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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살 지능’ 30대 아들의 방…어린이책 옆엔, 먼지 쓴 향수병

등록 2022-07-11 10:00수정 2022-07-11 23:12

‘살아남은 김용균들’의 공간과 물건①
이희성씨의 방 옷장 앞에 새 작업복이 걸려있다. 저 작업복을 다시 입지 못한 채 희성씨의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희성씨의 방 옷장 앞에 새 작업복이 걸려있다. 저 작업복을 다시 입지 못한 채 희성씨의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공간과 그 물건들은 많은 것을 말한다. 그곳에 사는 이의 손길과 시선이 자주 닿은 곳은 어디인지, 세월과 함께 어떤 물건이 그이의 삶에서 비켜났는지…. 공간과 사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은 그 공간의 주인을 만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인터랙티브] 살아남은 김용균들 : 2022년 187명의 기록
한겨레 청년 산재 기획 바로가기 >>

전남 광양의 한 제철소에서 터진 일산화탄소 폭발 사고로 산업재해 중장해인이 된 이희성(31·가명)씨의 어머니 박인숙(60·가명)씨는 며칠 전 쌓아두었던 희성씨의 짐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2014년 6월 6일 그날의 사고로 두 살배기의 인지능력을 갖게 된 희성씨가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제철소에서 일하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지능이 낮아진 이희성씨의 방 한쪽, 옹기종기 놓인 향수병들 위에 먼지가 그득하다. 사고 전 이희성씨는 향수와 운동화 욕심이 많던 평범한 스물한살 청년이었다. 백소아 기자
제철소에서 일하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지능이 낮아진 이희성씨의 방 한쪽, 옹기종기 놓인 향수병들 위에 먼지가 그득하다. 사고 전 이희성씨는 향수와 운동화 욕심이 많던 평범한 스물한살 청년이었다. 백소아 기자

찬찬히 남겨진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서랍장 위에 옹기종기 모아둔 여러 개의 향수병은 뽀얗게 먼지가 쌓였어도 버려지지 않았고, 신발장엔 자리 잡은 종류별 운동화들도 그대로였다. 공들여 비교하고 골랐을 그 물건들에서는 세월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이십 대 청춘 희성씨의 명확한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반면 책장에는 어린이 만화 전집이 꽂혀 있다. 사고 뒤 병원에서 재활 중인 그에게 회사 사람들이 주고 간 것이다. 근육 이완 재활기구도 지금의 그에게 필요한 물건이다.

20여년 나이 차의 두 사람이 함께 사는 듯 보이는 희성씨의 방에 걸려있는 새 작업복은 마치 사고 전 청년 이희성과 사고 뒤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희성씨를 나누는 구분자 같다. 8년 전 사고 며칠 뒤 회사에서 받았다는 저 작업복을 입어보지 못한 채 희성씨의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다시 아이로 돌아가 어머니 껌딱지가 되어버린 희성씨는 어머니와 함께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얼굴은 드러내지 않길 요청한 두 모자의 모습을 어떻게 사진으로 기록할까 궁리하다 이들이 좋아하는 일상을 담아보기로 했다. 산책에 나선 두 사람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은 뒤 되돌아오는 두 사람에게 외쳤다. "기념사진으로 찍어드릴게요. 여기 보세요!" 카메라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미소가 해사했다. 백소아 기자
다시 아이로 돌아가 어머니 껌딱지가 되어버린 희성씨는 어머니와 함께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얼굴은 드러내지 않길 요청한 두 모자의 모습을 어떻게 사진으로 기록할까 궁리하다 이들이 좋아하는 일상을 담아보기로 했다. 산책에 나선 두 사람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은 뒤 되돌아오는 두 사람에게 외쳤다. "기념사진으로 찍어드릴게요. 여기 보세요!" 카메라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미소가 해사했다. 백소아 기자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 사진기사는 2030 청년 187명의 산재 기록을 톺아본 <한겨레> 기획보도 ‘살아남은 김용균들’ 중 하나로, 인터랙티브 페이지에서 더 많은 기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it.ly/3AIbW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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