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대법정 출입구 위쪽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한겨레> 자료사진
법정에서 소란을 벌인 피고인에게 이미 선고한 징역 1년을 3년으로 늘려서 다시 선고한 재판부의 ‘괘씸죄’ 판결이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3일 무고 및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ㄱ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차용증 등을 위조한 혐의로 기소된 ㄱ씨는 2016년 9월 1심인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재판장 김양호)에서 애초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판사가 주문 낭독을 마친 뒤, 절차에 따라 상소 기간을 고지하려 할 때 ㄱ씨가 “재판이 개판”이라며 난동을 부렸다.
법정에 있던 교도관들이 ㄱ씨를 제압해 밖으로 끌고 나갔으나 김 부장판사는 ㄱ씨에게 재판정으로 돌아올 것을 명했다. 다시 법정에 복귀한 ㄱ씨는 ‘그래서 뭐 항소기간이 어쨌다는 거냐’고 재차 따져 물었다. 그러자 김 부장판사는 ‘선고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최종적으로 마무리되기 전 법정에서 이뤄진 사정 등을 종합해 선고형을 정정한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당초 검찰도 피고인에게 징역 1년만 구형했고 최초 선고했던 형량도 징역 1년이었지만, ‘괘씸죄’로 두 번째 형을 선고 받으며 형량이 3배가 된 것이다.
2심은 ㄱ씨가 반성하는 점 등을 들어 형량을 2년으로 줄였다. 그러나 선고 절차가 위법이라는 ㄱ씨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소 기간 고지 등 선고 절차가 종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형량을 변경해 선고하는 것이 위법하지 않다는 취지였다. 2심 재판부는 “판결 선고는 재판장이 판결 주문을 낭독하고 이유 요지를 설명한 다음 상소 기간을 고지하고 피고인 퇴정을 허가해 법정 바깥으로 나가 공판기일이 종료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며 “그때까지 일단 선고한 판결 내용을 변경해 다시 선고하는 것도 적법하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먼저 대법원은 ‘번복 선고’ 자체는 가능하다고 봤다. 주문을 낭독한 뒤라도 공판기일이 종료되기 전까지 주문 내용을 정정해 다시 선고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다만 주문 낭독을 잘못한 실수가 있거나, 판결 내용에 잘못이 있는 경우 등에만 변경 선고가 허용된다고 한계를 뒀다. 이어 대법원은 “이 사건 변경 선고에는 최초 낭독한 주문 내용에 잘못이 있는 등 변경 선고가 정당하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발견되지 않아 위법하다”며 1심 선고가 적법하다는 전제에서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앞서 김양호 부장판사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 등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 판결하면서 당사자들에게 사전에 알리지도 않고 선고기일을 갑자기 앞당겨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지난해 6월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는 선고기일을 당초 예정된 날짜보다 사흘 앞당기면서 그 사실을 원고 쪽 변호인단에게 재판이 열리기 불과 몇 시간 전에 통보했다. 당시 재판부는 선고기일을 기습적으로 앞당긴 이유로 ‘법정의 평온과 안정’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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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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