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빚과 빛
하루 3천원으로 버틴 건 꿈 때문
카드빚에 치 떨릴 만큼 시달려
고꾸라지다가 행운 찾아오기도
작은 빛 앞에 모여 ‘꿈’ 지켜야
빚과 빛
하루 3천원으로 버틴 건 꿈 때문
카드빚에 치 떨릴 만큼 시달려
고꾸라지다가 행운 찾아오기도
작은 빛 앞에 모여 ‘꿈’ 지켜야

디지털화 <그리움만으로 불을 켤 수 없다>. 그림 김비
하루 3천원의 삶, 신용카드 지원이나 지지조차 바랄 수 없는 흙수저 가계의 트랜스젠더라면 누구든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언젠가 수술을 받을 것이고 치료를 시작할 것이란 믿음으로, 통장의 숫자를 쪼개는 것. 누군가의 기준으로는 퇴행적이고 어리석다고 폄하되겠지만, 이성애 사회 속 청년 성소수자의 꿈은, 더 먼 곳에서 더 깊은 곳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을 나와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대학교 어학실 조교가 된 덕분에 처음으로 신용카드란 걸 갖게 되었다. 돈이 없는 줄 알았는데, 신용카드를 갖고 보니 지갑은 두툼했다. 돈을 번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잃을 예정뿐인데, 마음이 든든했다. 기분이 좋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15년 9월 부산 도심 풍경. 김비 제공

2021년 지리산 근처에서 불쑥 나타난 의자. 쉬어 가란 뜻이었을까. 김비 제공

2021년 9월 울산 장생포항. 온통 불이 꺼진 세계와 저녁 빛이 만났다. 김비 제공
삶은 길고, 행운은 촘촘하다 누군가의 쌓인 돈은 부러움의 대상일 필요도 없고, 생의 절멸을 판단할 기준도 될 리 없다.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한 사람의 삶을 예측하거나 가늠하지 못한다. 삶은 생각보다 길고, 행운은 훨씬 더 촘촘하게 박혀 있다. 돈이란 여기 이 시대, 이 사회의 기준일 뿐, 내 삶은 내 몸 안에 단단히 박혀 있다. 손실이 날 수 없는 이득이다. 그 몸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둘 셋 혹은 넷이라면, 이득은 두배 세배 혹은 네댓 배가 될지도 모른다.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행운은 불운의 그림자이기도 하고, 불운은 행운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러니 돈 때문에 죽지 말자. 돈 때문에 죽이고 죽는 짓은 제발 그만하기로 하자. 죽은 당신들, 그 어린 삶들, 너무 아깝다. 긴축의 시대가 가진 경제적 함의를 가늠할 지식이 나에겐 없다. 다만 돈을 매개로 순환하는 사회이니 돈의 긴축은 곧 사람살이의 오그라듦이고 물러남일 것이다. 그때처럼 하루 끼니를 3천원으로 나눌 정도는 아니겠지만, 우리의 삶은 곳곳에서 소외를 겪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것이다. 머리 위를 밝히던 불이 꺼지고 갑자기 정전이 되었을 때, 세상이 온통 캄캄한 어둠에 빨려들어가고 말았을 때, 어릴 적 한집에 사는 우리는 모두 한방에 모이곤 했다. 촛불 하나를 켜고 그 앞에 모여 앉는다. 별일 아닐 거라고, 곧 지나갈 거라고, 서로에게 억지웃음을 보여준다. 뻔하디뻔한 위로를, 낡고 낡은 꿈의 말들을 서로에게 건네며 그 시간을 버틴다. 지금 당신의 사회적 이름이 무엇이든, 어떤 빚을 지고 또 어떤 고난에 울고 있든, 아주 작고 사소한 빛을 찾아 그 앞에 모여 앉아야 한다. 힘없이 흔들리며 우리를 지켜왔던 공존의 불을 들어 올려, 내 앞을 밝힐 차례다.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