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 끌려가 강제동원을 당한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패소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고 임정규씨의 아들 임철호(왼쪽)씨와 일제강제노역피해자회 장덕환 사무총장, 강길 변호사가 판결이 내려진 뒤 법원을 나서면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법원의 갑작스러운 기일변경에 소송 원고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방에 사는 원고들은 재판에 나올 수 없었고,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정영수(71)씨도 하마터면 법원에 오지 못 할 뻔했다. 지난 7일 오전,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심리 중이던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는 선고기일을 3일이나 당겨 이날 오후 2시에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역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가운데 최대규모인 이 사건의 애초 예정된 선고기일은 오는 10일이었다. 이 사실은 선고를 불과 몇 시간 앞둔 이 날 오전에야 소송대리인에게 통지됐다고 한다.
선고 1시간 반 전에 소식을 듣고 의정부에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까지 부랴부랴 달려온 정씨는 선고가 끝난 뒤에도 법원을 떠나지 못하고 한동안 주변을 맴돌았다. “이게 재판인가요?” 정씨는 울분을 터뜨렸다. “우리 아버지가 미쓰비시 탄광에서 주먹밥 한 덩어리만 먹으면서 죽도록 고생하다 겨우 살아서 한국에 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돌아가셨어요. 일본의 잔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 선고기일을 갑자기 변경한 재판부는 이날 “원고의 소를 모두 각하(소송이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더는 심리하지 않고 종결하는 것)한다”고 판결했다. 피해자들이 사실상 패소한 것이다.
선고기일이 앞당겨진 것은 이례적이다. 여러 사정으로 선고기일이 미뤄지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앞당기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판사들은 입을 모은다. 판결문을 일찌감치 써둬야 하고, 빡빡한 재판 일정에서 비어있는 시간을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판기일을 갑자기 바꾸면 원·피고와 변호사 등 여러 소송 당사자 및 대리인의 일정도 꼬일 수밖에 없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중요사건의 경우 자칫 억측을 불러올까 봐 기일 연기도 조심한다”며 “(이 사건처럼) 중요사건의 기일을 당긴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10년 경력의 재경지법 한 판사도 “선고기일을 앞당긴 사례는 처음 본다”며 의아해했다.
이 사건 재판부는 선고기일을 앞당긴 이유로 “법정의 평온과 안정”을 꼽았다. 정해진 날짜에 선고하면 원고들이 각하 판결에 반발해 ‘법정의 평온과 안정’이 깨질 수 있으니, 선고 날짜를 당일 오전에 갑자기 변경함으로써 원고들 상당수가 아예 법정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문구다. 선고기일 변경을 둘러싼 논란을 예상한 듯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 3개를 제시하며 “선고기일 변경은 당사자에게 이를 고지하지 않아도 위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서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판부의 이런 선택에는 오랜 시간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온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존중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소송 당사자보다 ‘조용한 법정’이 중요하다는 재판부의 판결을 강제동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6년 동안 기다렸다. 이 소송은 2015년 5월22일에 제기됐지만, 수년 동안 일본기업들이 소송에 응하지 않으면서 첫 변론 기일이 지난달 28일 열렸다.
1심 판결은 재판부의 게릴라식 선고 날짜 변경으로 예상보다 일찍 허무하게 끝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2018년 판결에 따라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올 거라 기대했던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법원 밖에서 “각하 판결하려고 선고기일을 앞당긴 것인가”라고 외쳤다. 이날 법원에서 만난 한 소송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래도 되는 거냐”고 물었다. 그들은 법정에서만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법원 밖으로 나서는 그들 위로 때 이른 여름날의 열기가 뜨겁게 쏟아지고 있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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