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강아지’ 페퍼는 경기 하남시의 유기동물보호소에서 태어났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던 페퍼는 2019년 지금의 보호자를 만나 미국에서 살게 됐다. 박세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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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뉴욕에 사는 진돗개 ‘페퍼’라고 해요. 이제 막 2살이 된 저에게는 사실 페퍼 말고도 이름이 두 개나 더 있어요. 2019년 경기도 하남시 유기동물보호소에서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저를 ‘까미’라고 불렀어요. 아마 제 털색이 짙어서 그랬나봐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곧 임시보호 가정이란 데로 보내졌어요. 입양을 가기 전에 예절도 배우고, 사람과도 잘 지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구요.
그곳에서는 저를 ‘꼬몽’이라고 불렀어요. 꼬몽이 시절엔 모든 게 다 새로웠어요. 가슴줄(하네스) 차고 산책도 나가고, 따뜻한 방바닥에서 꿀잠도 자고, ‘앉아, 기다려’ 같은 기본 예절도 배웠어요. 평생 이렇게 사나 싶던 견생 7개월차, 갑자기 비행기를 타게 됐어요. 평생 가족을 만나러 가야 한대요. 공항에 가니 새 집까지 절 데려다 주실 분이 나타났어요. 이동 봉사자래요. 제가 긴장한 걸 알았는지 봉사자 언니가 공항 주변을 산책시켜 줬어요.
그렇게 비행기에 오르고 얼마나 지났을까요. 새로운 냄새가 가득한 곳에서 잠이 깼어요. 케이지 밖으로 낯선 사람이 와서 저를 반겨줬어요. 두렵지만 어쩐지 저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은근슬쩍 안심이 되더라구요. 그때부터 제 이름은 페퍼가 됐어요. 2019년 10월25일, 지금의 가족을 만난 날이죠! 뉴욕에 사는 약 60만 마리의 개들처럼 저도 ‘뉴욕 강아지’된 날이기도 해요. 아, 맞다. 사실은 제 이름이 하나 더 있었네요. 한국에 있을 때 엄마와 저, 저희 자매는 모두 유기견이라고 불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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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최소 1500마리…통계조차 없는 국외입양
태어나자 마자 안락사 당할 뻔한
강아지 페퍼의 이야기다. 지자체 보호소에서 구조된 페퍼는 지난 2019년 다행히 현재 보호자인 박세미씨 부부 눈에 띄어 미국으로 입양을 가게 됐다. 페퍼는 지금 박씨와 함께 뉴욕 어퍼웨스트사이드 지역에서 살고 있다. 죽을 고비를 너머 먼 미국까지 가족을 찾아 떠나다니, 상당히 극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유기견들의 입양 스토리는 꽤 흔한 편이다.
보호소에는 까미, 임보처에서는 꾸몽이라 불리던 페퍼는 여러 구조 활동가,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가족을 만나게 됐다. 박세미씨 제공
한해 약 2만 마리의 강아지가 해외로 ‘수출’된다.(농림축산검역본부 수출입동물 검역 현황) 최근 5년 간 국내서 수출된 개가 가장 많이 도착한 곳은 미국, 캐나다였다. 미국은 2016년부터 매해 1만~2만 마리, 캐나다는 1천~2천 마리의 개를 한국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물론 이 수치에는 페퍼와 같은 유기견 국외 입양뿐 아니라 국내 번식장에서 태어난 품종견 수출도 포함된다. 수출 통계는 이를 구분하지 않아, 국내 유기견들이 얼마나 해외로 입양되는지 정확한 통계가 없다.
