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선 인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임기 5년 동안 대법관 14명 중 13명(대법원장 포함)을 새로 임명하게 된다. 헌법재판관 역시 헌법재판관 9명(헌재소장 포함) 전원을 임명한다.
그간 보수진영은 문재인 정부에서 두 최고법원 구성원 대부분을 교체하며 ‘코드 인사’를 했다고 비판했지만, 노동·인권 변호사 출신인 김선수 대법관과 이석태 헌법재판관 등을 제외하고 뚜렷한 진보 성향을 보이는 인사는 없다. 그럼에도 과거 보수정권 시절 최고법관 임명 관행 등에 비춰볼 때 보수적 색채가 강한 인사들이 대거 입성하게 될 것으로 법조계에서는 내다본다. 윤 당선자가 검찰총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사라진 ‘검찰 몫’ 대법관·헌법재판관이 부활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국회 임명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여소야대 상황에서 윤 당선자 의중이 모두 관철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 당선자 임기는 2022년 5월10일부터 2027년 5월9일까지다. 2027년 9월 임기가 끝나는 오경미 대법관을 뺀 나머지 대법관 전원을 윤 당선자가 임명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 첫 대법관은 오는 9월 퇴임하는 김재형 대법관 후임이다. 김 대법관은 2016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했다. 2023년 7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조재연·박정화 대법관이 퇴임하고, 그해 9월에는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가 끝난다. 이듬해 1월 민유숙·안철상 대법관, 7월 노정희·이동원·김선수 대법관, 12월 김상환 대법관이 차례로 퇴임한다. 이어 2026년 3월 노태악 대법관, 9월 이흥구 대법관, 2027년 5월 초 천대엽 대법관 순서로 임기가 종료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한 뒤 국회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윤 당선자는 <조선일보> 등 보수진영에서 ‘좌표’를 찍어 맹공격해 온 김명수 대법원장과 1년4개월 임기가 겹친다. 보수진영 눈 밖에 난 김 대법원장은 남은 임기 동안 윤 당선자에게 3명의 대법관을 임명제청할 수 있다.
대법원장이 제청할 대법관 후보자는 법원 내외부 인사가 참여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하지만 대체로 대법원장이 의중에 둔 인사가 최종 후보군에 포함된다. 임명제청 전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에 어느 정도 사전교감이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명박 정부 내내 이념공세에 시달렸다. 그런 이 대법원장은 임기 8개월을 남겨 놓고 진보로 분류되는 이상훈 대법관을 임명제청해 이 대통령 재가를 받아냈는데, 그 과정에서 대법원과 청와대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한겨레 자료사진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한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은 윤 당선자 임기 안에 교체된다. 재판관 9명은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이 가운데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한 사람을,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사람을 임명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23년 3월 퇴임하는 이선애 재판관 후임자에 대한 지명권을 갖는다. 이 재판관은 2017년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해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이 임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2023년 4월 정년(70살) 퇴임하는 이석태 재판관 후임 지명권도 갖는다. 2024년 9월 퇴임하는 이은애 재판관 후임으로는 윤 당선자가 임명하는 차기 대법원장이 지명한 사람이 후보가 된다. 내년 11월 임기가 끝나는 유남석 헌재소장과 2025년 4월 퇴임하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후임 임명도 윤 당선자가 한다. 2024년 10월 임기가 종료되는 국회 몫 김기영·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각각 추천 당시 기준으로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이 추천했지만, 2024년 4월 22대 총선에서 국회 의석에 변화가 생기면 정당별 추천 몫이 달라질 수 있다.
2017년 9월 국회 본회의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국회 다수의석을 앞세워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동의를 요청한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한겨레 자료사진
두 최고법원 법관은 헌법에 따라 국회 임명동의(국회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 찬성)를 받아야 한다. 대통령 마음대로 임명할 수 없는 구조다. 현재 국회는 더불어민주당이 172명으로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다. 이런 여소야대 국회는 2024년 5월까지 계속된다. 이 기간 국회 임명동의를 받아야 하는 대법관은 대법원장 포함 6명, 헌법재판관은 3명이다.
국민의힘은 과거 국회 다수의석을 앞세워 더불어민주당 쪽 추천 후보들의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적이 있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2017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동의를 요청한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의 성향을 문제삼아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김상환 대법관의 경우 2018년 10월 문 대통령이 임명동의를 구했으나 자유한국당의 비협조로 두달여 대법관 공백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2012년 2월에도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에서 추천한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에게 색깔론을 덧씌어 본회의에서 부결시킨 바 있다.
한편, 윤 당선자가 검찰총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검찰 출신 대법관·헌법재판관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검찰 출신 대법관은 지난해 5월 퇴임한 박상옥 전 대법관이 마지막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 전 대법관 후임으로 판사 출신 천대엽 대법관을 임명했다. 현재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중에 검찰 출신 인사는 한명도 없다.
과거 형사사건 전문성 등을 이유로 검찰 출신 대법관·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관행이 있었지만, 공판중심주의 강화로 ‘검찰 몫’을 따로 챙길 명분은 약해졌다. 특히 인권과 기본권 보장의 보루인 최고법원에 ‘처벌’에 익숙한 수사전문가를 앉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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