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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래서 뭐 해줄 건데?” 노인이 묻자 복지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등록 2022-09-01 05:00수정 2022-09-01 20:45

[수원 세모녀 비극 그 후] 현장에서 경험한 ‘가난구제 한계’
위기 발굴 ‘찾아가는 복지팀’
전국 1만2천명…1명에 105명
134만 위기가구 닿기엔 태부족
사회에서 받은 상처로 방문 거부
“난 안 될 거야 지레짐작 많기도”
찾아가는 복지 전담팀 소속 공무원들은 위기가구를 발굴해도 지원할 복지 제도를 찾지 못한 빈곤, 지원 대신 고립을 택한 빈곤 앞에서 느낀 좌절을 느낀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찾아가는 복지 전담팀 소속 공무원들은 위기가구를 발굴해도 지원할 복지 제도를 찾지 못한 빈곤, 지원 대신 고립을 택한 빈곤 앞에서 느낀 좌절을 느낀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수원 세 모녀의 죽음이 전해지고 김무영(가명·43) 주무관은 자신이 ‘비대상자’ 네 글자로 적어버린 이름들을 떠올렸다. 그는 올해 초 인사발령이 나기 전까지 경기도 양평군의 한 행정복지센터 ‘찾아가는 복지 전담팀’에서 일했다. 정부의 ‘복지 위기가구 발굴 관리 시스템’이 알리는 빈곤 가구를 찾고 지원하는 일을 맡았다. “시스템이 알려주는 고위험 가구 100명 중에 1명 정도는 수원 세 모녀처럼 주소지와 거주지가 다르고 연락처도 없어요. 그런 분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비대상자’라 적는 거죠.” 안타까운 이들은 비대상자뿐이 아니다. 10명 중 1명꼴로 지원할 수 있는 복지 제도를 전해도 “나는 이런 것 필요 없다”고 거부한다. 그보다 더 잦은 빈도로 “어려운 시민을 ‘발굴’하고도 별달리 지원할 제도를 찾지 못해 실망을 안긴다.” 김 주무관이 고백하는 ‘복지 전달 실패담’은 그만의 경험이 아니다.

2021년 말 기준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에 포착된 대상자는 133만9909명이었다. 이 가운데 복지 서비스를 받지 않은 이들은 67만6035명으로 50.5%에 이른다. 데이터상으론 심각하지 않았거나, 지원을 거부하거나, 현 복지 제도 바깥에 위치한 이들이다. 수원 세 모녀도 그런 가족이었다.

<한겨레>는 지난 25일 읍면동 단위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찾아가는 보건복지 전담팀’(찾아가는 복지팀)에 속한 공무원과 이 팀과 연계돼 빈곤의 발굴과 지원 업무를 맡은 사회복지사 등 4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시민과 가장 가까운 행정기관인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는 복지 전담팀을 중심으로 공공과 민간의 자원을 연계해 빈곤 가구를 찾아내고 지원하는 구실을 해왔다. 2022년 6월 현재 1만2736명의 공무원과 민간지원인력(사례관리사 등)이 복지 전담팀에 속해 있다. 사회보장정보원이 두 달에 한 번 단전·단수 등 34개 정보를 수집·분석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을 확률이 있는 위기가구를 1차적으로 발굴하고, 찾아가는 보건복지 전담팀이 이 명단을 받아 찾아가는 복지팀이 위기가구에 전화하거나 방문해 지원이 필요한지 여부를 파악한다. 찾아가는 복지팀 인력과 시스템이 포착한 대상자 수를 비교하면 1 대 100에 가까운 ‘대결’이다. 아직은 승리보다 패배가 잦다. 이들은 발굴해도 지원할 제도를 찾지 못한 빈곤, 지원 대신 고립을 택한 빈곤 앞에서 느낀 좌절을 떠올렸다. 시스템이 선정한 위기가구가 늘어날수록 그 위기가구에 닿을 현장 지원 여력은 줄어드는 악순환을 멈출 방법을 고민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도울 수 없는 빈곤 앞에서

“그래서 뭐 해줄 건데?” 찾아가는 복지팀 시절 김무영 주무관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든 질문이었다. 소득만 보면 기초생활 수급권자가 되는 노인이었다. 다만 부양의무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연락도 잘 닿지 않는 자녀의 소득이 문제였다.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노인의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를 외면할 수 없던 김 주무관은 다른 방법을 찾아다녔다. “막상 (위기가구) 발굴을 해도 그분들이 원하는 지속적인 도움을 드릴 제도가 없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사정이 너무 다양해요.”

2021년 정부의 발굴 시스템이 포착한 133만9909명 가운데 지속적인 복지 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연결된 경우는 2.1%(2만8611명)에 그쳤다. 그나마 가장 많은 지원은 민간 지원(37.2%·49만8679명)이다. 그러나 민간 지원의 한계는 분명하다. “물품을 나눠 드린다든지, 학생들 장학금을 준다든지, 집을 청소해 드리는 정도라서요. 지속적인 현금 지원을 바라는 분들한테 큰 도움은 안 되지요.”

