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3437건. 지난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삭제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건수다. 피해자나 수사기관이 요청해 지운 것을 빼고 센터가 발견해 선제로 지운 것만 집계한 수치다. 하루 평균 91.6건이다. 아동·청소년이 성착취자들의 ‘덫’에 걸려드는 것은 그들이 조심스럽지 못해서가 아니다. 아이들의 심리를 교묘히 파고드는 범죄 수법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은 디지털 기기와 온라인 공간에 친숙하다. 특히, 디지털 성착취의 주요 경로인 스마트폰은 한국의 아동·청소년에게 또 하나의 신체 기관이나 다름없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청소년 미디어 이용 실태조사’를 보면, 10대 청소년의 98%가 스마트폰을 쓰고, 이 가운데 61.5%는 스마트폰을 하루에 3시간 이상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주리 십대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과거에는 주로 가정밖·학교밖 아동과 청소년들이 성착취자의 타깃이 되었다면, 이제는 아동·청소년 누구나 성착취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아이들을 성착취로 끌어들이는 경로와 범죄 수법을 한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카카오톡, 에스엔에스(SNS), 랜덤채팅앱, 온라인 게임, 중고거래 사이트…. 성착취자들은 청소년이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이면 어디든 덫을 놓는다. <한겨레>는 2021년 한 해 십대여성인권센터(센터)에 들어온 실제 상담 사례를 재구성해, 성착취자들이 어떤 경로와 수법으로 아동·청소년을 성착취로 끌어들이는지 들여다봤다.
“사진 지워줄게, 원본 보내볼래?” ‘도움’의 덫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자들은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때의 불안한 심리를 성착취자들은 놓치지 않는다. 도움을 주는 척 접근한다.
ㅁ은 에스엔에스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ㅁ의 프로필 사진과 다른 사람의 나체 사진을 합성한 사진을 보내면서 이 사진을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유포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ㅁ은 당황스러운 마음에 포털에 도움을 구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변호사라고 소개한 사람의 답이 달렸다. 도움을 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ㅁ은 그에게 연락했다. 상대는 도움을 받으려면 ㅁ의 개인정보와 피해 사진이 필요하다고 했고, 불안에 떨던 ㅁ은 그의 말을 따랐다. 개인정보와 피해 사진을 보내고 나니, 상대는 말했다. “한달 동안 노예가 되지 않으면 사진 유포할 거야.”
1차 피해를 개인적으로 해결해보려다 또 다른 피해가 시작됐다. ㅁ은 “노예가 뭐냐”고 물었고, 상대는 특정 신체 사진을 “내가 원할 때마다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ㅁ은 당장에라도 사진을 유포할 것처럼 말하는 상대가 무서워 요구대로 사진과 영상을 보냈다. 제발 유포하지 말아 달라고도 빌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요구하는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한달만 하면 된다’는 그의 말을 믿었지만 성착취는 이어졌다.
피해자를 타깃으로 삼는 성착취자들은 에스엔에스, 채팅앱, 고민 상담앱 등 온라인 공간 어디에든 있다. 디지털 장의사, 피해지원 상담가, 변호사 등 전문가 행세를 하며 피해 아동·청소년이 그들을 스스로 찾도록 한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또 다른 성착취자일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공인된 전문기관에 요청하라”고 당부한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자를 돕는 십대여성인권센터는 “혼자 해결하려다 피해가 심각해진 뒤에야 전문기관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성착취는 더 큰 피해로 확장될 요소가 무궁무진하다. 작은 피해라도 초반에 전문기관을 찾는 게 피해를 키우지 않는 방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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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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