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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반지하의 죽음 앞에서 ‘옮고 그름’ 따진 그들

등록 2022-08-20 12:16수정 2022-08-21 11:29

[한겨레S]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ㅣ보편적 올바름에 대해

공산당을 돼지로 그렸던 시절…‘우린 선, 반대는 악’ 논리
정치적 올바름 강요받는 사이 무수한 삶 희생 어쩌나
그림 박조건형
그림 박조건형

사람을 늑대로 그려야 칭찬받던 시절이 있었다. 늑대로 그리지 않고 사람으로 그리면, 오히려 지적을 받곤 했다. 내 또래의 50~60대라면, 학교 벽벽마다 붙었던 반공 포스터를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우리 편’과 ‘적’을 나누어, 새빨간 눈과 이빨과 꼬리 달린 존재로만 사람을 그려야 했던 시절을.

비인간 동물을 인간보다 하등한 존재로 그리는 것이 당연해, 그즈음 우리는 누군가를 비하할 때 약속이나 한 듯 ‘개’나 ‘돼지’였다. 그래서 그보다 더 사악하고 흉포한 이미지를 덧붙이려고 한 것이 아마도 ‘늑대’였을 것이다. 순수하고 정의로운 이쪽의 우리들은 사람, 그런 우리를 괴롭히는 건너편의 그들은 늑대, 혹은 악마. 비합리적이고 유치한 인간우월주의에 더해 편협한 사고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그 결과물로 칭찬받고, 우수한 성적까지 받으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림 박조건형
그림 박조건형

우리는 더 ‘인간적’이 됐을까

‘반공정신 함양’이라는 목표 아래 단체 관람도 자주 다녔다. <똘이 장군>이라는 이름의 연작 애니메이션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필수 관람 영화였다. 정의는 이기고 악은 처단받는다는, 아니 ‘정의는 나’고, 그에 반대하는 ‘너는 무조건 악’이라는 스토리인 그 영화 속에도, 우린 패배당하는 ‘늑대’나 ‘돼지’를 보며 환호했다. 그 어디에도 정의는 없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편견을 더 깊숙이 새기는 순간일 뿐인데, 우리는 즐거웠고 감격했다.

내 쪽을 위한 정의를 지킨 인간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추앙받아 마땅하며, 그 정의에 반하는 존재는 무조건 ‘악’이고 ‘적’이었다. 단지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당시에 적지 않은 아이들이 북쪽 주민을 ‘사람’이 아닌 ‘늑대’라고 믿기도 했다. ‘빨갱이가 잡아간다’는 어른들의 으름장이 통용되는 시절이던 걸 생각하면, 그때의 반공 교육은 말이 교육이지 세뇌에 가까웠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지금 시대의 ‘스마트한’ 누군가는 가볍게 비아냥거리겠지만, 나는 지금 우리가 믿는 선악이나 정의의 관념 역시 그때의 편협함으로부터 벗어나긴 한 걸까 자문하게 된다. 어쩌면 우린 더 당당하게 편협해졌고, 당당하게 폭력적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나와 믿는 바가 다른 누군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하고 부인하는 게 당연하며, 한가지 목표를 위해 짓밟힌 소수나 삭제된 개인은 불가피한 것으로 취급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의 기본을 지키려는 노력을 ‘무능’이고 ‘어리석음’이라 폄하하며 돈이나 권력의 쟁취만이 유일한 행복이며 최고선이라고 세뇌하고, 또 세뇌당한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책무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오직 나와 내 편만을 위한 효용이나 정치적 결단이라는 이유면 충분하다. 예술 문화적 가치나 의미 따위도 필요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 매출을 찍고 투자한 돈을 거둬들이면 되는 일이다. 타자의 고통은 모르겠다, 우리 편이 아닌 적들의 계산과 논리는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쟁취한 권력으로 우리 편의 안위만을 위해 내 정치를 조직하고 계산할 것이다.

