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법무부 장관 후보군이 김오수 검찰총장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낮은 검찰 출신이라는 점에서 김 총장이 임기를 지킨다면 총장이 장관보다 기수가 높은 ‘기수 역전’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검찰 조직 내에서 기수 역전이 드문 만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김 총장보다 기수가 낮은 전직 또는 현직 검찰을 장관에 앉혀 김 총장의 중도 사퇴를 유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차기 법무부 장관으로 거론되는 주요 후보군은 한찬식(사법연수원 21기) 전 서울동부지검장, 권익환(22기) 전 서울남부지검장, 조상철(23기) 전 서울고검장, 강남일(23기) 전 대전고검장을 비롯해 지난 5일 사의를 밝힌 조남관(24기) 법무연수원장 등이다. 모두 김오수(20기) 총장보다 기수가 낮다. 김 총장보다 나이도 많게는 6살, 적게는 2살 어리다. 이들 가운데 한명이 법무부 장관에 낙점되면 김 총장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연수원 기수가 낮은 장관의 ‘지휘·감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내년 5월까지 임기가 1년여 남은 김 총장의 중도 사퇴 압박용으로 윤 당선자 쪽이 김 총장보다 기수가 낮은 법무부 장관 카드를 고려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풀이가 나온다. 기수가 같거나 낮은 ‘상급자’가 생기면 ‘줄사표’를 내는 검찰 기수문화를 노린 것이란 분석이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후배가 장관으로 오면 총장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 총장이 정치권의 흔들기와 기수 역전에도 임기를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기수 역전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과거에 견줘 검찰 기수문화가 약화됐고, 이른바 ‘추(미애)-윤(석열) 갈등’은 이례적인 일로 장관과 총장이 부딪힐 일이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기수를 따지면 윤 당선자가 김 총장보다 기수가 낮은데 그럼 김 총장은 바로 사퇴해야 하는가. 검찰 기수문화도 옛말이다.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는 김 총장이 압박으로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기수 역전을 경험한 한 전직 검찰총장은 “서로 영역을 존중하면 장관과 총장이 충돌할 일 자체가 많지 않다. 총장은 대검 차장검사나 기획조정부장, 장관은 법무부 검찰국장 등을 통해 서로 소통하기 때문에 직접 연락할 일도 드물다. 기수 역전 때문에 불편한 일은 없었다”고 했다.
2000년 이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사이 기수 역전이 일어난 사례는 모두 6건이다. 참여정부 시절 강금실 법무부 장관(13기)과 송광수 검찰총장(3기)이 대표적이다. 천정배 장관(8기)과 김종빈(5기)·정상명(7기) 총장도 기수가 역전된 케이스다. 지난해 초 취임한 박범계 장관(23기)도 지난해 6월 임명된 김오수 총장보다 기수가 낮다. 다만, 강금실·천정배·박범계 장관은 검찰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검찰 출신 장관으로 기수 역전이 이뤄진 경우는 이명박 정부의 이귀남(12기) 장관과 김준규(11기) 총장, 박근혜 정부의 김현웅 장관(16기)과 김진태 총장(14기)이 꼽힌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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