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5일 밤 구속영장이 기각돼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나와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해석하는 검찰 안팎 온도차가 분명하다. 검찰은 법원 역시 혐의를 어느 정도 인정한 것이라며 기각 의미를 애써 축소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법정에서 치열한 유무죄 다툼이 불가피하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윗선 수사에 속도를 붙이려던 검찰 계획 역시 보완이 필요해졌다.
서울동부지법은 15일 밤 백 전 장관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범죄 혐의에 대한 대체적인 소명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나 일부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상당한 양의 증거가 확보되는 등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 추가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구속된다면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에도 영향이 크다”고 밝혔다. 증거인멸, 도주 우려 등 구속 필요성 여부만 짧게 언급하지 않고 이례적으로 5개 항목 330자에 혐의 등에 대한 판단도 함께 담았다.
검찰은 법원이 밝힌 영장 기각 사유 가운데 “범죄 혐의에 대한 대체적 소명”과 “상당한 양의 객관적 증거 확보”에 초점을 맞춘다. 혐의를 어느 정도 인정했기 때문에 ‘수사 미진’으로 받아들여지는 통상적 영장 기각과는 달리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다”는 표현 역시 향후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기대할 수 있는 근거로 본다. 서울의 한 검사는 16일 “법원이 사실상 혐의를 인정한 셈이다. 다만 방어권 보장 측면에서 구속까지는 필요하지 않다고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법원 쪽 시각은 조금 다르다. 기각 사유를 비교적 길게 썼지만 핵심은 통상적인 기각 사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추가 수사에 대한 방어권 행사”를 언급한 것에 주목한다. 백 전 장관이 기소되더라도 재판에서 불리한 위치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혐의 소명” 역시 ‘유죄 증명’과는 비교하기 힘든 낮은 단계의 심증이어서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울지역 한 부장판사는 “ 법적으로 소명과 증명은 큰 차이가 있다. 윗선 수사 등에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검찰은 당연히 상당한 분량의 증거를 제출했을 것이다. 영장판사로서는 ‘이를 토대로 본 재판에서 한번 다퉈보라’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2019년 동부지법은 이 사건과 비슷한 구조인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혐의를 부정하는 듯한 사유를 자세히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1월 김 전 장관의 유죄를 확정했다.
한편 법원이 백 전 장관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을 주요 영장 기각 사유로 들면서,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하더라도 기각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전 정권을 향한 검찰 수사는 계속되겠지만 지금처럼 속도전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한 검찰 간부는 “수사팀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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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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