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3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언유착 의혹’ 사건 등에 대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를 원상회복 시키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진의가 왜곡될 수 있다”며 관련 논의를 중단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재임 시절,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상대로 측근과 가족 등이 연루된 사건의 수사지휘를 할 수 없도록 한 바 있다. 이런 조처는 지난해 김오수 검찰총장이 취임한 뒤에도 이어져 왔다.
법무부는 “박 장관은 추미애 전 장관이 두 차례에 걸쳐 배제한 검찰총장의 수시지휘권을 전체 사건에서 원상회복시키고자 검토하던 중 진의가 왜곡된 내용이 기사화돼 오해의 우려가 있어 논의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31일 밝혔다. 이날 <중앙일보>는 박 장관이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이 연루된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복원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언론은 김오수 검찰총장이 사건을 지휘하게 되면, 박 장관이 한 검사장의 무혐의 처분을 막기 위한 수사지휘권을 추가로 발동할 방침이라는 내용도 기사에 담았다.
앞서 추 전 장관은 2020년 7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동재 전 <채널에이(A)> 기자의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혐의 성립 여부 검토 등을 위해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하려 하자, 윤 총장을 수사지휘에서 배제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이 사건의 피의자인 한동훈 검사장이 윤 당선자의 최측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추 전 장관은 그해 10월에는 라임자산운용 부실수사 의혹 사건과 윤 총장 배우자와 가족이 관련된 △코바나컨텐츠 대가성 협찬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장모 최씨의 영리의료기관 불법 설립 부당 처벌 의혹 등에 대해서도 총장의 수사지휘를 배제했다.
박 장관이 이들 사건의 검찰총장 수사지휘권을 회복시키려다가, 관련 논의를 돌연 중단한 것은 정권교체기에 불필요한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검찰청법상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 지휘·감독할 수 있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 등과 관련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가 중단된 상황이어서 김오수 총장은 물론, 박 장관도 구체적 사건 보고를 받지 못하고 지시를 내릴 수 없다. 이에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복원한 뒤, 이 사건 관련해 박 장관이 검찰총장을 상대로 또 다른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 것이다.
당장 국민의힘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국민의힘 소속 법제사법위원들은 이날 성명을 내어 “검언유착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형사 1부가 한동훈 검사장에 대해 11번째로 무혐의 의견을 내자, 최종 무혐의 처분을 막기 위해 수사지휘권 발동이라는 초강수를 두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이선혁)는 2020년 4월부터 <채널에이> 이동재 전 기자와 한 검사장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한 뒤 2년가량 수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팀은 같은 해 8월 이 전 기자를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기소했지만, 공모한 혐의를 받는 한 검사장에 대해선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수사팀은 한 검사장의 혐의를 입증할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해 무혐의 의견을 지휘부에 여러 차례 보고했지만 반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이성윤 서울고검장은 한 검사장의 휴대폰 포렌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반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장관은 이날 오후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추 전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전체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의 수사) 지휘 배제를 원상 복구하는 것이 특정인을 겨냥한 지휘회복이라는 뉘앙스의 기사를 보고 놀랐다”며 “원래 취지가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관련 논의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수사지휘권 복원)논의가 중단된 것이지 전혀 없던 얘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총장) 수사지휘권을 복원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대선 전에는 선거에 어떤 형태로든 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검토할 수 없었다. 최종적으로는 (이들 사건이) 검찰총장의 지휘 아래에 판단돼야 한다는 것은 누누이 말해왔다”고 답했다. 앞서 박 장관은 지난해 12월29일 기자 간담회에서도 ‘윤 전 총장이 사퇴했는데 수사지휘권을 복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말에 “결론을 낼 즈음에는 총장의 판단을 한번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과거에도 얘기했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