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목격자인 응우옌득쩌이(왼쪽)가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국가배상 소송 법정 진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응우옌득쩌이의 조카인 응우옌티탄은 1968년 2월12일 한국군 청룡부대 1대대 1중대 군인들이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마을에서 70여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며 2020년 4월 한국을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연합뉴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현지인의 첫 법정 증언이 나왔다. 재판정에 서기 위해 먼 한국 땅까지 날아온 증인은 “한국 정부가 학살의 진실을 인정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 심리로 9일 열린 응우옌티탄(62)의 국가배상소송 변론기일에서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 민병대 소속이었던 응우옌득쩌이(82)의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과 관련된 최초의 베트남인 증인신문이다. 이날 재판에서 응우옌득쩌이는 ‘퐁니 사건’이 있었던 1968년 2월12일 한국 군인들이 퐁니마을 주민들 수십명을 살해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응우옌득쩌이는 이날 증인신문에서 “무전기를 통해서 한국 군인들이 퐁니마을 주민들을 죽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퐁니마을 근처로 갔다. 망원경을 통해서 한국 군인이 마을 주민들을 죽이는 모습을 봤다. 한국말로 고함을 치는 소리도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평소 한국 군인들을 자주 봐서 얼굴을 알고 있었고, 식당이나 가게, 길거리 등에서 한국 군인과 마주치며 한국말도 여러번 들었다”며 자신이 본 살해 현장이 한국군에 의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어 “민간인을 살해한 한국군이 떠난 뒤 미군과 함께 마을에 들어가서 곳곳에 쌓여있던 주검 수십구를 발견했고 대부분의 집이 불타있는 모습도 봤다”고 했다.
이 소송은 베트남전쟁 당시 있었던 ‘퐁니 사건’의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이다. ‘퐁니 사건’은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 해병대 제2여단(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이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마을 주민 70여명을 살해했다는 사건이다. 이 사건 당시 8살이었던 응우옌티탄은 가족 5명을 잃었고, 본인도 한국군이 쏜 총에 왼쪽 옆구리를 맞아 지금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이날 증언한 응우옌득쩌이는 그의 삼촌이다.
한국 정부는 응우옌티탄이 한국군에 의해 피해를 봤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책임을 부인하는 입장이다. 미군에 맞선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심리전 차원에서 한국군으로 위장해 민간인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고, 한국군이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하더라도 교전 상태에서 퐁니마을 주민을 적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퐁니 마을 작전을 수행했던 부대의 소속 군인이었던 류아무개씨가 법정에 나와 학살 당시 상황을 직접 증언했는데, 이 증언에 대해서도 정부는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고 쪽은 퐁니 사건 직후 미군이 이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를 한 뒤 작성한 보고서를 토대로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묻고 있다. 국가에 의한 폭력이 이뤄진 사건들은 보통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피해자들이 용기내는 경우가 많아 입증이 쉽지 않지만, 1968년 일어난 퐁니 사건은 사건 직후 미군이 현장에 진입해 진상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썼다.
미국 내셔널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는 이 보고서에는 주민들의 진술과 사건 현장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한국 정부도 퐁니 사건 발생 1년 뒤 별도 조사를 벌여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원고 쪽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날 재판 전 기자회견에서 원고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정부는 원고의 입증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인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정보원이 가지고 있는 보고서를 법정에 제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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