국내 주요 유기견 국외입양 단체의 통계를 합산해 대략적으로 추산할 뿐이다. 19일 코리안 케이나인 레스큐(Korean K9 Rescue·이하 KK9 레스큐), 웰컴독 코리아(Welcomedog Korea), 코리안독스(KDS) 등 세 단체의 입양통계를 살핀 결과, 이들 단체를 통해서만 한해 최소 1500여 마리 이상의 유기견들이 북미 지역으로 가고 있었다. 국외입양을 추진하는 다른 단체, 개인 구조활동가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 워싱턴에서 살고 있는 진돗개 ‘두부’의 보호소 시절 모습. 티나 리씨 제공
이들은 주로 카라, 동물자유연대, 다솜 등의 국내 동물단체가 구조한 학대·방치견들의 해외 입양을 주선한다. 구조견 대부분이 개농장, 개 도살장 그리고 학대자로부터 구조된 개들이다. 한해 1천여 마리를 입양 보내는 KK9 레스큐의 경우, 이런 국외 입양견의 99%는 믹스견들이고 이 가운데 50% 이상이 진돗개(진도믹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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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도그 후보’ 10년 만에 캐나다 입양
우리나라 대표 토종개로 천연기념물로 사랑받는 진돗개들은 왜 나라 밖까지 입양을 가야 했을까. 국내 동물단체의 진돗개 입양 상황을 살펴보면 의문은 간단히 풀린다. 최근 5년간 카라의 진돗개 입양 현황을 보면, 매해 70~80마리의 입양견 중 진도는 7~15마리 수준으로 입양율은 17% 수준이다. 카라 더봄센터의 입소견 중 진돗개 비율이 50%에 달하는 것을 생각하면 꽤나 낮은 수치다.
망치로 머리를 맞아 두개골이 함몰된 채 구조됐던 복남이. 2017년 퍼스트도그 후보에 오르기도 했었지만 그 뒤 4년째 입양이 되지 않아 지난달 캐나다로 가족을 찾아 떠났다.동물자유연대 제공
카라 전진경 대표는 “성견 진돗개의 국내 입양은 희망자가 거의 없다. 매해 15% 이상의 진돗개 입양율이 나올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어린 강아지들이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처음 국외입양을 시작한 카라의 통계를 보면, 매해 10여 마리 수준의 진돗개 입양이 43마리까지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동물자유연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국내 입양견 189마리 중 몸무게 10㎏ 이상의 성견 진돗개는 단 한 마리도 입양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몸집이 작은 10㎏ 이하의 개들이 10마리 입양됐을 뿐이다. 반면 국외입양 된 진돗개들은 모두 34마리(장애견 4마리 포함)였다.
한때 퍼스트독 후보였던 ‘복남이’의 사연은 국내 성견 진돗개 입양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1년 한 노인정 뒤뜰에 묶여 있던 복남이는 ‘복날 안줏감’이 되기 직전 동물자유연대에 의해 구조됐다. 망치에 맞아 죽을 뻔한 복남이지만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따랐다고 한다. 그런 복남이에게 2017년 ‘견생역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2011년 구조 당시 복남이 모습. 복남이는 노인정 뒤뜰에 묶인 채 ‘복날 안줏감’이 될 운명이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19대 대통령 선거 전 동물단체들이 대선 후보들에게 유기견을 퍼스트도그 후보로 제안한
한겨레의 ‘퍼스트도그 캠페인’에 후보견 중 한 마리로 나오게 된 것.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재인 대통령이 현재 반려견인 ‘토리’를 입양하며 복남이는 보호소에 남게 됐다. 이후 4년 동안 복남이를 찾는 가족은 없었다. 9살이 된 복남이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단체는 국외입양을 추진했고, 지난 3월 복남이는 캐나다로 평생 가족을 찾아 떠났다. 또 다른 퍼스트도그 후보였던 ‘로라’는 아직 카라 더봄센터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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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진도, 너무 멋진 개래요”
이렇게 나라 밖 진돗개들 대부분은 학대·유기에서 살아남은 구조견들이다. 사람에 의해 학대되고 버림 받았지만, 중대형견으로 자라난 개들은 국내에서는 철저히 외면 받았다. 새 삶을 찾아 떠난 개들은 먼 나라에서 과연 잘 지내고 있을까.
보호소에서 구조된 진돗개 두부, 연두는 티나 리씨 가족을 만나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티나 리씨 제공
보호소에서 구조된 진돗개 두부, 연두는 티나 리씨 가족을 만나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티나 리씨 제공
“미국에 사는 진돗개들의 일상은 그냥 평범해요.” 뉴욕에서 진돗개를 반려 중인 박세미씨는 “페퍼는 다른 개들이 걷는 곳을 걷고, 다른 개들이 먹는 것을 먹고, 다른 개들이 누리는 것을 누린다”고 일상을 요약했다. 페퍼가 산책을 나가면 가장 흔한 반응은 무관심이지만, 종종 가던 길을 멈추고 “그 개는 무슨 종이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뉴욕에 시바견이 흔하다 보니 종종 페퍼를 ‘시바’냐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늘 한국에서 온 진도믹스견(코리안 진도)라고 답해요.” 이때 돌아오는 대답은 “귀엽다” “집중력이 좋다” “정말 독특하고 멋진 개”라는 반응이다.
