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다음주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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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8일 버스를 타고 가던 길이었다. “걔, 페미야. ××. 정신 차려. 그런 새끼를 뽑으려고 하냐?”, “그래? 그래도 ○○는 아니지 않냐?” 바로 앞자리 좌석에서 오간 대화가 버스의 소음을 뚫고 들려왔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거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두명의 대화였다. 심한 욕을 섞은 대화는 한동안 이어졌다. 주변 사람들은 힐끔힐끔 그들을 쳐다보았다. 버스에서 내리려 일어선, 내내 화난 감정을 숨기지 않던 한명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여 “××, 진짜 그 새끼 뽑지 마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 다 들으란 듯이. 그러나 뇌리에 박힌 건 그의 말이 아니었다. 함께 있던 다른 청년 남성의 태도였다. 그도 뜻을 굽히지 않고 내내 자신의 의견을 펼쳤다.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에도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대선 내내 화제의 중심에 놓인 집단, 20대 남성. 선거캠프들은 그들의 집단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 골몰했다. 맞춤형이라고 주장하는 공약들도 내놓았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듯이 그들의 이름을 짓고, 그 집단을 간단하게 재단해 설명했다. ‘20대 남성들은 ○○하다’라는 명제가 흘러넘쳤다. 여기에 맞서 ‘과잉대표된 의견이다’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런데 20대 남성이라는 ‘집단’을 파악해 그들을 공략할 ‘무기’를 만드는 데만 여념이 없는 쪽에서 놓친 것이 있다. 그들도 사회와 교류하고 소통하는 존재라는 사실 말이다. 20대 남성이라는 집단을 틀 안에 가두고 이리저리 뜯어보지만, 그 틀은 그들을 이용하려는 쪽에서 만든 도구일 뿐이다. 애초 그들은 가두어질 수 없는 존재들이다. 버스에서 만난 안티 페미니스트인 청년 남성도, 갸우뚱하던 청년 남성도 틀의 안쪽과 바깥 그리고 그 경계에서 대화하고 변화한다.
20대 남성 집단이 공유한 경험과 감각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통의 경험으로 저마다 다른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아무리 프레임 안으로 밀어 넣으려 해도, 그것에 저항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20대 청년 남성에 대한 분석 또는 주장들은 그래서 하나의 결론에 이를 수 없다. 성차별을 개선하자는 주장에 반대하고 약자를 혐오하는 데 거리낌 없는 일부 20대 남성은, 정치권 일각에선 전부인 듯 굴지만 전부가 아니다.
전부가 아니라면? 도대체 다른 목소리는 어디 있는데? 그간 <한겨레>를 비롯한 몇몇 언론은 청년 여성과 남성을 두루 만나고, 그 목소리를 전했다. 그러나 클릭 수 상승에 도움되는 젠더 갈라치기 조장 기사를 내보내는 언론사가 훨씬 많았다.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의 주장을 그대로 복붙(복사해 붙이기)하는 기사들이었다.
정치권에선 대선에서 지지율 상승의 ‘무기’로 쓰이지 못해 폐기되고, 언론에선 클릭 수 장사에 도움이 되지 않아 지워진 목소리들이 있다.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고 없는 목소리는 아니다. 참다못한 청년 남성들이 다음주 모여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청년 남성을 안티 페미니스트로 일반화하는 정치권에,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해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커뮤니티에, 성별과 세대를 갈라쳐 분열을 조장하는 언론에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남성들이 할 말 있습니다.’ 9일 열리는 기자회견의 주제는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이다.
이정연 젠더팀 기자 xingxing@hani.co.kr
지난해 12월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당사 근처에서 여성혐오를 방관하는 대선 후보를 비난하는 2030 여성단체 ‘샤우트아웃’ 시위대와 안티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신남성연대’가 마주한 채 집회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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