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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내 60대에 소망하는 축제, 결혼식

등록 2022-07-09 11:51수정 2022-07-09 13:46

[한겨레S]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인생의 축제
위태로움의 시대 가당키나 한 일일까
최악의 순간에 축제는 가장 간절해져
겁먹고 두려운 그 마음들 접어두고
당신의 축제가 지켜지기를 소망한다

그림 박조건형
그림 박조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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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동생은 나와 다섯살 차이, 생모가 가족으로부터 ‘탈출’해야 했던 때 동생은 겨우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때까지 젖살이 양볼에 가득 담겨 동생은 걸어 다니는 빵 반죽 같았다. 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상실감을 수치나 양으로 해석하자면, 삼 남매 중 막내인 동생이 아마도 제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동생은 별 탈 없이 잘 자랐다. ‘별 탈 없이’라고 적고서, 순간 틀린 표현이란 걸 단박에 알았다. 탈이 없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나 내 오라비 모르게 동생은 어린 마음을 수백번 수천번 다잡아야 했는지 모른다. 버려진 빵 한 덩이처럼 어느 구석에 그 어린 몸을 수그리고서 혼자 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생일 선물, 그치지 않던 울음소리

글자 그대로 ‘전쟁’ 같은 사춘기 시절을 지나고 있었을 어느 날, 중학생이 된 동생은 나에게 정성껏 포장한 선물을 내밀었다. 아마도 내 생일 때였을 것이다. 누구도 제대로 용돈을 준 적 없었으니, 동생은 그야말로 동전 한두개씩을 열심히 모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호통치며 선물을 받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 선물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격도 그럴 여유도 없다고 믿었다. 선물을 주고받을 때가 따로 정해졌나? 언제가 됐든 그 마음을 되돌려주겠다는 다짐이면 충분한데, 자학과 자책으로 똘똘 뭉친 형편없던 나는 악을 써가며 동생의 선물을 거부했다. 펜과 노트 몇 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억지로 동생을 이끌고 문방구까지 돌아가 끝내 환불받고는 그 돈을 동생 손에 쥐여주었다.

그날 밤 동생 방에서 들려오던 울음소리는 오래도록 멈추지 않았다. 나는 입을 꽉 다물고서, 아버지에게 화풀이를 했나, 오라비에게 화풀이를 했나, 아니면 나 자신에게 그랬나.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날 내가 팽개친 동생의 마음이 결코 사소한 게 아니란 건 평생 잊히지 않았다.

201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리에서 발견한 무지개 깃발. 김비 제공
201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리에서 발견한 무지개 깃발. 김비 제공

남자 몸을 가졌던 그때의 내가 자학과 자해 감정으로 똘똘 뭉쳤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지도 않다. 부모든 사회든 그 몸뚱이든 모든 것으로부터 버려졌단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라고, 알량한 이유를 덧붙이고 싶지도 않다. 성별을 떠나 지켜야 할 것이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떤 부모를 가졌든 얼마나 가난했든 기필코 지켜내야 하는 인간의 도리가 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동생은 그러려고 애썼던 건지 모른다. 그래서 오라비 같지 않은 오라비에게, 어쨌든 가족의 이름으로 함께 살려고 발버둥인 나를 위해 선물을 고르고 포장했던 것인지도.

즐거움이나 축하도 마찬가지다. 타인과 마음을 주고받는 데 서툴다 보니, 제 자신의 마음과도 서툴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지금 즐거운 건가, 지극히 본능적이고 간단한 그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고 어렵기만 했다. ‘잘 노는 사람’이란 통속적인 수사는 무람없이 아무나에게 다가가 술을 권하고 노래를 권하고 곁을 내어주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게 ‘노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내 것이 아닌 게 확실하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오히려 움츠러드는 쪽이다. 차라리 그런 자리에는 가지 않으려고 하는 쪽에 해당한다.

