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내린 폭우로 불어난 물에 갇혔던 시민들이 두고 대피한 차량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앞 서초대로 위에 뒤엉켜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8일 밤부터 중부지방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집중 호우로 인한 ‘예견 가능성’과 이에 따른 ‘예방 조처’ 여부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등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큰 피해를 입은 강남 지역이 ‘상습 침수’ 구역으로 꼽히는 점을 고려하면, 법원이 이번 수해에 대해서도 예견 가능성을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10일 <한겨레>가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누리집 등을 통해 확인한 판례를 보면, 대법원은 18명의 목숨을 앗아간 우면산 산사태가 있었던 2011년 집중호우 당시 지자체의 손해배상 책임에 대해 대비되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은 지난 2011년 우면산 산사태로 숨진 70대 노인의 유족이 서초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배상책임을 인정했지만, 경기 양주시에서 섬유 도매업을 하는 공장주가 침수 피해로 입은 손해를 주장하며 낸 소송에서는 양주시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두 사건 결론은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를 예견할 수 있었는지와 그에 따라 적절한 조처를 했는지에 따라 엇갈렸다. 우면산 산사태의 경우, 대법원은 사고 1년 전인 2010년에도 산사태가 발생한 점을 주요한 판단 근거로 삼았다. 서초구가 산사태 발생의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적극적인 대피 조치 등을 하지 않았다고 봐 책임을 물은 것이다. 반면, 경기 양주시 공장 침수 사건은 기록적 폭우에 의해 인근 하천이 범람해 발생한 자연재해였기 때문에 침수사고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책임을 묻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폭우로 인한 피해 배상 여부도 결국 예견 가능성과 예방 조처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과거 2011년 중부지방 폭우로 강남역 일대가 지금처럼 침수된 사례가 있다는 점, 기상청이 수도권에 ‘역대급 폭우’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한 점 등을 고려하면, 지자체 등에 예견 가능성을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결국 관리 주체가 이에 따라 적극적인 예방 조처를 했는지가 손해배상 책임의 관건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지자체 등 관리 주체에게 자연재해로 인한 책임을 무조건 묻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인명피해나 재산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예견되는 상황은 다르다”며 “법원은 관리 주체가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적절한 조처를 했느냐를 따질 텐데, 가장 피해가 큰 강남은 상습침수구역이기 때문에 조치 의무를 엄격하게 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다른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법원이 배상책임을 인정하더라도 관건은 손해액을 어느 정도 인정받는지 여부”라며 “전체 손해를 모두 배상받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관리 주체의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이번 폭우로 침수 피해를 본 차량 소유주들이 건물 관리업체나 지자체 등을 상대로 집단 소송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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