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출신 믹스견으로 이뤄진 반려견 아이돌 ‘제주탠져린’즈 홍보 포스터. 귤엔터 제공
최근 데뷔하기도 전에 에스엔에스(SNS)를 뜨겁게 달군 ‘아이돌그룹’이 있다. 바로 귤엔터 소속 ‘제주탠져린즈’다. 멤버는 금귤, 레드향, 영귤, 천혜향, 풋귤, 한라봉, 황금향으로 모두 제주 출신 ‘시고르자브종(시골잡종을 변형한 말)’ 강아지다.
제주탠져린즈의 멤버는 모두 유기견들이다. 유기동물 입양 캠페인을 위해 결성된 아이돌이다. 기존의 유기동물 입양 캠페인이 주로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이었다면, 제주탠져린즈는 밝고 재밌는 방식으로 유기동물 입양을 독려하는 것이다.
‘반려동물 아이돌 세계관’의 문을 연 제주탠져린즈의 시작은 ‘길거리 캐스팅’이었다. 지난해 11월 구낙현(35)씨는 제주도 용연계곡 근처에서 반려견 금배와 함께 산책하던 중 목줄도 없이 돌아다니는 어린 강아지를 발견했다. 강아지를 쫓아가자 쓰레기 사이에서 놀고 있는 7마리의 강아지가 보였다.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개와 들개 사이에서 태어난 갓 2개월 된 아이들이었다. 보호소로 간 뒤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 되는 것이 이들의 운명이다. 구씨는 강아지들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던 주인과 연락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기로 하고, 입양할 이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구씨는 강아지들을 데려온 첫날 에스엔에스에 ‘7마리 새끼들의 입양처와 임시보호처를 구한다’는 평범한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안타까워하는 몇몇 댓글이 달렸지만, 지난해에만 유실·유기동물이 11만6894건(동물자유연대 분석)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제주도 믹스견은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홍보 방식을 고민하던 구씨의 머릿속에 아이돌그룹이 떠올랐다. 그날 저녁 강아지들에게 귤 모양 의상을 입혀 사진을 찍고, 독학으로 익힌 포토샵 디자인 실력으로 홍보 포스터를 만들었다.
‘전격 반려견 데뷔 준비 중! 제주탠져린즈. 누나들의 심장을 저격하러 왔다’는 문구가 적힌 ‘제주탠져린즈’의 포스터는 공개되자마자 삽시간에 에스엔에스에 퍼져나갔다. 아이돌그룹 문화에 익숙한 20∼30대 여성들은 구 대표를 ‘귤엔터테인먼트 대표’라고 부르고 실제 아이돌 팬처럼 ‘제주탠져린즈 세계관’에 몰입했다. ‘아이돌 데뷔(입양)를 기다리는 연습생’이라는 세계관이 완성됐다.
지난 6개월 동안 제주탠져린즈 멤버들은 산책과 개인기 연습 등의 트레이닝을 거치고, 서울에서 두 차례 팬미팅을 열어 데뷔를 시켜줄 매니저(입양자)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결국 지난해 12월 금귤이를 시작으로 지난 5월 영귤이까지 6개월에 거쳐 일곱 멤버들이 모두 데뷔에 성공했다. 그 사이 탠져린즈를 낳은 개가 또다시 7마리의 강아지를 낳아, ‘제주만다린즈’라는 두 번째 아이돌 그룹이 결성돼 데뷔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의 모견과 쓰레기 더미에 방치돼있던 성견들로 구성된 ‘노지감귤즈’도 가족을 찾고 있다.
구씨의 실행력과 기획력으로 제주탠져린즈 멤버들은 가족을 찾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쉽게 키워지고 버려지는 반려견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유기동물 문제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시 유기동물 보호소에만 한 달에 500마리에 가까운 유기동물이 입소한다고 해요. 그중 목줄을 하고 있어 보호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도 있는데, 시골의 경우 특히 키우던 동물을 잃어버려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모르거나 찾을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구씨가 말했다.
귤엔터테인먼트의 두번째 그룹 ‘제주 만다린즈’와 성견 멤버로 구성된 ‘노지감귤즈’. 귤엔터 제공
유기동물에 대한 입양 패러다임을 바꾸고자 했던 구씨의 시도는 동물보호단체에게도 영감을 줬다. 동물자유연대는 최근 ‘세계 최초 유기묘 아이돌 그룹’을 표방하는 ‘11키티즈’를 결성했다. 6마리의 메인멤버와 5마리의 후보멤버로 구성된 이들은 동물자유연대의 보호소에서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넘게 머무른 고양이들이다. 동물자유연대는 11번가와의 협업을 통해 이들 유기묘들의 입양을 홍보하고 있다. 지난 20일에는 11키티즈 멤버들과 애묘인으로 알려진 프로듀서 코드쿤스트와 가수 미노이가 참여한 디지털 싱글 ‘테이크 미(Take Me)’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뮤직비디오 조회 수에 따라 11번가가 기부금을 적립하고, 이 돈은 동물자유연대의 고양이 센터 시설물 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다.
유기묘 아이돌 그룹 ‘11키티즈’의 대표멤버들.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자유연대는 최근 보호소 내 유기묘 입양률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입양을 원하는 이들도 나이가 어린 고양이를 선호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나이가 있는 고양이들은 보호소에서 늙어가고 있다. 11키티즈 멤버인 ‘달타냥’도 데뷔를 앞두고 있었으나 지난 12일 가족을 찾지 못하고 사망했다. 조은희 동물자유연대 결연홍보팀 팀장은 23일 <한겨레>에 “입양을 홍보할 때 유기묘들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어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러한 컨셉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제주탠져린즈처럼 11키티즈의 인기도 심상치 않다. 아이돌 그룹을 결성하자마자 두 멤버가 입양이 확정됐다. 입양 문의도 이전보다 더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조 팀장은 “구조된 동물들이 성격이 안 좋을 것이라는 편견, 노묘는 함께할 시간이 짧을 것이라는 편견이 이번 기회에 깨졌으면 좋겠다. 유기묘도 누구보다 사람을 잘 따를 수 있고, 노묘 역시 장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귤엔터 대표 구씨도 “동물계 엔터 업계에 먼저 뛰어든 입장에서 11키티즈의 결성을 축하하고 다 함께 데뷔해 성공 신화를 함께 써내려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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