페퍼뿐이 아니다.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는
진돗개 연두와 두부도 종종 이런 찬사를 받는다. 두부와 연두 보호자 티나 리(Tina Lee)씨는 산책을 나가면 사람들이 무슨 견종이냐고 묻는 일이 잦다고 했다. “심지어 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이 멈추고 물어보는 경우도 많아요. 이렇게 예쁘고 멋지게 생긴 아이들은 처음 본다면서요.”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는 페퍼와 보호자 박세미씨. 박세미씨 제공
국내서는 아무도 원하는 사람이 없어 힘든 과정을 거쳐 다른 나라까지 가는 진돗개들. 이런 진돗개들이 국외에서는 ‘멋진 개’로 찬사를 받고 관심을 모은다는 사실은 슬프면서도 아이러니하다. 박세미씨는 페퍼가 미국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이곳은 일상적인 진돗개 차별과 대형견 혐오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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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편견? 더 아껴주려 노력한다
몸무게 15㎏인 페퍼는 뉴욕에서 가장 인구밀집도가 높은 맨해튼에 살지만, 아파트 이웃 중 누구도 ‘왜 개를 안에서 키우냐’고 타박하는 사람이 없다. 페퍼가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걷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에게 짖더라도 ‘진돗개라서 사납다’고 하는 이도 없다. 박씨와 페퍼는 매일 2시간식 산책을 하지만 낯선 사람이 ‘그 개에게 입마개를 씌워라’거나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오지 말라’는 참견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연두, 두부 보호자 티나 리씨는 2019년부터 지역 진돗개 가족들과 모임을 조직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고 있다. 티나 리씨 제공
몸무게 20㎏가 넘는 연두와 두부네도 마찬가지다. 티나 리씨는 “미국은 핏불테리어가 사납다는 견종차별을 받는다. 그래도 핏불에게 입마개를 하라고 참견 하거나 여자가 그 큰 개를 핸들할 수 있느냐는 무시를 당하는 일은 없다”고 전했다.
유기견에 대한 편견은 어떨까. KK9 레스큐 김현유 대표는 “오히려 미국에서는 레스큐독(구조견)을 더 존중해주는 문화가 있다. 역경을 딛고 일어난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두부와 연두는 티나 리씨가 2017년과 2018년 각각 국내 보호소에서 입양한 진돗개들이다.
연두는 유기견 시절 트라우마 때문인지 입양 초기 차에 타는 일이나, 손에 물건을 든 사람을 무서워했다. 자신감 훈련을 통해 지금은 나아졌지만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티나 리씨는 연두와 비슷한 일을 겪고 있을 진돗개 가족들을 위해 2019년부터 지역 진돗개 모임을 조직해 한 달에 한 번씩 만남을 갖고 있다. 워싱턴, 메릴랜드, 버지니아 등 인근 지역 가족 150여 명이 모인
Jindos of DMV(Jindos-Korean Village Dogs of DC, Maryland, & Virginia)는 입양 초기 가족들이 겪는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입양을 홍보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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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떠날 필요 없도록 사랑해주세요”
미국, 캐나다라고 해서 개들의 천국은 아니다. 코로나19로
‘팬데믹 퍼피’ 열풍이 불자 반려견을 훔치는 범죄까지 일어났다. 개가 모자라는 상황이 벌어지니, 까다로운 입양 절차를 통과하지 못한 해외 입양자들이 SNS 등을 통해 국내 구조자들에게 접근해 개들을 무책임하게 데려가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준비가 덜 된 입양자가 사회화가 덜 된 진돗개를 덜컥 데려가면 파양이나 유기, 분실로 이어지게 된다.
김현유 대표는 “미국, 캐나다라고 개들에게 천국이 아니다. 신중하게 구조하고 입양을 보내야 파양, 유기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티나 리씨 제공
“이 일은 1마리 구조하고 돌아서면 100마리가 생겨 있어요. 지치는 일이죠.” 김현유 KK9 레스큐 대표는 “진돗개나 대형견을 향한 차별 등 인식 개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마당개 중성화다. 진돗개들을 위해서는 100마리의 구조보다 한 마리의 중성화가 더 확실한 복지일 수 있다. 부디, 한국에서도 진돗개들이 떠날 필요가 없도록 아끼고 사랑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