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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소수자였던 내 묘비에 이름 두개를 적어야지

등록 2022-04-30 09:29수정 2022-05-01 15:08

[한겨레S]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봄날의 다짐

일년에 한번 아버지 앞에 선다
하늘 나라에서는 행복하시길
훗날 내 묘비명엔 뭐라 적을까
두 이름, 삶 하나였다고 쓰고파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봄날이면 해마다 대전에 간다. 그림 박조건형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봄날이면 해마다 대전에 간다. 그림 박조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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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엔, 대전에 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 3월 말이었고, 국가유공자였던 아버지의 생은 뽀얀 흙으로 대전 국립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기일인 3월 말을 매번 넘기다 보니 갈 때마다 봄날이었다. 작년과 재작년은 전 지구적 재난을 핑계로 집 안에 내 마음을 꽁꽁 가두었더니, 3년 만이었다. 갈 때마다 봄이었어도 이토록 꽃이 활짝이었나, 나는 만개한 꽃무더기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감탄했다. 고개만 들어 올리면 무조건 꽃인데, 왜 누군가의 생은 집 밖에 나가는 일조차 고난이고 전쟁인가. 이 순간에도 갇혀 사는 사람들이 생각나 봄 생각은 삽시간에 까무룩해지고 만다.

묘비 앞 제일 먼저 하는 말

아버지는 막걸리를 좋아하셨다. 지금에 와서야 아버지가 바랐던 게 진정 막걸리였을까, 라면 한 그릇이었을까, 헤아리지 못한 그 마음이 생각나 형편없던 자식인 나를 확인한다. 무참히 망가진 생을 일으키려 남루한 밥상 앞에 억지 환호를 쏟아내야 했던 것도 아버지란 ‘사람’ 아니었는지.

그래서 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 제일 처음 챙기는 것도 막걸리다. 털 달린 비곗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김치찌개도 좋아하셨는데, 그것까지 준비할 만큼 효성 지극한 자식 흉내는 내지 않으려 한다. 사과 세알, 배 한알을 막걸리와 같이 챙기는 게 전부다. 막걸리도 명태포도 현충원 내 보훈 매점에서 구입할 수 있으니, 내가 집에서 들고 나서는 건 사과 세알, 배 한알, 그리고 알량한 내 봄날.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을 가득 채운 똑같은 크기 똑같은 모양의 묘비들 앞에 설 때, 내가 움켜쥔 삶은 사소해진다. 막걸리와 같이 샀던 이름도 모르는 가짜 꽃들의 꽃말을 생각한다. ‘예쁘다’고 말하지만 분홍빛 구겨진 꽃잎에 플라스틱 실밥이 풀어진 게 보인다. 정말 예쁘지 않으냐고 신랑에게 억지 동의를 구하고서, 나는 무더기 가짜 꽃들 속에 코를 묻는다. 어떤 향기도 나지 않지만, 향기를 기억하는 나를 기억하고, 나를 기억하는 향기를 기억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해 동안 나는 엉뚱한 묘비 앞에 꽃을 올리고 절을 하고 돌아간 적이 있었다. 묘비 위에 제일 크게 새겨진 건 이름 석자.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 이름 석자만 보고 판단해 나는 묘비 앞에 머리를 조아렸고, 음식을 올렸고, 절을 했고, 내년에도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고 다음해에도 또 이름만 똑같은, 내 아버지가 아닌 다른 분의 묘비 앞에 음식을 올리고, 절을 드리고, 약속했다.

서너해 그렇게 엉뚱한 자식 노릇을 반복하다가 묘비 뒤편에 적힌 사망 날짜를 확인하고서야 내가 그동안 남의 아버지에게 절을 올렸단 걸 알았다. 한 블록 위쪽 묘비들 사이에서 그제야 아버지의 이름과 사망 날짜를 찾아 그 앞에 섰을 때, 나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묘비 앞에 비석처럼 굳었다. 가짜 꽃도 없이 몇해 동안 먼지를 뒤집어쓴 아버지의 이름 위엔 새똥이 엉겨 있었다.

