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BNK디지털타워 앞에 한 한 차량이 뒷바퀴를 자전거 거치대에 올린 채 세워져 있다. 고병찬 기자
“2차로밖에 안 되는 좁은 도로인데 침수차를 안 치우니까 우회전 기다리는 차들이 뒤로 쭉 밀리지.”
지난 8일 침수됐던 서울 동작구 신대방역에서 관악구 난곡사거리까지 이어지는 왕복 5차로 도로. 침수된 10여대의 차들이 나흘째인 11일 오전까지도 여전히 도로 곳곳에 방치돼 있었다. 침수된 차량 앞쪽 유리창에는 ‘불법주정차단속 예고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차를 옮기지 않으면 과태료부과나 견인 조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날 오전 이곳을 차량으로 지나던 이원종(42)씨는 “역 앞은 평소에도 혼잡한 곳인데, 차를 왜 이곳에 나흘이나 방치하는지 모르겠다. 지자체라도 나서서 통행에 지장이 없는 곳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지난 8일 폭우로 침수된 차들이 나흘째인 이날까지도 길가에 방치되고 있다. 피해 신고가 9천건을 넘어서며 견인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비가 또 올 수 있다는 예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침수차량을 도로에 장기간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침수 피해를 입었던 서초구 서초대로도 차량이 여전히 방치돼 있었다. 이날 오후 서초구 진흥아파트 일대엔 침수된 차들이 여전히 인도와 도로에 남아있었다. 한 차량은 뒷바퀴가 인도에 있는 자전거 거치대에 올려진 채였다. 서초초등학교 맞은편 한 아파트 앞 인도 위에 놓인 차량 3대에는 ‘침수차량 견인 대기 중’이라고 적힌 종이가 꽂혀 있었다. 이 아파트 경비원 ㄱ씨는 “지난 9일부터 침수된 차량 3대가 지금까지 인도를 차지하고 있어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며 “하루 이틀이면 견인될 줄 알았는데 견인차 섭외가 어려운지 지금까지 방치돼 있다”고 했다.
11일 오전 서울 관악구 난곡사거리 인근 도로에 나흘째 침수차량이 역주행 방향으로 방치되어있다. 장나래 기자
지자체는 통행에 방해될 경우에만 갓길이나 도로 한 쪽에 차량을 옮기고 있다. 관악구청은 “개인 차량은 차주가 보험사를 불러 옮겨야 하는데, 보험사에 신고 건수가 많다 보니 견인이 지연되고 있다”며 “위험하거나 교통 흐름에 크게 방해되는 경우만 지자체에서 나서고 있다. 주차 경고문은 붙였지만 침수차에 한해서는 실제 단속은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서초구청도 “도로 한가운데 있는 차들은 가장자리로 이동 조치를 계속하고 있다. 이후에는 차주가 직접 보험사를 불러 견인해야 한다. 맨홀에 빠진 차들이 견인에도 어려움이 있는데, 특수 견인차도 동원하고 있다”고 했다.
보험사는 피해 신고가 한번에 몰리면서 차량 견인이 늦어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손해보험협회는 지난 8일부터 이날 낮 12시까지 손해보험사 12곳에 접수된 차량 피해 건수는 모두 9189건이라고 밝혔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견인차를 총동원하고 있지만, 신고가 너무 많아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차주들은 보험사의 견인이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구청에서 불법 주정차 경고문까지 붙이고 있다고 반발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차량 침수 피해를 입은 김아무개(54)씨는 “폭우 다음날 바로 보험사에 신고했는데, 신고가 밀렸다면서 아직도 안 오고 있다. 견인차가 부족하다는 말만 들었다. 그럼 구청에서는 불법주차 경고문을 붙일 게 아니라 차량을 옮겨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비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 침수차량을 도로에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지성 호우가 계속 예보된 상황에서 또다시 침수가 된다면 침수차량이 떠내려가 흉기가 될 수 있다”며 “지자체가 개인 차량을 직접 처리하기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안전을 위해 전국 견인차를 총동원해서라도 하루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11일 서울 서초구 서초초등학교 맞은편 한 아파트 인도에 세워진 침수 차량에 적힌 메모. 고병찬 기자.
11일 오전 서울 관악구 난곡사거리 인근 도로에서 차량들이 나흘째 방치된 침수차량을 피해 주행하고 있다. 장나래 기자
11일 오전 서울 동작구 신대방역 인근 도로에 나흘째 침수차량이 방치되어있다. 장나래 기자
한편, 악취를 막는다고 배수구에 덮개를 덮어놓는 것도 폭우가 다시 올 경우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서울 시내 이면도로, 주택가 등을 살펴보니 배수구 위에 악취를 막는다며 건물관리인들이 덮어놓은 덮개들이 눈에 띄었다. 서울 마포구의 한 건물관리인은 “악취 때문에 덮었지만 비가 오면 다시 치울 것이다”고 했다. 그러나 심야나 새벽에 폭우가 쏟아지는데 빨리 치우지 않을 경우 덮개는 배수를 막을 수 있다.
일부 지자체는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닫혀 있다가 비가 오면 빗물 감지 센서가 반응해 자동으로 덮개가 열리는 ‘스마트 빗물받이’등을 설치하기도 한다.
서울 마포구 한 이면도로 배수구를 덮개가 덮고 있다. 서혜미 기자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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