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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지역민 가려운 곳 긁어준 ‘풋내기’ 변호사, 경찰 뛰어든 사연

등록 2022-06-22 14:37수정 2022-06-22 14:59

나는 경찰이다③ㅣ임성빈 경감
강원도 화천군내 유일한 변호사로 군청서 일해
지역내 법률상담 전담…화천경찰서장이 입직 권유
주민·경찰·공무원 상대 범죄예방·법률 교육 ‘열정’
지난달 24일 임성빈(40) 경기북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대 5팀장이 사무실에서 수사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박수지 기자
지난달 24일 임성빈(40) 경기북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대 5팀장이 사무실에서 수사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박수지 기자

지난 2016년 변호사 경력채용으로 경찰에 입직한 임성빈(40) 경기북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대 5팀장(경감)은 지금껏 전국을 돌며 지역주민·경찰·공무원들을 상대로 강연을 90차례나 했다. 강연을 들은 사람만 2000여명이다. 본업인 수사로 바빠도 한 달에 1~2회 이상은 강연에 나선 ‘수사관 선생님’이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의정부 경기북부경찰청 사무실에서 만난 임 팀장은 “강연이 끝난 뒤 종종 어르신들로부터 ‘고맙다’며 ‘팬레터’를 받는다”고 웃었다.

그는 원래 ‘무변촌’(변호사가 한명도 없는 지방자치단체) 변호사였다. 변호사 2년차였던 2015년, 강원 화천군청 법무팀장으로 관내 유일한 변호사로 지역 주민과 공공기관 등 법률 자문과 상담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갔다. 당시만 해도 열혈 풋내기 변호사였던 그는 자신을 눈여겨본 당시 화천경찰서장의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렸다. “임변(변호사) 같은 사람이 경찰 조직에 필요합니다.”

이직을 고민한 끝에 경찰이 됐다. “산더미 같은 기록에만 묻혀 사는 변호사가 아니라 실체적 진실을 찾는 수사관이고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듬해 경기 남양주경찰서 경제팀 수사관을 시작으로 경찰 조직에 첫발을 들이게 됐다.

변호사로서 지역 주민이나 공공기관과 수시로 소통해온 경험을 활용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그는 본업과 별도로 ‘선생님’이 됐다. 지역 주민들 대상으로는 ‘메신저 피싱’ 등 생활 속 주의해야 할 사기 수법 등에 대한 예방 강연을 주로 했고, 인터넷으로 범죄피해 및 법률자문을 구할 수 있는 기관을 찾는 법을 안내하기도 했다. 시·구청 등 관계기관 공무원들에겐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공무원들이 업무 과정에서 무턱대고 형사고발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법률을 따져보면 정작 수사 대상이 아닌 경우도 많으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알렸다.

임 팀장에게 부담이 컸던 강연은 같은 동료인 경찰관들을 상대로 할 때다. 그보다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 수사관’들도 청중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전문성을 무기로 자신감을 가졌다. 임 팀장은 “베테랑들을 상대로 10년도 안 된 제가 수사실무에 대해 강의했다고 하면 조금 건방지게 들릴 수 있지만, 관련 법률의 해석과 판례 입장, 그에 따른 수사방법 등은 제 전문영역이라 자신 있게 강의했다”고 말했다.

임 팀장은 특히 수사관들이 실제 수사에서 법리를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대목들을 짚어 강의한다. ‘고의’ 입증 문제가 대표적이다. 고의는 직접 증거로 드러나지 않지만, 수사관이 입증해야 할 사안이다. 실수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과 의도적으로 살인을 하는 것의 형량 차이는 최소 수년이다. 피의자들은 재판에서 자신의 범행에 대해 ‘고의가 아니다’라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수사관은 피해자가 억울하지 않도록 범인이 사전에 흉기를 구입하고 행동 계획을 타인과 공유했다는 등의 간접사실로 고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한다. 이에 따라 살인죄·상해치사·과실치사 등 혐의 적용이 달라진다. 임 팀장은 “이렇게 고의를 입증하려면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들을 수집하고 그 증거가 논리·경험칙에 비춰 고의를 입증하는 증거로 사용된다”면서 “현장에서 적용되는 관련 법리와 입증 방법 등을 주로 강의한다”고 설명했다.

강연으로 만난 경찰 동료와 인연이 이후로 이어지기도 한다. 2020년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신임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임 팀장에게 “다음에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했던 한 순경은 올해 실제로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됐다. 임 팀장과 함께 근무 중인 유병선 경장은 “애매한 법리관계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때 팀장님께 의견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여러 강연에서 수차례 강조한 ‘수사관의 사실관계 입증과 정확한 법리 적용’은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수사에서 더욱 중요해졌다. 과거처럼 경찰이 사건 혐의 여부와 관계없이 수사를 마친 사건을 검찰에 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사건은 경찰 단계에서 1차적으로 사건을 종결하기 때문이다. 임 팀장은 “경찰이 기존 수사 보조자 수준일 땐 수사에 대한 의식과 책임도 그 수준을 넘기 어려웠지만, 수사권 조정 후 ‘내 사건’이라 생각하고 소신껏 수사한 뒤 송치·불송치 결정하는 수사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쌓이는 사건에 수사관들이 치이지 않도록 인력과 예산이 현실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9년께 임성빈 경감이 메신저 피싱 예방 등에 대해 외부 기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임 경감 제공
2019년께 임성빈 경감이 메신저 피싱 예방 등에 대해 외부 기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임 경감 제공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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