아버지의 묘비 앞에 서면, 제일 먼저 잊지 않고 꼭 하는 말이 있다. ‘아버지 둘째예요, 막내 아닙니다.’ 아버지가 나를 지정 성별 여성이었던 막내동생과 혼동하지 마시라고 그 말부터 건넨다. 발작을 하고 난 아버지의 몸을 씻기고, 막걸리와 라면뿐인 밥상을 차렸던 건 내 두 다리 사이의 그 물건이 아니라 나였으니, 아버지라면 내가 어떤 꼴이든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믿어본다. 육신을 벗어버린 몸이라면 지상의 이름쯤은 가뿐히 넘어서 헤아릴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이번에도 철부지 자식이 그러하듯 아버지 탓을 먼저 한다.

‘병필(호적정정 이전의 내 남자 이름)씨 사위입니다’라고 같이 간 신랑이 농담을 던지고 나면, 무참하고 복잡했던 아버지 앞에 선 그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그제야 잘 살고 있다고, 아버지가 보살핀 덕분인지 내 생의 그 어느 순간보다 지금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내 일상을 전한다.

그러고 나면 제주에 사는 복희씨 이야기랑, 소식을 끊은 오라비와 여동생 이야기랑, 가족들 이야기를 더듬더듬 건넨다. 복희씨가 혼자되고 집사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나조차 믿기 힘들어 여러번 아버지에게도 놀랄 일 아니냐고 재차 물었고, 어디에 어떻게 사는지 모르는 오라비와 여동생도 굽어살펴달라고 부탁했다.

살아생전 한번도 아버지 앞에 모이지 못했던 가족은, 그렇게 이야기로나마 1년에 한번 아버지 앞에 모인다. 그때에는 마음이 뿔뿔이 흩어진 채였고 지금은 몸이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럼에도 거기 자신들이 선 자리에서 각자의 쓸모를 찾아 끝까지 지독하고 끈질기게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생존자’의 발화처럼

사람으로 살아 있는 내 쓸모는 무얼까 생각한다. 두 다리나 두 팔이 있어야 사람이고, 두 다리 사이에 생식기 하나가 그 쓸모라고 믿는 이 사회 속에, 내 쓸모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어야 할까 생각한다. 언젠가 지인이 내 글을 두고 ‘생존자’의 발화처럼 읽힌다고 말한 적 있는데, 나는 그제야 정돈되고 말끔할 수 없었던 내 문장들의 정체를 알게 된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겠다는 모진 마음 한번 품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태어나 산다는 일이 곧 생존이니 우린 누구라도 생존자로 살다가 생존자의 삶을 기록하고 떠나는 게 아닐지. 버티고 견디는 삶이란 수사는 지키면 된다는 가진 자들의 수사일 뿐, 생존하기 위해 어떤 모멸이나 손가락질도 각오할 수밖에 없는 그 삶들은 오늘도 모든 걸 내건다. 제 가진 것 몸뚱이 하나밖에 없어, 그 몸을 꽃나무 아래 내건다.

성소수자인 나에게도 ‘묘비’는 평등하게 허락될지 모르지만, 그 위에 무엇을 적을까 생각한다. 제일 먼저 남성으로 살았던 이름과, 여성으로 살았던 이름을 나란히 적을 것이다. 이 사회의 분류법으로 두가지 이름의 생을 지닌 한 사람이 하나의 생을 살다 갔다고 기록해, 그 생은 어떤 가능성도 훌쩍 뛰어넘는 역동이라는 사실을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 올봄엔 많은 것들이 새로워질 테니, 끝내 해냈다는 성취감 속에 그동안 미뤘던 우리 사회의 소외마저 끝낼 수 있는 우리이기를 바란다. 올해의 봄날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모두의 머리 위에 평등하게 꽃 피우기를.

소설가.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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