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선택적 기억’에 놀아난 공수처…수사력 논란 부른 4가지 장면

등록 2022-05-04 14:24수정 2022-05-05 02:14

고발사주 의혹 8개월 수사 돌아보니
여운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장이 4일 공수처 브리핑실에서 열린 ‘고발 사주’ 의혹 수사결과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여운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장이 4일 공수처 브리핑실에서 열린 ‘고발 사주’ 의혹 수사결과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검찰총장 핵심 참모가 총선 개입 혐의로 기소된 고발사주 의혹은 그 실체가 드러날 경우 형사사법제도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다. 4일 수사결과를 발표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이 검찰총장 또는 검찰을 보호하기 위한 대응 논리를 개발하는 일을 했던 것으로 보여지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이에 공수처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검찰사유화’를 의심해 수사했지만, 누가 고발장 작성을 지시했는지는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대신 공수처는 8개월 수사 기간 내내 수사력과 경험 부족 한계를 곳곳에서 드러냈다.

① 수사초기 윤석열 덜컥 입건, 정치적 논란 자초

공수처 수사는 시작부터 논란이 됐다. 지난해 9월 공수처는 시민단체 고발장을 받아들고 사흘 만에 제1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윤석열 당선자를 기초조사 없이 피의자로 입건부터 했다. 당시 김진욱 공수처장이 직접 입건 여부를 결정했다. 공수처는 정교한 수사계획 없이 대선 후보로 나선 윤 당선자의 입건 사실부터 공표해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자초했다. 이런 수사에 정통한 윤 당선자는 “작성자가 나와야 의혹도 제기하고 문제 삼을 수 있다. 괴문서,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입건을 안하고 수사를 하는 것도 모순이지만, 당시 공수처장 재량으로 입건이 결정되다 보니 기소 가능한 사건이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해 9월8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불거진 ‘고발사주'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해 9월8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불거진 ‘고발사주'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② 압수수색 절차 위반…“수사 기본기 안돼”

공수처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아 영장이 취소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지난해 9월 공수처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는데, 검찰 출신인 김 의원은 공수처 검사들이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보좌관 컴퓨터 등을 수색했다는 이유 등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취소해달라는 준항고를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핵심 물증이 확보된 것은 아니었지만 신생 공수처가 수사의 기본인 압수수색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초기 수사 동력이 꺾이는 변곡점이 됐다는 평가다. 당시 검찰에서는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지키지 못한 건 수사의 기본이 안 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9월8일 국회 소통관에서 지난해 4월 총선 직전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 검사로부터 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을 넘겨받았다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9월8일 국회 소통관에서 지난해 4월 총선 직전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 검사로부터 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을 넘겨받았다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③ 김웅·손준성의 선택적 기억과 말바꾸기

고발사주 의혹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와 김웅 의원은 이 의혹이 불거지자 입장을 여러 차례 바꿨다. 손 검사는 의혹 초기 ‘손준성 보냄’이라고 적힌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범여권 인사 고발장이 당시 미래통합당 쪽으로 전달됐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고발장 존재 자체를 모른다’는 취지로 반박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첫 구속영장 심사에선 ‘누군가로부터 이를 받은 뒤 반송 등의 방식으로 거절했다’는 취지로 말을 바꿨다. 텔레그램에는 ‘반송’ 기능이 없다.

김 의원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하고 책임져야 할 대목은 기억하지 못하는 ‘선택적 기억상실’로 일관했다. <한겨레>가 고발장 전문을 입수해 보도하며 논란이 커지자 김 의원은 당시 손 검사에게 보낸 일반적인 문자메시지 내용은 기억난다면서도 “고발장을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확인할 방법도 없다”고 했다. 제보자 조성은씨에게 “고발장 초안을 저희가 만들어서 보내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자신의 육성 파일이 지난해 10월 공개된 뒤에도 ‘통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제가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저희’는 검찰이 아닌 것 같다”는 앞뒤 안맞는 해명을 내놓았다.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지난해 10월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지난해 10월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④ 체포·구속영장 줄줄이 기각

공수처는 손준성 검사에 대해 40여일 사이 체포영장과 구속영장(2차례)을 잇달아 청구했다. 지난해 10월20일 출석에 불응하는 손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는데, 사흘 뒤에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또 기각됐다. 이후 손 검사를 두 차례 조사한 뒤 그해 11월30일 또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법원은 영장을 다시 기각했다. 사실상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판단이었다. 당시 여운국 공수처 차장은 손 검사의 2차 구속영장심사에 직접 나와 “우리 공수처는 아마추어다”라며 수사 경험이 많은 손 검사가 공수처 수사를 방해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공수처 스스로 수사력 부족을 자인한 것이어서 논란이 됐고, 잇단 구속영장 기각 뒤 공수처 수사는 수사 동력을 급격히 상실하며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발사주 의혹 수사 자체가 쉬운 수사는 아니었겠지만, 도주 우려 등이 없는 현직 검사인 손 검사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기각되자 재차 구속영장을 청구한 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식사도 못 하신다”…인생의 친구 송대관 잃은 태진아 1.

“식사도 못 하신다”…인생의 친구 송대관 잃은 태진아

‘내란 가담 의혹’ 박현수, 서울경찰청장 발령 2.

‘내란 가담 의혹’ 박현수, 서울경찰청장 발령

송대관의 삶엔 ‘한 구절 한 고비 꺾어 넘을 때’마다 사연이 3.

송대관의 삶엔 ‘한 구절 한 고비 꺾어 넘을 때’마다 사연이

홍장원·곽종근이 탄핵 공작? 윤석열의 ‘망상 광대극’ [논썰] 4.

홍장원·곽종근이 탄핵 공작? 윤석열의 ‘망상 광대극’ [논썰]

서부지법 난동 4명 추가 구속…“도망 염려” 5.

서부지법 난동 4명 추가 구속…“도망 염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