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박건희 경기도 감염병관리지원단장,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감염내과)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 중환자실 다인실 구조를 바꾸자고, 지금 하고 있던 얘기를 똑같이 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때 개선돼야 한다고 했던 것들이 지금도 또 문제가 되는 거예요.”(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
4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41일 만에 12만명대로 떨어졌다. 방역당국은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사적모임 10인·영업시간 밤 12시’로 완화하며 2주 뒤엔 실내마스크 외 대부분 방역을 해제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는 ‘세계 첫 엔데믹(풍토병이 된 감염병) 국가’를 언급하며 감염병의 ‘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제 ‘다시 시작’을 논의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를 겪는 과정에서 드러난 구조적 취약점을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또 다른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나 감염병 유행에서 같은 피해가 반복될 거란 우려다.
<한겨레>는 지난달 28일 오후 비대면으로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박건희 경기도 감염병관리지원단장,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감염내과)를 만나 ‘오미크론 정점 이후 감염병과 일상회복’을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세 명의 전문가는 일상회복의 첫걸음으로 ‘환자들의 일상 의료 복구’를 지적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을 1급에서 2∼4급으로 조정하는 논의를 시작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2∼4급으로 낮추고, 환자를 안전하고 유연하게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고민해야 한다”며 “1∼4급으로 분류된 현재의 감염병 체계 개편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유증상자가 검사를 받는 현재의 전수검사 검사체계에 대해서도 “고위험군이 아니라면 검사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1급 감염병은 치명률이 높거나 집단발생 우려가 커 음압격리 등 높은 수준의 격리가 필요한 반면, 4급 감염병은 인플루엔자 등 유행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표본감시 활동이 필요한 감염병이다.
중장기적으론 의료시스템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적은 인력이 많은 환자를 돌보는 구조를 현재의 구조를 바꾸고, 다인실 구조에서 1∼2인실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유럽 등의 1인실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한국은 다인실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감염병 확산·관리에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병원 건축설계 지침 등을 법령 등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대한민국 코로나19 방역을 이끌어온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할까? 이들은 효과는 있었지만, 소상공인들의 일방적 희생이 컸다고 지적했다. 미래의 또 다른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사회적 거리두기를 다시 도입해야 하는냐는 질문에 “안 한다 할 수는 없다”면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손쉽게 할 수 있는 방역 조치로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전문가들과 나눈 대담 전문.
—검사와 격리 기준을 바꾸자는 논의가 있다. 감염병 등급과도 연결된 문제다.
박건희 경기도 감염병관리지원단장(이하 박) 델타 유행까지는 1급 감염병으로 대응하는 게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오미크론 대응을 놓고 보면 상황에 따라서 1∼4급이 섞여있다. 전수 신고는 1급, 일반 병실에서 확진자를 보는 것은 2급, 추적조사 안 하는 것, 동네 의원에서 대면진료 하는 것은 4급이다. 고위험군에겐 치명적이지만, 90~95%에게는 약한 감염으로 갈라지는 상황이다. 지침 전부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고 2∼4급으로 하되 환자 치료를 안전하고 유연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살펴야 한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이하 엄) 등급을 어떻게 변경을 하든 현장에 준비가 충분히 잘 돼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준비가 잘돼 있다고 보긴 어렵다. 같은 대형병원이라도 병동마다 확진자와 다인실을 쓰는 문제에 있어 정서가 너무 다르다. 의료진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정작 등급이 조정됐는데 현장은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이하 김) 현재 오미크론의 치명률이나 중증도가 2급 감염병으로 되어 있는 수두하고 비슷한 수준이라, 2급 정도로 관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 새로운 변이가 나오면 등급을 바꾸고 이런 대응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외국에서 신종 감염병을 분류할 때 1∼3급이 아니라 호흡기계 감염병, 소화기계 감염병 이런 식으로 분류 한다. 그 감염병의 특성과 가장 근접한 기존 감염병의 지침을 근거로 대응하는 것이다. 현재 1∼4급 감염병 관리체계는 근본적으로 개편될 필요가 있다.