일단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지는 사람과 얼굴을 맞대는 것부터가 나에겐 즐거움이 아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혹은 힘든 일이 있으면 그럴 수 있지, 따위의 핑계를 들어 ‘술’을 지렛대 삼는 태도에 나는 오히려 반감을 가지는 편이다. 창작의 고뇌나 작품에 대한 열망으로 술에 취한 작가들 역시 나는 경계한다. 인간의 즐거움을 오로지 ‘술’과 ‘배설’로만 해석하는 태도가 과연 이 시대에도 계속되어야 하는 건가, 나는 종종 의문스럽다. 그 즐거움이 쾌감이나 공감의 요청이라면, 우린 그 감각을 최대치로 확장시킬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폭력의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고, 존중의 공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 말이다.

즐기는 데 무슨 생각이 필요하냐는 채근에, 나는 동의하지 못하는 쪽이다. 실질적인 즐거움이어야 하기에, 더 열심히 이해해야 하고 나를 위한 최고 효용의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이어야 하니 말이다. 내가 어떤 성별이든, 어떤 환경 속에 있든, 내가 지킬 수 있어야 하는 최초의 에너지일 것이기에.

그림 박조건형
그림 박조건형

바다보다 숲을 좋아한다. 배설보다 소통을 좋아한다. 왁자지껄한 발견보다 조용한 발견을 좋아한다. 직접 만나는 사람 구경보다, 영상 속 사람 구경을 좋아한다. 혼란보다 혼돈을 좋아하고, 지루한 ‘쿨함’보다, 생기 있는 ‘진지함’을 좋아한다. 요리보다 그릇을 좋아하고, (목적지에) 가는 여행보다 (어디든)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

성소수자라서 즐거움을 빼앗길 필요 없겠지만, 위축된 마음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자리든 나는 의뭉스러운 사람인 것 같고, 솔직하지 못한 나인 것 같고, 상대를 속이는 내가 되어버리고 만다. 힘들게 커밍아웃을 하고 다행히 변함없는 관계가 되더라도, 후련해지지 않고 어쩐지 상대를 불편하게 한 것 같아 말수가 줄어들기도 한다.

반대로, 변함없는 나를 지키려고 쓸데없이 과장된 내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지치고, 불편해지고, 멀어지는 그렇고 그런 좋은 관계들이 이따금 생각난다. 그때 내가 뭘 놓친 걸까, 자책하고 자학하는 형편없고 못난 그 자리다.

배설이나 해소 말고, 다른 이름이 필요한지 모른다. 우리의 즐거움을, 생의 즐거움을 그렇게 간략하게 부르지 않는 태도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걸 축제라고 말해도 좋고, 기념일이라고 말해도 좋고, 잔치라고 말해도 좋다. 혹시 내가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닐까 불편해지는 건 아닐까 겁먹고 두려워하는 그 마음들을 접어두고서, 한번쯤은 서로를 향해 이 사회의 몸 밖으로 흘러야 하는 건지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모든 위태로움의 시대에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누군가는 비난하겠지만, 오히려 최악의 순간에 축제는 가장 간절해지는 게 아닐까? 꿈꾸거나 그리워하거나 우리는 궁지에 몰릴수록 더욱더 좋은 날을, 축제를 생각한다.

2014년 사람 없는 곳에 숨어 여름휴가 중. 김비 제공
2014년 사람 없는 곳에 숨어 여름휴가 중. 김비 제공

우리만의 결혼식을 가진다면

나 역시 지금까지 여러번의 축제를 놓쳤는지 모르지만, 이뤄지기를 소망하는 딱 한 가지 축제가 있다. 결혼식이다. 혼인신고도 했고 이미 같이 지낸 지 십년을 넘기고 있지만, 종종 둘 다 60대가 되었을 때 결혼식을 하자고 말하곤 한다. ‘잘 살겠습니다’가 아니라 ‘잘 살아왔습니다, 고맙습니다’를 말하기 위해 우리만의 결혼식을 가지면 어떨까 상상한다. 우리 두 사람의 삶을 지킨 고마운 분들을 모시고, 추억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생의 의미를 다시 나눈다면 얼마나 멋진 축제일까, 까마득한 미래인데도 무작정 행복해진다.

당신에게는 어떤 축제가 있는지 모르지만, 초대받을 리 없겠지만, 시공간적으로 멀고 먼 지금 이곳에서 나는 당신의 축제를 향해 박수 치고 환호하겠다. 이제야 조금 인생의 축제를 알겠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도 그 축제가 꼭 지켜지기를, 나는 소망한다.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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