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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꿈꾸는 정치인이 없었던 이상한 선거

등록 2022-03-26 08:59수정 2022-03-26 10:49

[한겨레S]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소박한 내 한 표의 꿈

현실·생활정치 말한 주요 후보들
소수자들 ‘한 표’는 또 무시당해
‘정치=계산’이라면 달라질 것 없어
꼴찌 많아도 괜찮은 세상은 올까?
아이패드 디지털화 ‘오예스님’. 그림 김비
아이패드 디지털화 ‘오예스님’. 그림 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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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라고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다니 지금 시대에는 말도 안 되지만, 불과 삼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교육은 성별 모호함을 지닌 누군가에겐 견디기 쉽지 않은 난관이었다. 우리 교육이 인간의 존엄을 가르치고 생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대신, 획일화된 목표를 강요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남학교와 여학교를 나눠 공동체의 욕망과 정치가 뒤섞인 남성성과 여성성을 주입하는 시대였으니, 성소수자에게 교육은 고통이었다. 그래도 박탈이라니 과언이 아니냐고 묻겠지만, 육체적 폭력이 ‘잘되라는 마음’으로 쉽게 치환되던 시기에 성소수자는 때려서라도 ‘남자’ 혹은 ‘여자’를 만들어야 하는 문제적 대상이었다. 나 역시 복도를 지나다가 이유 없이 교사에게 따귀를 맞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니, 이유는 있었다. “사내자식이 계집애처럼”으로 시작되는 그 ‘가르침’은, 나 잘되라고 끝없이 지속되었고 반복되었다.

수단 가리지 않는 경쟁엔 미래 없어

생각해보면 ‘박탈’은 성소수자인 우리만의 것은 아니었다. 최고 성적만이 유일한 목표고 경쟁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교육의 태도는 무비판적으로 청소년들을 한 줄 속에 몰아넣었다. 설마 지금은 그런 학교가 없겠지만, 그 시절의 중·고등학교는 시험을 볼 때마다 성적순으로 아이들의 책상 위치까지 달리했다. 그래서 누가 들어오더라도 손가락으로 앞줄의 일등과 뒷줄의 꼴찌를 정확히 가리킬 수 있었다.

과열된 경쟁은 극한의 대립을 불러오기도 했다. 시험을 보면 항상 반 평균으로 일등반과 꼴찌반을 나누었는데, 한반에 특정한 자리에 앉은 누군가는 평균을 깎아먹는 존재로 단박에 도드라졌다. 앉은 자리가 곧 성적이니, 누가 들어와도 이 반의 평균을 깎아먹는 놈을 골라낼 수 있었다. 그저 손가락질 몇번이라도 청소년기에 상처가 되고도 남을 텐데, 과도한 책임감에 경도된 담임은 꼴찌반이 되었다는 자책인지 개인적 자존심인지, 단체로 아이들을 운동장에 집합시켜 육체적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육체적 폭력은 곧 ‘잘되라는 마음’이었고, 아이들의 마음보다 담임의 책임감이나 성적이란 목표가 먼저 이해되었다. 유일한 목표 설정은 다른 모든 것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밀어냈고, 무시하거나 간과해도 좋을 굳건한 근거가 되었다. 교육이 무얼 가르쳐야 하는지 그 본뜻이 달라야 했던 거라면, 그 시절의 아이들은 모두가 교육을 박탈당한 존재였다.

