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광진구 구의로의 튤립나무 가로수. 한창 푸르러야 할 봄이지만, 잎 한 장 틔우지 못했다.
서울 광진구가 구의로 740m 구간을 ‘산딸나무’ 특화거리로 만들기 위해, 조만간 수령 30년 이상 튤립나무 56그루를 베어낼 예정이다. 구청은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내 튤립나무가 너무 커서 가지가 건물과 맞닿고 걷기가 불편하며 뿌리가 보도를 훼손하고 있다고 했다. 나무 속이 썩어서 쓰러질 우려가 있고, 나무 위로 배전선로가 지나가 안전 문제 때문에 가지치기를 자주하다 보니 나무가 기형이 돼 도시미관을 저해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모두 ‘수종개량’ 필요에 대한 근거들이다.
아울러 광진구는 이번 수종개량을 위해 지난해 5∼9월 서울시립대에 의뢰해 가로수 생육 실태조사를 해 56그루 중 37그루가 줄기가 썩어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했고, 같은해 12월 서울시 도시숲 조성·관리 심의위원회 심의도 거쳤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19일 <한겨레>가 현장을 찾았다. 한창 잎을 틔워내야 할 거수들은 전봇대마냥 서 있었다. 간신히 틔운 잎들이 위태로워 보였다. 닭발 모양이 돼 버린 꼭대기는 매년 반복되는 강한 가지치기에 검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가지치기 원인이 ‘배전선로에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 광진구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왕복 2차선 찻길의 서쪽 가로수 위로는 배전선로가 지나지 않았다. 멀쩡히 더 클 수 있는 튤립나무들의 굵은 가지들에 톱을 댔던 것이다. 동쪽 가로수들 역시 ‘서울시 가로수 가지치기 기준’을 어겨가며 고압선 아래가 아닌 2m가량 아래 중성선(고압선 보조전력선) 아래서 싹둑 잘려져 있었다.
이에 대해 문의하자 정종열 광진구 공원녹지과장은 “언제부터 이런 식으로 가지치기했는진 알 수 없다. 양쪽 가로수 높이를 맞추려고 그랬던 것 같다”면서도 “‘상가 간판을 가린다’는 등 관련 민원도 많았고 흉물스럽게 변해 그대로 두기 어렵다고 판단해 1년간 검토해 산딸나무 116주로 대체하려고 결정했다. 건강한 튤립나무 5∼6주는 녹지대로 옮기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9일 서울 광진구 구의로의 튤립나무 가로수들. 오랫동안 강한 가지치기에 노출돼 생육상태가 좋지 않았다.
호텔을 짓는다고 멀쩡한 나무 70그루를 졸속으로 만든 조례로 베어내도록 한 최근 경기 성남시 ‘가로수 학살’ 행정과 비교하면 ‘신경 좀 쓴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간의 무자비한 가지치기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 없이 나무 탓만 한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지점이 많다. 가지치기 등 관행은 그대로 두고 나무만 새로 심겠다는 건데, 30년 뒤 구의로 산딸나무들은 멀쩡히 자라고 있을까. 이곳 가로수는 수십년간 묵묵히 이산화탄소 등 오염물질들을 정화해 왔고, 여름엔 그늘을 만들어 더위를 식혀줬다. 경기개발연구원(현 경기연구원)이 2009년 발표한 ’도시 수목의 이산화탄소 흡수량 산정 및 흡수 효과 증진 방안’ 보고서를 보면 튤립나무는 큰 잎 덕분에 한 그루가 연평균 흡입하는 이산화탄소가 101.9㎏으로, 소나무의 14배에 달한다. 달리보면 오염이 심한 도심에 적격이다.
지금의 구의로 ‘흉물 가로수’를 만들었고 썩어들어가도록 관리해 주민들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 주체는, 튤립나무가 아닌 바로 광진구다. 나무들은 잘못이 없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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