사람에게 ‘늑대’, ‘돼지’ 탈을 씌우던 우리는 진정 그때보다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인간적’이라는 말조차 갖가지 꼬리표를 붙여 짓밟는 게 당연한 사회를 만들면서, ‘미래 세대’, ‘선진국’ 운운하는 우리 사회는 얼마나 부끄러운가? 후세에게 잘생긴 늑대와 돼지 가면을 건네주는 과정인가?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누구든 간단히 삭제하고 그 얼굴에 씌워주라고?

최근에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함이 묻었다’라는 표현을 종종 마주한다. 그러나 ‘묻은 것’이 과연 어느 쪽의 ‘PC함’인가? ‘올바름’은 죄가 없다. 그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하는 올바름이 있고, 사람으로서 지켜야 하는 올바름이 있고, 생명을 가진 존재로 지켜야 하는 올바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묻은 것’이란 이기적인 다수의 아집이고 낯섦 아닌가? 그들이 의지한 올바름, 혹은 불편하지 않음이란 누군가의 삶이나 관점으로는 결코 올바를 수 없는 편협한 현재다.

징그럽도록 집요하게,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PC해’왔던 것이 우리 사회 아닌가? 어쩌면 그 시절 말도 안 되는 반공 교육보다 더 집요하고 편협하게, 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폭력적으로, 장애인이나 성소수자의 삶들을 지워왔으니 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 그 사람들은 이미 망가진 것,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것, 인생 망치는 것. 그 정치적 올바름을 오직 자신들만의 것으로 전유하며 세뇌에 가까운 강요를 해온 것이 바로 우리들의 건강하고 정의로운 ‘정상 사회’였으니 말이다.

우리의 올바름은 무엇으로 지켜질까? 올바름의 정의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나와 다른 올바름, 당신과 다른 나의 올바름은, 이미 논외다. 나는 우리 모두에게,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를 포용하는 그 올바름만이 이 사회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현 불가능한 판타지를 말하려는 것이냐고,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적지 못하면 의미 없는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사람을 인간으로 성장시키고, 인간을 공동체로 지켜온 그 감각을, 우린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뿌리 속 깊은 곳에, 역사든 교육이든 뭐가 되었든 깊고 깊은 뒤엉킨 자리에, 그 감각이 씨앗 하나로 실재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그림자 사진.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름’도 결국 이런게 아닐까. 사진 김비 작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그림자 사진.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름’도 결국 이런게 아닐까. 사진 김비 작가

그 참혹한 현장에서…

그동안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누군가의 삶을 착취하고 억압해 그 정의를 떠받쳤겠지만, 이제 그 올바름을 새롭게 정의해 확장시킬 때 보편적 올바름은 단단히 뿌리내려 이 사회를 지탱하는 게 아닐까? 목록, 진영, 근원을 따질 필요도 없이, 이름 붙일 필요도 없이 나와 당신이 이미 모두 알고, 그래서 서로 믿고 의지하게 되는 그 올바름만이.

재난이 일어났고, 멀쩡히 살아야 할 누군가의 삶이 희생되었다. 엉뚱하게도 ‘반지하 삶’을 규정하는 데 옳고 그름을 따지느라 바쁜 사람들을 본다. 그 참혹한 현장 앞에서 ‘기회’를 떠올린 공직자의 마음을 목격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흙탕물을 삼키며, 무수히도 외쳤을 ‘살려달라’는 목소리는 다시 또 멀찌감치 내쳐진다. 서둘러 대책을 내놓고, 서둘러 결론을 내고, 서둘러 다음 의제로 넘어간다. 대책을 내놓았으니 끝, 결론을 냈으니 끝, 언제나 우선순위는 똑같았고, 당연했고,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또 미래에 누군가의 ‘살려달라’는 간절한 외침을 묵살하기로 온 사회가 약속한다. 무감각해진다. 2022년, 우리의 올바름이다.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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