그렇게 한 반에 일등부터 꼴찌까지 도맷금으로 육체적 폭력을 당한 후 교실로 돌아오면, 이제 꼴찌반 아이들끼리 책임을 묻고 싸워야 하는 잔인한 시간이 시작된다.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하며 맞붙어 싸우는 폭력이라면 좋으련만, 현실은 더 잔인했다. 몽둥이질이 곧 ‘잘되라는 마음’으로 해석되던 그 시절, 일등인 모범생이 꼴찌인 동급생을 교사처럼 몽둥이질하기까지 했던 걸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폭력이 폭력으로 대물림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고 다시 또 피해자가 되는 일을, 학교에서, 가정에서, 우리는 그렇게 습득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폭력은 가장 쉬운 수단이었다. 폭력을 선동하고 편을 나눠 자극하는 일이 제일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 얄팍한 속임수에 넘어가고, 땅을 치며 후회하고, 우린 그보다 더 나은 존재일 텐데, 자괴감에 괴로워하면서도, 우리는 다시 또 편을 나누고 폭력을 선동하는 가해자가 된다. 목표를 달성한 일등반이라도 기쁨은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제일 많은 혜택을 받는 아이는 항상 앞자리에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이 지상의 목표가 된 이 시대에 당연한 듯 보이지만, 끝없이 소외를 낳기만 하는 그 과정의 반복이 우리 사회의 찬란한 미래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시끄럽고 시끄러웠던 20대 대선이 마침내 끝났다. 한 사람의 성소수자라 그 한 표는 자명할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나는 몇달 동안 한낮의 집필 시간을 빼서 정치인들의 소식과 그 관계자들의 말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좀 이상했다. 어디에도 미래를 꿈꾸는 정치인이 없었다. 현실 정치, 생활 정치라고 하기에도 너무 옹색했다. 청년들을 자극하고, 세대를 자극하고, 성별을 자극하면서 효과는 즉각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저것이 국민의 미래를 책임질 정치인의 태도인가 의아했다.

거기 뒷자리에 앉은 것들은 입 다물고 보기나 하라는 듯한 앞자리 사람들만의 싸움을, 나는 쓸쓸하게 지켜봐야 했다. 언제나 무시해도 괜찮을 꼴찌 취급당하던 성소수자의 삶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대의를 위해 기다려야 하고, 감내해야 하고, 그럼에도 어딘가에서 항상 평균을 깎아먹는 존재로 호명되어 문제적 대상으로만 언급되었을 테니 말이다.

‘정치’가 곧 ‘계산’인 미래라면 달라질 건 없다. 꼴찌도 사람이고, 꼴찌를 대하는 태도가 곧 그 사회의 수준이고 미래라고 아무리 말해도, 무시해도 좋을 한 표로 우리의 의미는 계속 깎여 나갈 것이다. 생각해보면, 꼴찌는 우리만이 아니었다. 사회인으로 자영업자로 노동자로 누군가는 계속 꼴찌 취급당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삶을 빼앗기고 살해당하는 누군가는 계속 꼴찌 취급을 당하던, 거기 뒷자리에 앉았던 누군가였다. 실패한 건 보수나 진보가 아닌지도 모른다. 폭력과 혐오로 인해 가장 뒷자리로 떠밀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의 실패인지도.

봄날 산의 나무들에서 새순이 올라오는 모습. 김비 제공
봄날 산의 나무들에서 새순이 올라오는 모습. 김비 제공

미래에 대한 소망을 나타내는 종이학. 그림 박조건형
미래에 대한 소망을 나타내는 종이학. 그림 박조건형

이제 다음을 꿈꿀 차례

성소수자의 한 사람으로서 내 한 표의 꿈은 꼴찌처럼 소박하다. 그 한 표 앞에 나는, 당연히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이 지켜지는 사회를 바라지만, 또한 진영을 넘어 국민 모두의 존엄이 지켜지기를 바라고 그 마음들의 소외가 적어지기를 바란다. 사회적 약자가 다른 편이고 그 반대가 내 편인 것 같은 이분법적 인식의 오류를 넘어서기를 바란다. 이번 선거에는 폭력과 혐오를 선동하는 정치 세력으로 인해 그 마음이 더욱 쪼그라들고 말았지만, 그 시끄러운 와중에 사회적 약자를 언급하고, 소외된 마음을 말해주고,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삶을 요청해준 곳곳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황폐한 땅 위에 내리는 단비를 맞은 듯 대책없이 뭉클했다. 맞다, 꼴찌라고 모든 면면에서 전부 꼴찌일 리는 없다. 나에겐 당신들이 일등이었고, 캄캄한 삶을 지키고 밝히는 티끌 같은 불빛이었다.

꼴찌가 없는 세상 같은 건 올까? 꼴찌가 많아도 괜찮은 세상은 올 수 있지 않을까? 낙담할 필요는 없다. 이제 다음 꿈을 꿀 차례다.

소설가.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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