‘발굴’되기는 했는데, 그래서 해줄 ‘무엇’을 찾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더는 공공을, 찾아가는 복지를, 공무원을 믿지 못하게 되리라고 김 주무관은 짐작한다. “공공의 도움 같은 것 필요 없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우리가 필요 없다고 느끼겠죠.” 그렇게 133만9909명 가운데 누군가는 빈곤에 처할 위기 앞에서 고립을 택할 것이다.

질병과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장례식이 8월25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마련돼 있다. 공동취재사진
질병과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장례식이 8월25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마련돼 있다. 공동취재사진

고립된 빈곤 앞에서

서울의 한 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정현주(가명·30)씨가 그런 ‘고립 가구’를 발굴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고위험 가구에 해당하는 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한 집도 빠짐없이 방문하기로 마음먹는다. “문득 의문이 생겨요. 이 정도 노력으로 발견된 고립 가구를 넘어서는 진짜 보이지 않는 가구가 있지 않을까. 복지 서비스를 일단 거부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동안 사회에서 받은 상처 탓에 우선은 경계하는데, 그런 분들의 마음을 얻는 게 가장 어렵죠.”

복지사들의 경험은 대개 비슷하다. 사회복지 경력 34년차인 인천 중구 한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사 최성경(가명·50대)씨가 말한다. “나에 대해 알리고 싶지 않은 분도 있고, ‘나는 안 될 거야’라고 지레짐작하는 분도 많아요. 정신적으로 힘들어도 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 상담도 꺼리죠. 그렇게 속으로 곪아가며 병이 커질 수밖에요.”

고립을 택하려는 빈곤 앞에 할 수 있는 건 설득뿐이다. 지원을 거부하는 가구를 만나 대화하는 일은 빈곤 가구를 지원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주요한 업무다. 현주씨가 요즘 주로 만나는 저장강박(물건을 쌓아두고 버리지 못하는 증상) 빈곤 가구는 더욱 그렇다. 외부와 오랜 시간 단절돼온 그들 앞에서 현주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을 두고 ‘관계’를 형성하는 것뿐이다. 빙 둘러 간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며 근황부터 묻는다. 날씨 이야기도 하고, 점심 식사 이야기도 한다. 슬쩍 복지관 소개도 같이 해본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친밀감을 쌓다 보면, 그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그 과정에서 현주씨도 그에게 지금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시간이 걸리는 만큼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러간다. 추가되는 데이터가 늘어나면서 발굴 시스템이 지목하는 위험 가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발굴 시스템에 잡힌 대상자 수는 2018년 36만6천여명에서 지난해(133만9909명)까지 3.7배로 늘어났다(증가율 265%). 같은 기간 찾아가는 복지팀 인력은 23.9% 증가했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복지 담당 공무원을 늘리는 대신 위기가구 발굴을 돕는 민간 인력(명예 사회복지사)을 늘리고 신기술을 활용해 ‘인공지능(AI) 상담사’를 만드는 것이다. 둘 다 한계가 있다. 박창재 수원시지역사회보장협의체 사무국장은 “명예 사회복지사나 동 단위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민간에서는 정보 접근 권한도 없고 발굴 한계가 있는 것은 현실”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은 지원받을 의사가 있는 위기가구의 초기 상담이나 발굴 시스템 관리에 다소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정부의 지원조차 피한 채 진짜 고립을 택하는 이들을 현주씨처럼 설득하지는 못한다.

악순환과 선순환

모든 빈곤 가구를 찾아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기도 용인의 한 행정복지센터 찾아가는 복지팀 박승엽(가명·40대) 주무관은 바짝 긴장했다. 올해 발굴 시스템이 그의 찾아가는 복지팀에 확인하라고 말한 위기 대상자는 484명. 그러나 팀원 6명 가운데 발굴 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은 1명뿐이다. “현재 다른 방법이 없어요. 다른 일 맡은 팀원들까지 더 투입하는 수밖에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찾아가는 복지팀원이 겪은 좌절을 뒤집어보는 데에서 출발하라고 말한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내가 상황이 어려운 가구를 동사무소에 알려줬는데 실제로 큰 도움을 받았다’는 효능감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모든 시민들이 빈곤 가구를 찾는 데 참여할 것”이라며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끌 수 있도록 복지 제도를 확대해 발굴과 지원, 민간과 공공의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발굴 시스템에 앞서 복지 제도의 확충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다.

김무영 주무관은 그보다 소박하지만 중요한 방법을 생각해 봤다. 빈곤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늘 속상했던 게 있어요. 건강보험료 체납 고지서, 빚 독촉장, 그런 곳에 그저 빨리 빌린 돈을 내라고만 하지 도움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지 않은 거예요. 상담받고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그게 권리라는 걸 어려운 가구를 마주할 수 있는 곳곳에서 알려주면 상황이 좀 나아질 것 같습니다.”

손지민 이정하 장현은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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