됐다.
항소심 선고 한 달 전인 2021년 12월20일. “이 사건 발생한 지 5번째 맞는 겨울”이자 “법정에서 발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부끄러움’과 ‘성찰’을 말했다. “무죄 취지로 다투고 있습니다만, 공소사실에 기재된 행위가 잘된 것이라 주장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검찰 수사 때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말씀드린 건 지금도 같습니다. 다만, 법리적으로 죄가 안 되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죄를 다투지만 그것이 부적절한 행위로 징계처분됐고 이의제기 하지 않고 확정시킨 것도 다 제 자신에 대한 성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재판부에 적극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기보다는 그간의 생활이 편치 않았다는 점만을 알아달라고 했다. “기소된 뒤 사회활동을 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2년 이상 낭인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이 제 성격이나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어떤 입장을 설명한다기보다는 그런 힘든 시간이 있었다는 것도 재판부가 한번 생각해봐주시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규진 전 위원이나 이 전 실장은 법원행정처 중간 간부로 재판 개입의 ‘가교’ 역할을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통로는 크게 세 가지다.
①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일하는 판사에게 재판 개입 방안을 구상해 문건으로 보고하게 한다. ②그 문건을 동문, 사법연수원 동기, 근무연을 이용해 일선 재판부에 직접 전달한다. ③재판부로 하여금 전달받은 문건이나 지침에 따라 재판하게 한다. 그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③번, 즉 가장 직접적이고 최종적인 재판 개입 행위에 대한 판단이다.
문제 행위들은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상 권한을 남용하여 상대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직권남용 혐의(형법 123조)로 의율됐다. 직권남용이 성립하려면 남용할 권한이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1심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 사무의 핵심 영역에 관해 ‘지적’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봤다. 사건 처리가 늦어지거나 전문 분야 지식이 부족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와 판사의 독립이 충돌할 때 사법행정권자가 그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넘어 재판부 판단 방법이나 방향을 ‘권고’하는 건 권한을 넘어선 남용에 해당되기 때문에 처벌해야 한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이 해석을 뒤집었다.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무죄 선고된 혐의가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 사건’이다.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부가 ‘한정위헌’을 구하는 취지로 사학연금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요청했다. 법원행정처는 재판부 결정이 대법원과 경쟁관계인 헌법재판소에 유리하게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대응책을 구상하게 했다. 그리고 재판부로 하여금 해당 결정을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로 재결정하게 했다. 이전 결정문은 법원시스템에서 검색되지 못하게 ‘블라인드’ 처리됐다.
재판부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재판 개입 보고서를 쓰게 한 건 유죄로 보면서도(①) 재판부로 하여금 판단을 뒤집게 한 것은 무죄라 봤다(③). 관련 법을 아무리 살펴봐도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에 재판과 관련해 지적할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권한이 없으니 남용도 있을 수 없다. 판결문 일부다. 지적 권한을 인정하는 순간 재판 개입의 통로를 열어줄 수 있다는, 임성근 전 판사 하급심 판결과 비슷한 우려가 읽힌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지적 권한이 인정될 경우 이러한 지적 권한의 효율적인 행사를 위해서는 법관의 모든 재판 절차에 관한 상시적인 감독을 할 수 있는 조직과 체계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조직과 체계는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사법권의 독립에 정면으로 반할 뿐 아니라 재판권에 대한 사법행정권의 상시적인 감시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판결문 151쪽)
재판부는 부장판사가 배석판사와 합의 없이 판결문을 고쳤다는 방창현 부장판사 사건에서도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는 동등한 위치에서 합의할 뿐 그 사이 지적 권한이란 있을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하며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서 지적 권한이라는 사법행정권을 행사해 그 합의부 소속 판사의 판단을 시정할 수 있다면 법원조직법이 정하는 합의의 방법은 유명무실하게 되고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합의부 소속 판사를 설득해 다수결로 결론을 도출하려고 하지 않고, 신속하고 손쉬운 사법행정권을 행사할 위험이 커진다.”(판결문 383쪽)
사건은 현재 대법원 소부가 맡았다.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의견이 극명하게 대립하거나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대법관 13명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하기도 하는데 현재 노정희·이동원 대법관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때 사건으로 사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섰다는 점, 무엇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8년 검찰에 수사 협조를 밝혔다는 점에서 전합 회부 여부는 불투명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비롯한 ‘윗선’은 1심조차 끝나지 않았다.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받아들기까지 몇번의 겨울을 더 지나야 할지 미지수다.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 이후 여전히 진행 중인 ‘사법농단 재판’을 법정 르포 형식으로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