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기자회는 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 ‘성차별이 언론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경없는기자회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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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연 기자님께 제보합니다.’
지난 3월17일 오전 일을 시작하면서 이메일함을 열었다. 기자라면 당연히 이런 제목의 메일을 반가워할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터다. 그러나 선뜻 열지 못했다. 이메일을 열지 않고, 미리보기창에 뜬 메시지를 곁눈질로 힐끔 훑어보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 씨○, 너 같은 ○들 때문에 ○○거야….” 정중한 메일 제목과는 달리 다짜고짜 심한 욕설, 여성 비하 표현만이 줄 잇는 메일 내용이다.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여성기자 온라인 괴롭힘에 관한 저널리즘 사회학적 연구’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가 나올 정도다. 김창욱 한동대 교수(글로벌리더십학부)와 신우열 경남대 교수(미디어영상학과)가 20명의 여성기자를 심층 인터뷰해 작성한 보고서다. 20명의 여성기자는 한명도 빠짐없이 자신 그리고 그 주변에서 여성기자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 언어폭력을 경험했다. 그들이 겪는 괴롭힘은 1. 악성 댓글, 이메일 등으로 받는 혐오성·성희롱성 메시지 2. 온라인상 개인 신상 및 얼굴 공개 및 박제, 조리돌림 3. 오프라인 공격 등이 있었다.
‘강간하겠다’ ‘네 가족들을 성폭행할 것이다’ ‘칼로 찔러 죽이겠다’. 20명의 한국 여성기자들이 언어폭력의 가해자들에게 실제로 받은 메시지들이다. 국외 여성 언론인이 처한 환경도 유사하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지난해 ‘성차별의 저널리즘에 대한 대가’라는 보고서를 냈다. 120개 나라, 150명의 언론인을 설문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어떤 종류의 젠더 기반 혹은 성폭력이 여성 언론인에게 영향을 미치느냐’라고 물었더니 응답자 84%가 ‘성적 괴롭힘’, 30%가 ‘성폭행’, 27%가 ‘강간 협박’을 꼽았다.
여성기자에 대한 강간 협박, 성폭력 위협은 ‘젠더화한 트롤링(trolling)’의 실태를 보여준다. ‘트롤링’은 인간을 비하, 도발, 학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반사회적 행위의 한 형태다. 여성기자에 대한 트롤링은 가부장적 사회의 여성 혐오와 맞물려 더욱 폭력적인 형태를 띤다. 언론 혐오와 여성 혐오가 더해져 가해지는 언어폭력에는 여성을 성적 도구로 보거나, 여성의 신체 일부를 파괴할 것이라는 내용이 즐비하다. 이런 온라인 괴롭힘, 언어폭력의 가해자들이 목적하는 바는 뚜렷하다. 여성기자들이 가해자 자신보다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라고 여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가해자들은 여성기자들을 위협하고, 길들이고자 한다.
<한겨레>는 취재보도준칙에 ‘(책임자는) 기자 개인에 대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기자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런 준칙에 바탕을 두고 최근에는 기사 말미에 ‘기자 개인을 상대로 욕설, 협박을 비롯한 악성 전자우편을 보내는 경우 수사기관을 통해 발신자를 추적해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기도 한다. 이 문구를 보고 비아냥대며, 욕설을 하는 메일이 도착했다. 법적 조치 한다는 게 ‘(한겨레의) 종특’이냐고 했다. 더는 언어폭력과 그 가해자를 두고 보지 않겠다는 ‘종특’, 맞다. 최근 한 동료는 메일과 댓글의 언어폭력을 더는 참지 않기로 했다. 그는 자신에게 온 이메일을 모아 언어폭력에 대응하는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경찰 고소를 진행할 예정이다. 언어폭력, 그것은 절대 ‘놀이’일 수 없다.
이정연 젠더팀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