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연세대학교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개최한 학내 집회에서 학생이 마이크를 잡고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제공.
2011년 3월 연세대를 비롯해 고려대·이화여대 청소·경비노동자 800여명이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3개 대학 학생 등 4만여명이 파업을 지지하고 나섰다. 요구는 분명했다. 학교가 노동조건 개선을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양질의 수업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양질의 강의 못지 않게 강의실과 화장실 곳곳을 매일 쓸고 닦고 안전을 지키는 양질의 청소·경비노동이 있어야 한다는 자각이 노학연대로 분출한 것이다.
11년 뒤에도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낮은 임금 인상과 샤워실 마련 등 기본적 요구들이다. 학생 등 2300여명이 이들을 지지하는 연대의 뜻을 밝힌 가운데, 연세대생 3명이 “소음으로 수업권이 침해됐다”며 노동자들을 상대로 형사고소한 데 이어 손해배상소송까지 낸 사실이 알려졌다. 학교당국 등 권력을 쥔 이들이 아닌 약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우리 사회 일부의 그릇된 ‘공정 감각’을 두고 학내 안팎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2011년 3월15일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의 청소·경비 노동자들과 이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대학 3곳의 학생들이 서울시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320원의 최저임금이 아닌 생활임금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연세대 사회과학대학 이아무개(23)씨 등 3명은 최근 김현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연세대 분회장과 박승길 부분회장을 상대로 수업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서부지법에 냈다. “노조의 교내 시위로 1~2개월간 학습권을 침해받았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638만6000여원을 지급하라는 요구다. 등록금, 정신과 진료비, ‘미래에 겪을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고려한 정신적 손해배상액(1인당 100만원) 등이 포함된 액수라고 한다. 연세대 청소노동자 평균 임금(월 190만원)의 3.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들은 지난달 노동자들이 미신고 집회를 열었다며 업무방해와 집시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노조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김현옥 분회장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음량을 낮춰 집회를 진행해 왔다. 15년째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농성을 해왔지만, 생전 처음 있는 일이라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소한 학생들도 있지만, 함께 연대 발언을 해주거나 응원한다며 음료수를 건네주는 학생들도 정말 많다”고 했다.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학교 곳곳에 붙인 학내 청소·경비 노동자 투쟁 지지 대자보.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학교를 다니는 우리 모두가 청소·경비노동자의 노동에 빚을 지고 있음을 기억하며 연세대학교 노동자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를 붙이고 지지서명을 받았다. 지난 30일까지 학생과 졸업생, 시민 2300여명이 서명에 참여했다고 한다. 공동대책위는 이를 대학 총무처에 전달했다. 공동대책위에서 활동하는 해슬(22·사회학과)씨는 “학생들이 아닌 학교에서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했다.
연세대 총무처 관계자는 “용역업체와 노조와의 임금 협상 문제다. 원청인 학교가 아예 책임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집회를 중앙도서관 앞에서 열다 보니 학교와 학생이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연세대에서는 오는 9월 학생들과 함께 사회문제와 공정의 관계를 논의하는 교양수업이 개설된다. 나윤경 교수(문화인류학)는 강의계획서에 “수업권 보장 의무는 학교에 있지 청소노동자에게 있지 않다. 불공정한 처우를 감내해온 노동자들 향해 소송을 제기하는 공정 감각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등을 논의해보자”고 밝혔다.
▶관련기사 :
청소노동자-대학생들 ‘아름다운 연대’ 번진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