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 잡고 놓지 말기.
손에 손 잡은 원 안으로
가장 약한 자들 들여보내기.
절대 손 놓지 않기.
용기 있기.
성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이들에게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처벌 강화 등 퇴행적 공약을 내세운 후보가 당선된 20대 대선 결과는 실망을 안겼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성평등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여성들은 대선 뒤 성평등을 더 크게 외치고, 연대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다짐을 보여주고 있다.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고, “서로의 용기가 되어 잘 살아가자”고 한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가 됐으니 “페미 척결”을 할 수 있다는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발) 추종자들이 있지만, 오히려 대선 결과는 여성, 페미니스트의 결집을 불러오고 있다.
당선자가 확정된 뒤 에스엔에스(SNS)에는 여성들이 서로를 향해 보내는 응원 메시지가 끝없이 올라왔다. <한겨레>는 여성들이 올린 응원 메시지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를 물어 그 답을 함께 소개한다.
박작가 “이번 대선의 과정과 결과를 지켜본 많은 양식 있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 역시 손이 떨리고, 절망하고, 분노하고 무기력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결정나던 새벽 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겨우 1%였다. 어쩌면 결과가 바뀌었을 수도 있는 수치였지만, 선거라는 게 늘 그렇듯 승과 패의 결과만 기억될 것이다. 겨우 1%의 차이로, 혐오를 막아내려고 애썼던 그 많은 표심이 패한 것인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패배자’로 정체화해도 되는가? 겨우 1%의 결과에 무릎 꺾여 무너져 내리는 것, 무기력하게 냉소하고, 혹은 함께 가야 할 사람들끼리 탓을 하며 싸우는 것, 이것이야말로 저들의 서사를 승리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들은 선거에는 간신히 이겼지만, 내 삶의 서사까지 지배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야겠다. 선거에는 졌지만, 삶의 서사에서는 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서로에게 용기가 되자고, 서로에게 희망이 되자고, 선거결과가 우리의 미래까지 완전히 지배하지는 못하도록 정신을 차리자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신 “우선 트럼프 당선 과정과 그 후에 일어났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처럼 사람들의 선택 기전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비합리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저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고, 당장은 절망적으로 느껴지고 앞날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다, 지지 말자는 마음에서 트윗을 작성했습니다.”
김아무개 “이번 투표는 2030 여성들이 정말 힘을낸 투표임에도 불구하고 1%도 안 되는 표차로 안타까운 결과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다들 마음을 모았는데 결과가 따라주지 않아 낙담했고 저 역시 속상했지만요. 이건 정말 긴 여정이라고 생각했고 앞으로 남은 선거들이 훨씬 많으며 이번 선거를 통해 여성들이 결집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 같아 함께 지치지 말고 오래 같이 걸어가고 싶은 마음으로 트윗을 올렸어요. 무엇보다 이번이 첫 투표였을 젊은 유권자분들이 무력감에 빠지지 않길 바라요.”
윤아무개 “앞으로 윤석열 정권이 여성과 노동자를 비롯하여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 되어 온 모든 소수자를 혐오하고 고립시키는 전략을 계속 쓸 것이라는 암담한 전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기성세대로서 책임을 다하면서, 어린이, 청소년, 성소수자, 장애인은 물론 동식물을 비롯하여 기후 재앙 시대에 희생되는 비인간 존재들까지 포함하여 지키는 데 연대하고 싶다는 의지를 담아 글을 썼어요.”
“요청에 응답하는 용기 있는 정치가 계속되기를”
Idaia “개표가 거의 완료에 이르러 잠들기 전에 서로 다독임이 좀 필요한 상황인 것 같아서 썼습니다. 타임라인이 분노와 흥분에 휩싸이는 듯한 분위기였거든요. 20년 위 언니들(심상정·권인숙·김진숙)을 소환하면서 20살 아래 여성들에게 함께 가자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나름 차분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쪽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그 마음은 어디 가고 오늘은 새로 분노와 짜증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분들의 다독임에 힘을 얻습니다.”
언니차프로젝트 기획자 이연지 “저는 이번 선거에서 놀라운 변화와 힘을 느꼈습니다. …정치는 그동안 많은 사람에게 마치 뜬구름 잡는 윗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아니요. 이번은 달랐습니다. 우리가 외치면, 응답했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2년 뒤면 총선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뭉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요청에 응답하는 용기 있는 정치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내딛는 길이 꽃길이 아니어도 결국은 기어이 걸어내고선 우리가 가려던 곳으로 가고야 말 것입니다. 저는 이 ‘여성 유권자’로서의 걸음을 당당하게 딛고, 여성의 몫을 요구하자고 함께하자고 외치고 싶습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