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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현장] ‘기생충’의 반지하처럼… 물은 낮은 곳부터 잡아삼켰다

등록 2022-08-10 15:36수정 2022-08-11 02:40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한 폭우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 구룡마을
집 곳곳 물 새는 개미마을
10일 아침 10시쯤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 8일밤 내린 폭우로 집이 잠기면서 자재들이 널브러져 있다. 곽진산 기자
10일 아침 10시쯤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 8일밤 내린 폭우로 집이 잠기면서 자재들이 널브러져 있다. 곽진산 기자

“아휴 밤 꼴딱 새고 힘들어 죽겠어. 자식들은 다 나갔고 얼마 전에 마누라도 떠나보냈지. 지금은 도와줄 사람이 없어.”

10일 오전 9시께 서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에서 만난 강석구(90)씨는 빗물에 잠긴 집을 정리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강씨의 집은 8일밤 내린 폭우로 흙탕물이 덮치면서 전자 제품을 비롯해 모든 가재도구가 물에 잠겼다. 비가 그친 뒤로 쉬지 않고 물을 퍼냈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의 상태가 아니었다. “개울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면서 쓰레기들도 밀려오고 난리가 아니었지. 집들도 오래돼서 대부분 무너졌잖아.” 36년째 구룡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강씨는 이같은 폭우는 생전 처음이었다고 했다. 강씨는 집이 잠겼던 지난 이틀간 구룡중학교에 마련된 임시 거주시설에서 쪽잠을 자고 이날 새벽 집을 정리하기 위해 마을로 돌아왔다.

이틀간(8~9일)의 폭우는 강씨처럼 판자촌, 쪽방촌 등에 사는 주거 취약계층들에게 더 가혹했다. 지대가 낮은 곳에 들어선 낡고 허름한 집은 퍼붓는 비를 막아내는데 역부족이었다. 이들은 폭우가 소강상태를 보인 10일, 수마가 할퀴고 간 보금자리에 가재도구를 수습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임시거주시설에서 이틀 밤을 보낸 구룡마을 주민들은 이날 아침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재개발 사업지역인 구룡마을은 650여가구가 실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총 8구역으로 나뉜 구룡마을에는 저지대(3·5·6 구역)가 가장 큰 피해를 봤다.

부러진 나뭇가지와 비닐 쓰레기들이 마을 골목에 가득했다. 음식물과 가정용 쓰레기로 뒤섞인 더미 옆에는 목줄이 달린 개 한 마리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8일 밤 폭우가 쏟아지자 대부분 고령층인 마을 주민들은 황급히 몸만 피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50대 중반의 양아무개씨는 “방 하나에서 흙탕물이 갑자기 쏟아지면서 집 안에 물이 가득 찼다”고 했다. 골목에는 엘피지(LPG) 통이 쓰러져 있었고, 아직 뜯지 않은 생수병은 진흙탕 안에 그대로 묻혀 있었다. 홍현동(81)씨는 “집은 안 무너졌는데 다 잠겼어. 방이 그냥 냄새나고 물이 찼는데 말라야 들어가지 않겠냐”고 말했다.

10일 아침 9시30분쯤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 강남보건소의 방역 작업으로 회색 연기가 마을을 휘감았다. 곽진산 기자
10일 아침 9시30분쯤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 강남보건소의 방역 작업으로 회색 연기가 마을을 휘감았다. 곽진산 기자

비는 그치고 하늘이 개었지만 이곳 주민들에게 태양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마을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뙤약볕이 집을 말리면 엄청 심한 악취가 난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구룡마을 주민들이 장마 뒤 겪는 경험이다. 한춘희(69)씨는 “임시 거주지도 (중학교)방학이 끝나면 이동해야 하는데 여기서 어떻게 살 수 있겠냐”며 “막말로 그렇게 돈이 많은 강남구의 마을인데 도와주는 데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도랑이 범람하면서 집이 잠겼다는 이덕구(69)씨는 “너무 무섭더라고. 물이 이렇게 넘치는 건 생전 처음이었어. 집 버리고 저 언덕으로 도망쳤다”고 했다. 이씨의 집 천장은 폭우로 반쯤 무너진 상태였다.

강남 지역보다 피해는 덜했지만, 강북의 주거 취약계층도 갑작스런 물폭탄에 악전고투했다. 취약계층이 많이 사는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는 좁은 계단 곳곳에 강풍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떨어져 있었다. 이 마을에서 30년가량 살았다는 하아무개(52)씨는 “이틀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집 곳곳과 창고 천장에서 물이 새 밑에 양동이를 받쳐 놨다”며 “현관 천장에 있는 전등은 흐르는 물 때문에 누전 문제가 생길까 봐 떼어냈다”고 말했다. 백종분(68)씨는 “몇 년 전 지붕수리를 해서 천장 누수는 없는데, 집이 오래돼 벽에 물이 생긴다. 집이 습기로 너무 눅눅하지만, 여긴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비싼 기름을 써야 하는데 보일러를 돌릴 엄두가 안난다”고 했다.

10일 아침 9시30분쯤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 개가 목줄이 감긴 채 쓰레기 더미 옆에 방치돼 있다. 곽진산 기자
10일 아침 9시30분쯤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 개가 목줄이 감긴 채 쓰레기 더미 옆에 방치돼 있다. 곽진산 기자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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