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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포토샵으로 특기생 만들고, SAT 대리시험…상상 넘는 입시비리

등록 2022-06-16 08:00수정 2022-06-19 16:17

엘리트로 가는 그들만의 리그 ③ 글로벌 엘리트, 욕망의 기원

미 최악의 입시스캔들 ‘바시티 블루스’

미 입시브로커 윌리엄 릭 싱어, 학부모 30여명한테 320억 챙겨
대학 스포츠 감독 등 매수해 상류층 자녀를 체육 특기생 꾸며
미국의 학벌 욕망 실체 드러낸 ‘바시티 블루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로 유명한 배우 펄리시티 허프먼(앞줄 왼쪽 둘째)이 2019년 9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대학 입학 스캔들과 관련해, 남편인 배우 윌리엄 메 이시와 함께 연방 법원에 도착하고 있다. 허프먼은 3만달러 벌금과 14일의 구금, 25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보스턴/EPA 연합뉴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로 유명한 배우 펄리시티 허프먼(앞줄 왼쪽 둘째)이 2019년 9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대학 입학 스캔들과 관련해, 남편인 배우 윌리엄 메 이시와 함께 연방 법원에 도착하고 있다. 허프먼은 3만달러 벌금과 14일의 구금, 25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보스턴/EPA 연합뉴스

‘논문, 출판, 봉사단체 설립, 앱 제작 기획, 미술 전시회….’ 한동훈 법무부 장관 딸의 ‘스펙’은 눈부시게 빛나지만 학벌을 세습하려는 한국 엘리트의 욕망과 글로벌 스펙 착취 산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 복마전의 민낯과 그 밑바닥에 꿈틀거리는 불안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딸의 허위 스펙 의혹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 명문대 입시의 어두운 면을 들춰냈다. 늘 그렇듯 보여지는 것은 일부일 뿐이다. 심각한 문제는 보통 더 깊은 곳에 숨어있다. 미국에서는 은밀히 감춰져 있던 입시부정의 몸통이 드러났다. 2019년 3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2011~2018년 사이 30여명의 학부모에게 자녀의 명문대 입학 대가 등으로 2500만달러(약 321억원)를 받은 혐의로 입시브로커 윌리엄 릭 싱어를 기소했다고 밝혔다. 함께 기소된 학부모들은 유명 배우, 의사, 금융사 최고경영자, 부동산회사 대표, 로펌 대표 등 화려했다.
30여명의 학부모에게 자녀의 명문대 입학 대가 등으로 2500만달러(32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입시컨설턴트 윌리엄 릭 싱어가 2019년 3월12일 유죄를 인정한 뒤 미국 보스턴 연방법원을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30여명의 학부모에게 자녀의 명문대 입학 대가 등으로 2500만달러(32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입시컨설턴트 윌리엄 릭 싱어가 2019년 3월12일 유죄를 인정한 뒤 미국 보스턴 연방법원을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릭 싱어가 이들의 자녀를 명문대에 입학시키는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남캘리포니아대(USC) 수구 코치 또는 조지타운대 남녀 테니스 감독 등 명문대 스포츠팀 관계자들을 매수했다. 그리고 돈을 낸 집의 아이들을 체육 특기생으로 위장해 입학시켰다. 미국 연방수사국이 이 사건 수사의 작전명을 ‘바시티 블루스’로 붙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바시티는 미국 대학 스포츠 대표팀을 뜻한다.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릭 싱어의 통화 감청 내용을 보면, 입시 비리를 저지르는 과정이 상세하게 나온다.

2018년 8월 릭 싱어는 사모펀드 회사의 고위 임원이었던 윌리엄 맥글래션과의 통화에서 “프로필 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아들이 얼굴이 드러난 채로 스포츠 경기를 하는 사진이 필요하다. 내가 포토샵으로 (미식축구) 키커로 만들 것이기 때문에 (사진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맥글래션은 “사진을 살펴보겠다. 너무 웃긴다.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은 믿을 수 없다”고 답했다. 릭 싱어는 “작년에 수구 하는 남자애가 있었는데 아빠가 보낸 사진을 보니 물 밖으로 (아이 상체가) 너무 나왔더라. (수구할 때) 누구도 그렇게 높게 서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무슨 일인 거냐’고 물었더니 아빠가 ‘아들이 (수영장 바닥에) 서 있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안 돼, 안 돼’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릭 싱어가 수구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시킨 학생은 미국 폐수처리업체 대표인 데빈 슬론의 아들이다. 수구는 보통 가슴까지 물에 잠겨서 하는 운동인데, 슬론의 아들이 물 밖으로 상체를 너무 드러낸 사진을 찍어 보냈던 것이다. 이 문제는 포토샵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슬론의 아들은 2018년 3월 남캘리포니아대 입학을 허락받았다. 그 대가로 릭 싱어는 25만달러를 받았다.

릭 싱어는 미국 대학 입시에서 정량평가로 활용되는 에스에이티(SAT·수학능력시험)와 에이시티(ACT·미국대학시험) 대리시험을 주선하기도 했다. 학부모들에게 에스에이티 1400점(만점 1600점) 이상, 에이시티 30점(36점 만점) 이상을 보장했다. 대가는 1만5천~7만5천달러(1900만~9600만원) 사이였다.

대리시험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가 악용됐다. 에스에이티나 에이시티의 경우 학습장애가 있다는 의사의 진단서가 있으면 시험 시간을 2배 연장하고 홀로 시험을 볼 수 있다. 릭 싱어는 2018년 6월 국제적인 로펌 대표인 고든 캐플런과의 통화에서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다. “(우선) 당신의 딸은 학습장애 검사를 통해 100% 연장 시간을 인정받아야 한다. 내 영향력이 미치는 2개의 학교 시험장 중 한곳에서 시험을 보면 된다. 에이시티라면 30점 이상, 에스에이티는 1400점대 점수를 보장해줄 수 있다. 지구상에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신의 딸은 그런 일(대리시험)이 일어났는지도 모를 것이다.” “시간 연장을 허락받으면 (딸과 함께) 엘에이(LA)로 날아가라. 시험실에 (내가 아는) 감독관을 둘 것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시험을 치지 않는다. (딸이 시험을 끝내고 나가면) 내 감독관이 당신 딸의 답안지를 작성할 것이다.” 캐플런의 딸은 2018년 12월8일 미국 웨스트할리우드에 위치한 시험장에서 홀로 시험을 봤다. 이 시험장의 감독관은 이고르 드보르스키였다. 대리시험은 하버드대학 출신의 마크 라이델 몫이었다. 릭 싱어는 두 사람에게 매번 시험 때마다 1만달러(약 1300만원)씩을 줬다. 릭 싱어가 캐플런에게 받은 돈은 7만5천달러(약 9500만원)였다.
엘리트, 학위. 게티이미지뱅크
엘리트, 학위. 게티이미지뱅크

이들은 세상이 불공정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았다. 릭 싱어는 캐플런에게 에이시티 등 점수 조작이 가능하다고 설명하면서 “부유한 가정은 아이가 (학습장애) 검사를 받아서 시험 시간을 연장하면 시험을 더 잘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대부분 별문제가 없지만 시간을 더 얻을 수 있었다. 경기장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했다. 먼 나라 일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에스에이티 문제 유출은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학교 과제나 논문 작성을 대신 해준다는 입시 컨설팅 학원도 여럿이다. 다만 부정의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있는지는 여전히 가리워져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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