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다음주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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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무실 근처에서 집회를 하면 안 되나?”
수십년 이어온 청와대 체제에서 관저와 집무실이 늘 붙어 있던 탓에 이런 질문은 성립조차 될 수 없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며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하면서 새롭게 ‘발굴된 질문’이다. 취임 한달도 지나지 않아 법원에선 용산 청사 100m 이내 집회를 허용하는 판단이 6건 나왔다. 그러나 경찰은 집회 금지 유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에서 집회 금지 구역 중 하나로 ‘대통령 관저’를 규정한 것을 두고, 집무실도 관저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면서 이 구역 집회를 일괄 금지하고 있다.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무실 주변 집회가 사실상 ‘허가제’가 된 것이다.
각기 다른 6개 재판부의 판단이 나왔지만 ‘집무실과 관저는 다르다’는 결정은 일관적이다. 사전적 의미의 ‘문언적 해석’(관저는 숙소에 해당)은 기본이고, 판례가 쌓일수록 결정문은 길어지는 추세다. 지난달 11일에는 법원이 “(과거) 대통령 집무실이 있던 청와대 외곽 담장으로부터 100m 이내 장소에서의 옥외 집회나 시위는 제한됐다”며 “이는 대통령 관저 인근의 집회나 시위를 제한함에 따른 반사적·부수적 효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간 집무실과 관저는 다른데도, 한 담장 안에 있어서 집무실까지 함께 보호받는 ‘부수적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6건의 결정문을 읽다 보니, 청와대 이전의 진짜 ‘부수적 효과’는 입법부·사법부와 다른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대통령의 역할이 무엇인지 법원이 새삼 일깨워준 데 있었다. 다음은 지난달 20일 한 단체의 집회 금지통고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강동혁)의 결정문에 나온 대목이다. 재판부는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닌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는 국회의원이나(헌법 제46조),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여야 하는 법관(헌법 제103조)과는 달리 국가의 원수로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와 고충을 직접 듣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하는 국가 정책을 수립하여야 하는 대통령 직책의 특수성”이라고 밝혔다.
6일 뒤 또 다른 재판부는 같은 맥락에서 국회의사당과 각급 법원 인근은 집시법상 집회가 상대적으로 제한되지만, 행정부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정부종합청사는 관련 규율이 없다는 점을 짚기도 했다. “대통령의 집무실이나 정부종합청사와 같이 온전히 ‘공적 영역’에 속한 장소로서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 원수인 대통령과 내각의 각료들이 머물면서 정부의 공적인 집무를 수행하는 장소”라며 관저 등 사적 장소와도 구별되며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곳’으로 본 것이다.
마침 3일 대통령실새이름위원회는 대통령 집무실의 새 이름 후보작 5개를 발표했다. 후보작 가운데 ‘국민청사’와 ‘민음청사’에 대한 설명이 눈에 띈다. 국민청사의 ‘청사’는 관청이라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국민의 소리를 듣고(聽), 국민을 생각한다(思)는 의미를 담았다 하고, 민음청사는 그 자체로 ‘국민의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용산 청사 앞의 집회 ‘허가제’ 앞에선 무색하게도 찬란한 이름들이다.
박수지 이슈팀 기자 suji@hani.co.kr
지난달 14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들머리에서 행진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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