—감염병 등급을 바꾸면 의료 지원은? 현재 입원·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박 재난 상황을 넘어 일상 의료로 돌아간다면 의료비도 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치료비나 일반적인 대부분의 것들은 기존의 건강보험의 틀 내에서 해결하는데 동의한다. 다만 국가가 관리하고 감염 전파를 막기 위해 여러 격리조치들이 있는 것이어서, 감염병의 특성을 고려해서 본인 부담률을 낮춰줘야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고혈압 당뇨병 등과 같은 수준으로 관리하기엔 특성이 좀 다르다.
—앞으로도 모든 사람이 확진 검사를 받아야 할까?
박 치료 목적의 검사라면 전수 검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증상이 있는 사람이 확진 결과 없이도 쉴 수 있는 유급휴가 등 정책이 안 된다면 ‘마지막 남은 방역’ 격리를 위한 전수 검사는 필요할 수 있겠다. 코로나19는 우리사회 어디가 취약한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콜센터 노동자나 물류센터 노동자는 아파도 쉴 수가 없다. 아파서 쉬는 것이 고용의 위협으로 연결되면 다음 감염병 예방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엄 아프면 쉴 수 있고, 코로나19 관련 지원이 열려 있다면 고위험군이 아닌 분들이 확진 검사를 받을 이유가 없다. 검사 자원도 좀 많이 좀 우리가 좀 필요한 데 써야 한다.
김 미국은 오미크론 이후 유급병가를 확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사람들이 아프면 쉴 수 있게 하겠다는 거다.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 코로나19에 걸려도 계속 출근을 하면 감염 전파가 이뤄진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3분의 1 이상은 유급병가 형태로 쓸 수 있는 연차나 휴가가 없는 상태다. 이런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유행이 급속하게 확산하는 시기엔 검사를 적극으로 할 필요가 있고, 유행 규모가 적을 때는 아닐 수도 있다. 또 고위험군이냐 아니냐도 상당히 다를 거다.
—다음 유행을 대비하기 위해 보건의료 인력 문제도 짚어야 할 것 같다.
엄 적은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보는 게 문제다. 평상시에도 빠듯하게 돌아가는데 감염병 상황이 되면 금방 바닥을 보이는 거다. 그럼 업무 부담이 늘어나니 또 이직·사직을 한다. 의료 체계를 싹 갈아엎어야 되는 거 아닐까. 감염병이 없는 시기에 개선되지 않으면, 똑같은 어려움이 반복된다. 인력이 어느날 갑자기 예비군 동원하듯 되지는 않을 거다.
김 단기적으로는 병원의 인력 의료 인력을 지금보다 더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또 한편으로는 대형병원이 조금 더 적은 환자를 볼 수 있게 해야한다. 요양원·요양병원 역시 간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요양병원에서의 집단 감염이 생기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중환자 병상에 대한 지원금 등을 주면서 상시 인력고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박 보건소의 경우 모든 업무를 다 중단하고 지금 코로나19 대응만 하고 있다. 이대로 계속할 수 없으니까 원상복귀를 할 텐데, 유행이 돌아오면 지금처럼 반복할 것인지 고민이다. 시군구마다 안정적으로 상비군 역할을 하는 인력이 있어야 한다. 이들이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대응 요원으로 전환될 수 있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들도 역학조사, 감염병 관리에 대한 이런 전문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분들이 계속 머무를 수 있도록 교육하고 유지해 줘야 한다.
—다인실 시스템도 문제로 지적된다.
