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경북 울진 북면 덕구1리 마을회관에서 이재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4일 화재 때) 대피하면서 쓰고 나온 마스크를 아직 끼고 있어요.”
7일 경북 울진 북면 나곡2리 대피소에서 만난 주아무개(78)씨는 동회관 한쪽에 누워 이렇게 말했다. 울진 산불 나흘째인 이날 오전 <한겨레>가 이재민 2~4명가량 머무는 소규모 대피소를 돌아보니 구호물품 등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
현재 산불을 피해 대피한 주민들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은 울진읍 울진국민체육센터다. 이재민 200여명이 있는 이곳은 각종 라면·생수·마스크·휴지 등 각종 구호물품이 쌓여있다. 식사도 배식돼 따뜻한 국과 반찬을 먹을 수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이재민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수시로 점검하고 있고, 센터 앞에는 기업·단체에서 후원한 커피차 등도 있다.
하지만 소규모 대피소는 사정이 달랐다. 주씨는 “팬티도 한장 못 챙기고 아무것도 없이 몸만 나왔다. 마스크며 칫솔도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나곡2리 대피소는 화재로 망이 끊겨 티브이(TV)도 나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로 뉴스를 보는 걸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했다.
울진 북면 덕구1리 마을회관도 사정은 비슷했다. 4명이 대피해 있는 이곳은 얇은 요 두 장이 이불의 전부였다. 마을 이장 남동순(73)씨는 “이마저도 따로 받은 게 아니라 평소 마을회관에서 쉴 때 쓰던 것”이라고 말했다.
나곡2리·덕구1리 이재민들은 “구호물품도 받지 못했고 자원봉사자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씨는 “대피 인원이 많은 곳에는 구호물품도 제대로 간 것 같은데 여기는 소규모다 보니까 연락이 없어서 제가 직접 면에 가서 이야기를 하고 왔다. 오후쯤 물품이 도착할 것 같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손길이 닿지 않는 상황에서 대피소 주변 주민들이 이재민들을 돕고 있다. 덕구1리 이재민들은 마을회관 보일러가 고장나 전날까지 다른 주민들 집에서 신세를 졌다고 했다. 남씨는 “마을 인심이 좋아 그 덕분에 며칠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남춘자(77)씨는 자신이 입은 옷을 들어 보이며 “이 옷이며 양말이며 전부 이웃이 갖다 주고 간 것”이라고 했다. 노춘자(76)씨는 “즉석밥 같은 것도 없어서 이웃집에서 끼니를 때웠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고 했다.
울진군 관계자는 <한겨레>에 “구호품을 면사무소에서 배부 중인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신속한 지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7일 경북 울진 북면 나곡2리 대피소 옆에 있는 집이 화재로 소실돼 있다.
울진/글·사진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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