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갈등 녹인 ‘설득의 힘’…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5년 만에 설치

등록 2022-03-16 17:18수정 2022-03-17 02:33

성별·장애 관계없이 누구나 사용 가능
학내 반대 의견에도 토론회 통해 공감대
16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에 설치된 장애 유무나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6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에 설치된 장애 유무나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새천년관 지하 1층 학생식당을 지나치자 픽토그램(그림문자) 5개가 그려진 화장실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치마를 입은 사람, 바지를 입은 사람, 한쪽 다리엔 치마·한쪽 다리엔 바지를 입은 사람, 휠체어를 탄 사람, 아기의 기저귀를 교환하는 사람이 함께 그려져 있다.

성공회대는 16일 이 공간을 성별·나이·성 정체성·장애 유무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모두의 화장실’로 이름 붙이고 준공식을 열었다. 성별 이분법에 구분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성중립화장실’보다 더 확대된 개념의 공간이다. 트랜스젠더, 남녀로 정의되지 않는 성소수자를 비롯해 휠체어 장애인, 성별이 다른 활동지원사와 활동하는 장애인, 생리컵을 쓰는 여성, 보호자가 필요한 어린이와 어르신 등 평소 공중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내 대학 중 처음이다.

모두의 화장실은 남자화장실로 쓰던 공간을 리모델링한 1인 화장실이다. 화장실은 안에서 닫힘 버튼을 누르면 밖에서 열 수 없는 구조다. 장애인 화장실에 설치되는 핸드레일과 손잡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거울 등이 설치됐고, 장애인이 편하게 씻을 수 있도록 접이식 의자와 샤워기도 설치됐다. 대형 세면대와 별도로, 변기 옆에는 작은 세면대를 뒀다. “생리컵을 사용하시는 분들이 바로 변기 옆에서 씻을 수 있도록 설치했어요.” 모두의 화장실 설계를 자문한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모두의 화장실 설치 논의가 시작된 것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성공회대 총학생회가 설립을 추진했으나 학내 구성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지난해 성공회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다시 공론화에 나섰다. 이들은 학생자치기구인 중앙운영위원회와 임시전체학생대표자회의 등에서 설치 안건과 예산안을 가결했으나 학내 반대 의견은 강했다. ‘여성들의 안전이 우려된다’는 의견부터 ‘성소수자가 싫다’는 혐오 표현까지 여러 의견이 나왔다.

16일 오후 장애 유무나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을 국내 대학 중 최초로 설치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서 준공식 및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6일 오후 장애 유무나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을 국내 대학 중 최초로 설치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서 준공식 및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러나 비대위는 ‘더 많은 설득’을 통해 합의에 이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지난해 여름부터 카드뉴스와 인터뷰 영상 제작, 학내 부스 설치 등 홍보를 진행했고, 기자회견과 1인시위 등을 열었다.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히며 총학생회장에 출마했었던 이훈 비대위원장(현 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성소수자를 반대한다’는 학우와 일대일로 만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학교 구성원 누군가가 이 화장실 설치로 기쁠 수 있다면, 당신 역시도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기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설득했죠. 제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던 학우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차근차근 오해를 풀어나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해 10월21일 열린 모두의 화장실과 관련한 대토론회가 변곡점이 됐다. 토론회를 주관한 박경태 성공회대 학생복지처장(사회학과 교수)은 ‘설득’을 강조했다. “설치를 추진하는 학생들에게 당장 설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겠지만, 반대하는 학생들을 꼭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혐오를 기반으로 한 의견은 배제해야겠지만요.” 토론회에서 반대쪽 참석자는 비대위의 학내 의견 수렴과 사업 추진 방식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뿐 모두의 화장실 설치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학내 견해차가 크지 않다는 것에 공감대를 이룬 게 토론회의 성과였다. 11월 학교 처장단 회의에서 모두의 화장실 설치가 확정됐다.

이날 성공회대 새천년관 앞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진통과 갈등 끝에 탄생한 모두의 화장실이 ‘1호’에서 그치지 않길 바랐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공간을 정말 모두의 화장실로 만들기 위해 모두가 사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화장실이라는 게 그냥 상징물만은 아니잖아요. 화장실답게 용변도 보고 손도 씻고 해야죠. 실제로 이용하다 불편하면 개선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다른 대학과 사회 전체로 확산해나가는 과정이 될 겁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인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가 말했다.

16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에 설치된 장애 유무나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6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에 설치된 장애 유무나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바로가기: ‘남성 화장실’과 ‘여성 화장실’ 갈림길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13129.html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