엄 다인실은 저비용 적은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볼 수 있는 구조다. 1인실로 된 중환자실은 동선 자체가 너무 멀어서, 간호사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데만도 시간이 걸린다. 1∼2인실 구조로 가면 그만큼 많은 인력과 비용의 상승을 가져온다. 하지만 선진국은 구조의 편익, 환자 인권 측면에서 1인실로 가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하는 시기가 됐다. 메르스 이후에도 다인실 구조와 관련된 얘기를 꺼냈는데 안 됐다. 그때 몇 조원을 들여서라도 바꿨다면 우리가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그런 후회를 요즘 한다. 기본적인 구조나 시설을 바꾸지 않으면 감염병 대응은 어렵고 따라서 병원의 건축·설계와 관련된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미국은 2007년도에 관련 법을 만들었다. 우리도 지금 그런 기준을 만들지 않으면 문제가 반복될 거다.
김 병동 환기 문제를 우리가 너무 간과하고 있다. 메르스 때 확진자가 다른 환자를 접촉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데서 감염이 된 적이 있다.
엄 에너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실내 공기를 섞어서 돌리기 때문이다. 감염 유행 상황에선 실내공기를 외부로 내보내고 100% 외부 공기를 넣어야 하는데, 이런 ‘전 외기 시스템’도 법령이 규정해놓지 않으면 만들지 않는다.
김 지금처럼 고정된 수의 병상을 확보해서 대응하는 방식은 고정된 수의 병상을 비워서 생기는 비효율의 문제와 다른 환자들이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지역 단위로 책임지고 진료하는 체계가 있고, 환자의 중증도와 응급도에 따라 우선순위 진료 원칙이 지켜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탄력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의료 시스템에서 문제가 적게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유행 국면에서 거리두기 어떻게?
김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상당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동반하는 것이라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경제적인 피해, 아이들과 노인과 장애인의 돌봄의 공백들이 발생했다. 이런 피해를 간과한 채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너무 강력하게 했던 게 문제다. 의료대응 체계를 정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과도하게 사회적 거리두기에 의존했다. 앞으로는 주식시장 ‘서킷브레이커’(증시에서 일정 기준의 주가 하락에 단기간 모든 종목의 거래를 중지시키는 제도) 처럼 유행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시기에 단기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중심으로 가야 한다.
박 거리두기의 목적은 접촉량을 줄이는 것인데, 무조건 영업제한을 생각한다. 이동량 등을 판단해서 자율적인 거리두기가 가능한 부분도 있다고 본다. 실질적으로 많은 국민들이 자율적으로 정부의 제도와 정책과는 상관없이 거리두기를 생활화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새 정부는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박 언제 새 변이가 올지 모른다.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다 끝났다는 메시지를 주면 안되고 해외 입국자 격리, 접촉자 추적 격리 등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좀 메시지를 주면 좋겠다.
엄 신종 감염병에 대한 방역 체계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개발돼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결국 지금까지 해왔던 방역 중에 잘 됐던 것들은 계속 잘 될 수 있게 유지하고, 뭔가 좀 보완이 필요한 것들은 다시 논의해야 한다. 갑자기 방역의 방법을 확 틀어버리면 현장 혼란만 남는다. 현장에서 그동안 열심히 일했던 분들의 공을 깎아내리지 좀 않았으면 좋겠다.
김 인수위에서 새로운 방역 체계 얘기들이 나오지만 정치적인 비판, 레토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구체적·객관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는 데까지 아직 못 가고 있다. 공공병원을 감염병전담병원화하자는 공약도 마찬가지다. 공공병원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다 전환하면, 유행이 잦아들면 그 다음에는 공공병원들은 다 놀아야 한다. 그럼 의료진이 떠나고 다시 감염병이 오면 공공병원이 환자를 못 볼 수 없다. 감염병에 대비된 전문성이 있는 병원 소수의 병원이 있을 필요는 있지만, 대규모 유행이 발생하는 시기에는 평소에 보던 환자를 보던 병원이 더 많은 자원을 할애해서 감염병을 맡는 방식이 돼야 한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